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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이 Jun 29. 2020

행아, 행복해질거야

드라마 <풍선껌> 을 보고

(사진출처: tvn 풍선껌 공식 홈페이지)

                                                                                        

  두 사람이 헤어졌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꾹꾹 눌러 가다가 같이 있자 고백한 후에 겨우 행복한 사랑을 시작하나 했는데, 결국 리환과 행아는 다시 이별했다. 


  오랜만에 한 장면, 한 장면 놓치기 싫은 따뜻한 드라마를 만나 두 주인공에게 흠뻑 몰입하며 이야기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리환이와 행아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해져야 하는데.' 드라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주인공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도록 만든다. 자신의 세상 전부가 되어 버린 리환과 선영이모를 잃을까 두려워 리환을 향한 마음을 접는 행아가, 철이 들 무렵부터 자신보다 큰 엄마와 행아를 지켜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살아온 리환이가 너무 애틋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일부마저 잊어가면서도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잊으면 안된다고 되뇌는 리환의 엄마 선영도, 알코올 중독의 아버지를 혐오하며 차갑게만 보이지만 결국은 이혼한 동일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엿보고 사랑에 빠진 태희도, 시크릿가든 부부를 아직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동화도. <풍선껌> 의 인물들은 모두 한 귀퉁이에 모두가 공감할만한 애틋함을 가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너를 보지 않겠다.' 고 선언한 뒤 뒤 돌아선 리환을 종종걸음으로 쫒는 행아의 모습은 헤어진 연인을 보내는 슬픔보다는,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 같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고 오열하며 리환의 뒤를 쫒는 모습은 버려진 아이같았고, 정말로 행아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 순간 몰입이 되어 저렇게 큰 이별(상실)을 겪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행아는 여러 번 상실을 겪은 인물이다. 다섯 살 무렵 겪은 엄마의 죽음, 그리고 중학생 무렵 찾아온 아빠의 죽음. 조금 더 지난 후엔, 부모의 대신이었던 선영의 자살 기도로 또 한 번의 상실 위기를 겪는다. 결국, 그 많은 일들로 인해 병원 공포증이 생겼고, 유기 불안이 생겼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괜찮아 보여야 한다.' 는 비합리적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행아는 응급실에 갈 정도로 아파도 갈 수 없었고, 누군가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야 했고, 외롭지 않다는, 행복하다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참 다양한 사건들을 만난다. 자신의 인생을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나올 것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이 한 둘일까. 즐겁고, 행복한 기억보다는 슬프고, 아픈 기억들이 더 깊은 주름을 만드는 것처럼 누군가의 죽음, 사랑하는 사랑과의 이별, 자신의 질병 등으로 인한 여러 상실들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깊은 그림자 속에 빠지게 한다. 그 후유증으로 행아처럼 트라우마(사건)에 대한 혐오나 자꾸만 떠오르는 잔상- 이러한 증상의 정도가 심해 생생하게 다시 그 사건이 반복될 경우를 플래시백(Flashback)이라 부른다-, 감정이나 사고의 커다란 변화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부정적인 삶의 변화만을 겪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사건을 겪고도 그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삶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이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높은 결과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즉, '아픔을 겪고도 성숙해지는', 그럴 힘이 있다는 의미이다. 


  12화에서 행아가 우연히 마주친 리환에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말한다. 


 나 운전면허 따고 있어. 이제 도로주행만 하면 돼. 상담도 아홉 번 받았어. 저번부터는 병원 안에서 받아. 혼자 십 일층까지 가는데 한 번도 토하거나 기절한 적 없어. 상담 받는 거 다 끝나면 운동도 할거야. 네가 준 약도 매일 하나씩 먹고 있고 , 이모가 준 비타민도 매일 하나씩 먹고 있어. 그러니까 아직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내가 이모 데리고 병원에 갈 수도 있어. 그 때가 되면 너한테 갈거야. 네가 오지 말라고 해도. 지금은 내가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네 등에 업혀 있는 것 같아서, 내 무게라도 내려 줄려고 여기 있는 거야.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행아는 행복해질 힘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의 헤어짐에 어린아이처럼 울던 행아는 차근 차근 어른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힘이 될 준비를 한다. 모든 사람에겐 각자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저자가 이야기 했었다. 적어도 행아에겐, 그리고 그런 행아를 사랑하는 리환이에겐 그럴 힘이 있는 것 같다. 둘은 분명 행복해질 것이다.



* 본 글은 2015년 개인 블로그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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