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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이 Jun 30. 2020

우주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을까

드라마 <영혼수선공> 을 보고

(사진 출처: KBS 영혼수선공 공식홈페이지)

  처음 드라마 <영혼수선공>의 티저를 보고 마음이 설렜더랬다. 정신건강을 다룬 드라마는 점점 많아지는 추세지만, 간만에 정말로 따뜻하고 '제대로 된' 드라마가 나올 것 같다 기대했기 때문이다. 경계선 성격장애(BPD)와 연극치료가 소재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해갈수록 기대는 실망으로 변해갔다. 신하균이 맡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이시준은 너무 내담자의 삶에 자주, 그리고 엉뚱하게 침범했고 정소민이 연기한 한우주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으며, 환자들과 의료진들의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때로는 단순했다. 드라마에서 다룬 한우주와 이시준의 관계는 현실과는 너무 먼, 비현실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식어갈 무렵 마음을 울리는 장면 하나를 만났다. 그리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장면 하나로 <영혼수선공>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우주에게 타인은 구원자이면서, 적이다. 하염없이 상대를 이상화시켜 매달리다가도,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모습을 보면 평가절하하는 극단적 관계를 맺는다. 버림받을까봐 두려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자해나 자살 시도같은 극단적인 파괴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상대에게 내쳐지는 일은 설명할 수 없는 공포이며, 죽음과도 같다. 이런 두려움은 대체로 어린시절 충족되지 못한 관계와 애정에서 온다.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양육자와 관계를 맺고 성장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안정감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는 자신을 '몇 년간' 키우고 파양한 양엄마에게 집착한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에게 꾸준히 보아달라고 떼쓰고, 화내고, 매달린다. 


  하지만 어느 날, 친엄마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우주는 어른이 된다. 영원히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양부모와 성숙하게 이별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려줄 줄도 알게 된다. 초를 세지 않아도 화를 참을 수 있게 되고,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된다. 우주의 세상이 변한 것이다. 


  우주가 양엄마에게 이별의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엄마가 쓴 편지의 구절을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뇔 때, 마음이 참 먹먹했다. 


우주야, 한 우주.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내게 하나의 우주였다. 하나의 우주였다.


  누군가에게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믿음. '너는 나의 우주였다'는 엄마의 편지 한 구절이 우주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그게 너무나도 잘 표현된 이 장면을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결국,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고 자라게 만드는 건 '사랑'임을,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음을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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