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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Aug 18. 2022

파란노을 콘서트를 보며 든 생각

꾹꾹 눌러 담은 위로

아니, 도대체 파란노을이 누구야


혹시 파란노을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파란노을은 요즘 대한민국 인디씬을 뒤집어 놓고 있는 뮤지션입니다. 본격적으로 작업물을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은 1인 밴드인 그는 해외 평단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으면서 최근 1~2년 사이 리스너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여기에 한 가지 더. 파란노을은 자신의 본명과 나이 얼굴 등 그 무엇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공개된 정보라고는 서울 어디께 즈음에 거주 중인 학생이라는 사실 정도. 모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도 "솔직히 저는 '이 앨범'으로 이름을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웠다. 제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 같아서"라고 답하며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해외 평단에서 극찬을 받는 한국의 신인 인디 뮤지션. 그리고 신비주의. 인디 팬들의 궁금증을 증폭 시키기엔 차고도 넘쳤습니다. 그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에 가보면 올라온 콘텐츠라고는 음원과 앨범 재킷 몇 개가 전부지만 팔로워는 이미 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해외 팬들도 적지 않습니다.


모습을 드러낸 파란노을과 '디지털 던'


그러던 어느 날 빅뉴스가 전해졌죠! 베일에 싸인 파란노을이 '디지털 던'이라는 오프라인을 공연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파란노을과 같은 레이블에 소속된 뮤지션인 Asian glow, Della Zyr 등도 함께 무대를 꾸미기로 하면서 입소문을 타더니 300석 티켓은 불과 몇 초 만에 매진됐습니다.


저는 예매에 실패해 반쯤 직관을 포기했다가 운 좋게 취소표를 주워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 현장은 파란노을과 그의 동료 뮤지션들을 보러 온 팬들로 가득 했고요. 환호와 지지는 대단했습니다.


아티스트 요청으로 얼굴은 블러 처리


모두가 기대했던 파란노을의 첫 공연, 하지만 공연 자체의 완성도가 아주 높진 않았습니다. 인이어가 아닌 블루투스 이어폰(갤럭시 버즈로 추정)으로 모니터링을 한 탓인지 귀를 만질 때마다 음악이 꺼지기 일쑤였고요. 그때마다 그는 꽤 당황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음악을 재생시켰습니다.


또 기교가 필요한 노래는 아니었으나 보컬 음정도 좀 안 맞는 느낌이었고요, 장비 연결 상태가 좋지 못했는지 지지직거리는 소리도 엄청 많이 났습니다. 노이즈를 앞세운 장르라고는 하나 의도한 노이즈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작고 약한 내 모습이 보여서


하지만 누군가는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부를지 모를 이 모든 허점들은, 정말 진짜로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티스트의 실수로 음악이 꺼져도 야유는 없었습니다. (의도치 않은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ㅋㅋ) 상당한 수준의 노이즈나 음정 이탈에도 관객들은 모두 환호했습니다. 우리가 파란노을에게서 기대햇던 그 감성을 전달받기엔 충분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실 파란노을의 음악은 자기혐오와 절망 따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사에서 자신을 '찐따무직백수모쏠아싸병신새끼 사회부적응 골방외톨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잔뜩 위축됐던 시기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중고등학생 때 여드름이 너무 많이 난 외모 때문에 놀림받았을 때, 친구들은 다 대학에 갔는데 나만 혼자 21살을 먹고 재수학원을 다닐 때, 군대에서 부조리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아무리 아무리 애를 써도 취업이 안 될 때..


기간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경험이 있을 텐데요. 그날 파란노을 공연을 보면서 300명이 울컥했던 건 그런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을 니다.


White Ceiling / Black Dots Wandering Around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세상은 죄다 자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스타나 유튜브를 켜면 다들 내가 얼마나 좋은 차를 타는지, 얼마나 좋은 옷을 입는지, 얼마나 비싸고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뭐 저도 가끔 올립니다. 이것 좀 보라고, 나도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 가슴 한 켠에 괜찮지 않은 것 한두 개쯤은 품고 살잖아요. 언제나 괜찮은 척 하는 건 꽤나 지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괜찮은 척 대신 그냥 다 인정하고 울어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파란노을의 한 음 한 음 꾹꾹 눌러 담은 찌질한 자기고백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로 다가온 건 그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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