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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03. 2022

저랑 밴드 하실 분 어디 없나요?

드럼 베이스 보컬 구인 중

밴드를 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함께 할 팀원들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전 화 - 1인 밴드는 지겨워)


한 가지 바람이라면 그저그런 취미 밴드 보다는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밴드를 하고 싶었습니다. 음원도 내고 공연도 하고 스스로도 음악적으로 성취했다고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면 취미 연주자 이상의 실력과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 주변엔 음악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인문 대학, 기자... 아무리 살펴 봐도 음악과는 별 접점이 없는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몇 년 동안 스타트업계를 취재하는 기자로 살면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창업기를 많이 접했습니다. 안 될 것 같은 것도 되게 만드는 성공한 창업자들의 이야기 말입니다.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는 식당 DB를 만들기 위해 밤새도록 전단지를 줏으러 다녔고요. 김슬아 마켓컬리 창업자는 투자 거절만 100번 넘게 당했다죠. 더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필수 인재라면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데려오고야 말았다는 창업자들의 이야기는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이런 무대뽀(?) 스토리를 여러번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깡이 좀 생겼던 것 같습니다. 네트워크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주변에 있는 몇 안 되는 음악인 친구들에게 인재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그동안 만든 저의 데모곡들을 보내주면서 연주자들을 구한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습니다.


"이젠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들 자체가 거의 없어ㅋㅋ"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 프로듀서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른이 넘어가니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조차도 업계의 팍팍함을 느끼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는 겁니다.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구인글 올리기였습니다. '뮬'이라는 음악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주로는 밴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인데요. 아마 국내에선 악기 중고거래부터 구인/구직까지 음악에 관해 가장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일 겁니다.


거기에 글 하나를 올렸습니다. 이러저러한 음악을 하고 싶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또 이러저러하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다행히 몇 통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아쉽게도 위치나 음악적인 방향성 등 저와 딱 맞는 연주자를 찾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제 자리에 앉아서 귀인을 기다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수동적이고 게으른 방법이었습니다.


팀원을 구하기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연주자들에게 DM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연주자들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모입니다. 조금만 찾아봐도 자신의 연주를 찍은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하는 이들이 많죠.


'드럼' '베이스' 같은 키워드로 무한 검색을 하면서 연주자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에 쏙 들게 연주를 하거나 제가 하려는 음악과 비슷한 색깔을 지닌 것 같은 이들에겐 DM을 보냈습니다.


사실 처음엔 몇 번이나 망설였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건 아무래도 좀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우스운 말이지만 '나를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도 했습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써놓고 나서도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몇 번이나 보낼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내향적인 저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전송 버튼을 눌렀습니다.


정말 밴드가 하고 싶었나 봅니다ㅎㅎ


지금 봐도 부끄러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건 늘 어려웠습니다..


읽씹, 안읽씹, 심지어 친절한 거절도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시도한 끝에 몇 몇 분들과는 며칠씩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고요. 오프라인으로도 만나서 밴드 활동 의향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물론 DM을 주고 받는 것을 넘어 좀 더 진전된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해서 모두 합류를 결정하진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랑 음악 성향이 안 맞네요' '요즘 일이 바빠져서 밴드를 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어쩌죠, 얼마 전에 다른 엔터사와 계약을 하게 됐어요' 이유는 제각각이었습니다.


나도 슈게이징 밴드 하고 싶어

하지만 먼저 말을 거는 건, 이러니저러니해도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저희 밴드 팀원 중 몇몇은 이런 방식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앞으로 1~2명의 멤버를 더 충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많이 거절 당하고 부끄러운 DM 보내기를 계속 반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운이 좋으면 대여섯번 정도, 운이 나쁘면 10~20번 정도는 들이대 봐야 하겠죠!


과연 귀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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