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쯤 사회인으로서의 첫출발을 위해 각종 지원서를 제출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업계는 블루오션이라고 착각하는, 실제로는 레드오션 중에서도 레드오션인 곳이다. 그러다 보니 이 업계는 온통 열정 페이가 넘쳐난다.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들은 넘쳐난다. 가끔은 무보수로 일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게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내게 면접을 본다는 것은 꽤나 설레면서도 꽤나 두려운 일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하얀색 셔츠에 정장을 갖추어 입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렜다. 정장을 입는 것은 내가 마치 어른이 된 듯한 착각을 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장이 주는 설렘은 잠시뿐이었다. 기다림 끝에 나는 두려움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면접에서 자주 떨어졌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서류에서 탈락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최종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기까지의 그 기다림은, 그 기다림이 몇 차례나 반복이 된다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문득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너무 긍정적이었다.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서류를 통과할 정도의 스펙만을 가진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다.
최종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을 때면 비참해졌다.
면접을 볼 때마다 내가 마주친 한 부류의 사람, 내정자 때문이었다.
정장을 입지 않았던 그들의 이름은, 늘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
Edvard Munch, Evening on Karl Johan Street, 1892, KODE Art museums
정장을 입지 않은 면접대상자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면접대상자의 이름을 부른다. 정장을 입지 않은 내정자는 뭉크의 그림, <카를 요한의 저녁 (Evening on Karl Johan Street)> 속에서 보이는, 군중과는 멀리 떨어져 소외된 듯 보이는 한 사람처럼,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림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은 군중 속의 한 사람과 다르게, 군중과 같은 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내정자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수많은 사람 중 그 사람만이 정장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림과 현실은 더 달랐다. 소외감은 결국 정장을 입지 않은 면접자들이 내게 주었던 감정이다.
계약직임에도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정장을 입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면접을 보러 온 모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정자들은 늘 약속이나 한 듯이 정장을 입지 않았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나는 편안한 옷차림의 그 내정자를 그저 신기하게 여겼다.
그때 나는 어렸고 순수했다. 어쩌면 무지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왜 정장을 입지 않았을까.” 그저 나는 단순한 의문만을 가질 뿐이었다.
그렇게 면접장에서 편안한 옷차림의 내정자를 반복적으로 마주치게 되면서 내 생각은 점점 달라졌다.
“저 사람이 혹시 내정자일까?”
“내정자도 있는데 도대체 나는 왜 면접에 부른 거지?”
“지금 저 내정자 때문에 나를 들러리로 세운 건가?”
가끔은 면접을 보기도 전에 내 탈락을 예상할 수 있기도 했다. 갑자기 지원자격이 바뀐다거나 할 경우에는 “아, 내정자가 있구나”라고 미리 체념하게 되고는 말았다.
나는 결국 최종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보다 그 내정자의 이름을 먼저 확인하게 되었다.
편안한 옷차림의 당신은 몰랐을, 정장에 담긴 절실함
내가 지원한 곳은 공공기관도 아닌 사기업이었고 대부분 계약직이었다. 대개의 경우 매우 짧은 기간의 계약직, 사실은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업무였다. 또한 본래 그 자리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계약을 연장하기 위한 공고이기도 했다. 원래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겠다고 하는데 혹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굳이 그것을 비난할 명분이 내게 없다는 것은 잘 안다. 비난할 명분이 있다면, 절실함을 가지고 아무것도 모른 채 들러리가 된 지원자 중 한 명으로서의 자격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나 편안해 보이던 옷차림을 한 그 내정자는 모를 것이다. 열정 페이라고 할지라도, 취업에 대한 간절함으로, 정장을 갖춰 입고, 평소에 신지 않던 구두를 신고, 하다 못해 머리카락 한 올이 흘러내릴까 신경을 쓰면서, 이른 시간에 면접 대기 장소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나를 포함한 지원자들의 그 절실한 마음을 말이다.
그림
좌 Stojan Stevanović(1960-), Sorrow, Saatchi Art.
우 Giuseppe Mentessi(1857-1931), Despairing Woman (Gloria triptych right panel detail), 1901, Galleria Nazionale D'Arte Moderna
불편함과 비참함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내정자들의 80% 정도는 대부분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내정자들은 학력과 학벌, 심지어 능력과 경력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뛰어난 내정자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불편하기는 하였으나 나의 모자람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 실력이 부족한 내정자였다. 정확하게는 이 내정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정자로 인한 내 감정이었다.
처음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충격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Stojan Stevanović나 Giuseppe Mentessi의 그림 속 주인공들처럼 슬퍼졌다. 결국에는 비참함과 좌절감만이 남았다.
부족한 내정자가 주는 비참함과 좌절감은 뛰어난 내정자가 주는 그 불편함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내게 주는 불쾌한 감정은 면접관의 막말조차도, 그 비참함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직설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런 마음이 들 때가 대다수였다.
“내가 "고작" 저런 사람에게 밀릴 정도인가?”
“내가 "고작" 저런 사람 들러리가 된 건가?”
나를 고작 들러리로 세운 그 사람이, 나보다 차라리 뛰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고작 그런 사람들로 인해 내가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를 채우는 것도 꽤나 불쾌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나는 지쳤다.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향했으며 회복되는 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에 더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고 생각될 때마다 기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래서 그 시간들을 견뎌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정장을 입을 당신에게
다시 시간이 지났고 여전히 취업은 쉽지 않은데 나는 새로운 일을 준비한다.
현명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면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다.
나는 또 그 내정자들을 만났다. 나는 나이도 들었고 실력도 쌓았다. 덕분에 나는 뛰어난 내정자들이 주는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는 적어졌다. 다만 나는 이번에는 늘 비참함과 좌절감만을 느껴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흔을 앞둔 나는 20대의 나와는 다르다.
그 시간 동안 내 것을 빼앗기면서 내게 오기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들이 남은 덕분이다.
나와 마주한 그 부족한 내정자는 언젠가 정장을 입고 면접관이 된 내 앞에 지원자로 서게 될 것이다.
아마도 정장을 입은, 한때는 내정자였을 당신이 느끼게 될 감정은 어떨까.
늘 내정자였을 당신이 성장했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미리 말하지만, 당신은 정장을 입었음에도, 탈락이다.
내정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다. 당신은 실력이 너무나 부족해서이다.
(문득 쓰고 보니 너무 분노가 가득한 감정인가 싶은 것은 제가 너무 소심한 탓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