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테오 Aug 13. 2022

미혼인 동료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을 소개하겠습니까?

모두가 불편해하는 사람을 내게 소개하겠다는 사람에게

 

일주일 동안 계속된 결혼의 습격


마흔이 되도록 혼자이다보면 늘 결혼의 습격을 당하고는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묻습니다.

결혼은? 안 했어? 왜 안했는데? 결혼할 거야? 누구 소개해줘?   

회사든 아니든, 평일이든, 주말이든, 낮이든, 밤이든, 제 결혼은 늘 이야깃거리가 되고는 합니다.


지난 주에는 일주일 동안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그랬습니다. 제 결혼을 이야기하는 말들이 마치 안녕!이라는 인사처럼 식상해질 정도로 말입니다.    

“이제 일 그만하고 결혼해야지?”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한 이 말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저보다 어린 직원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땡땡이(저) 신경쓰이지 않게 해”라는 농담으로 그 한 주가 마무리 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주말에도 예상치 못한 결혼의 습격이 이어졌습니다. 엘리베이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요. 오랜만에 만난 이웃 아주머니마저 “안 보이길래 결혼한 줄 알았지”라며 안부를 전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일주일 동안 결혼의 습격을 당했다고 보아도 되겠죠?


사실 제가 지난 주에 들었던 대부분의 말은 제게 타격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20대 중반부터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종종 들어오던 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매일같이 들었던 것이 너무나 오랜만의 일이라 조금 부담스러웠을 뿐입니다.     


Caspar David Friedrich, The Sea of Ice aka, 1824, Hamburger Kunsthalle



내게 추천할 상대로, 모두가 불편해하는 사람을 생각한 동료


그런데 지난 주에, 제 정체성을 혹은 제 자존감을 뒤흔든 일이 기어코 일어났습니다.

A와의 대화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멀리서 찾지 말고 이 안에서 찾아보는 건 어때?”

늘 그러하듯이 제가 답했습니다.

“다들 너무 어려. 밖에서 잘 찾아볼게~”     


미혼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이상하게도 회사 내에서, 특히 지금 소속된 곳에서 미혼남녀는 극히 드뭅니다. 있다고 한들 저보다 10살 정도 어리고, 저도 딱히 연애상대로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의 자조섞인 웃음으로 마무리 되는 듯 했던 대화의 끝에 A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 누가 있나 생각하다가 B가 미혼인 줄 알고 B 어떠냐고 물어볼 뻔 했네.”


B는 저보다 10살 이상 많습니다. B는 결혼도 하셨고 아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B는 100명이면 100명의 직원이 모두 불편해하는 사람입니다. 사실은 싫어한다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야될 것 같습니다. 그의 나태한 업무방식과 특히 여직원들에 대한 태도 때문에요.     


A는 본인조차 싫어하는 B를 제게 소개시켜줄 후보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 때 제 마음은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채우는, 얼음 덩어리와 얽혀진 듯한 난파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제 마음은 그림 속 얼음덩어리보다 더 뾰족하고 더 날카로운 무언가에 부딪혀 바스라진 듯 했습니다. 난파선이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듯이 제 마음도 다시 하나로 붙이기엔 너무 어렵게 조각나버렸습니다.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제목이 ‘수북이 쌓인 얼음 덩어리에 놓인 난파선과 이상화된 북극해의 장면(An Idealized Scene of an Arctic Sea, with a Wrecked Ship on the Heaped Masses of Ice)’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저라면 제 딸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을 소개할 겁니다.


저라면 굳이 모두가 불편해하는 사람을 누군가의 결혼 상대로 속으로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저라면 상대에게 결혼에 관련된 이야기 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혹시 제가 미혼인 누군가에게 결혼 상대로 누군가를 추천한다면, 적어도,

이런 남자라면 혹은 이런 여자라면, 내 딸에게 혹은 내 아들에게 소개해줘도 괜찮겠다”

싶은 사람만을 이야기할 겁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네의 <수련 Water Lilies>처럼, 그렇게 호평을 받는 사람일 테니까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모네의 <수련>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Claude Monet, Water Lilies 1915–1926, Nelson-Atkins Museum

     


이 글의 마지막에서조차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됩니다. 결국 A는 저를 싫어하거나 적어도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네의 그림처럼 모두에게 호평을 받는 사람을 소개해주려고한 또 다른 동료가 있었기에 A가 제게 가진 마음이 어떤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닿지 못할 부탁이지만 한번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부디 지나친 관심과 불편한 말씀을 삼가주시길 부탁드려봅니다.



출처


프리드리히의 <북극해>

https://www.wikiart.org/en/caspar-david-friedrich/the-sea-of-ice-1824


모네의 <수련>

https://art.nelson-atkins.org/objects/6650/water-lilies?ctx=01a30d26-7dd2-4120-b649-e61c96359f12&idx=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