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친해지는 시간
햇살이 좋아 빨래를 했다. 밥 먹은 그릇을 치우는 사이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우두두두 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까지 쳤다. 요즘 빨래를 널거나 나가려고 준비하면 비가 온다. 나름 날씨 요정이라 자부해 왔는데 이제 아닌가. 요즘 물과 친해져서 그런가.
수영 가기 전에 잠깐이라도 일찍 나가 글을 쓰려했는데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 보니 금세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수업 시간이 임박해서도 비가 그치지 않아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작은 언덕을 올라 둘레길을 10분 정도 걸으면 수영장이 나온다. 비가 와서 선선해진 날씨와 시원한 빗소리, 벌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숲길을 가득 메웠다. 꿀꿀하던 기분이 좋아졌다. 방 안에 있을 땐 비가 두려웠는데 막상 나오니 두려울 것도, 싫을 것도 없었다. 작은방에 숨어 무엇을 걱정했을까. 둘레길의 끝에 서자 비가 그치고 쨍쨍한 햇볕이 나를 맞이했다.
오늘도 열심히 허벅지를 태우며 물장구를 쳤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선생님은 힘을 빼는 것을 강조하며 호흡과 발차기를 가르쳐 주었다. 어깨에 힘을 빼야 몸이 앞으로 기울지 않고, 다리에 힘을 빼야 체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드럽고도 유연히 그러나 열심히 물살에 몸을 맡긴다.
물먹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는 깊이 내려가는 것도 두렵지 않다. 숨을 흡- 머금고 내려가 음- 내뱉고, 올라와 파- 들이마시고. 음- 내뱉고 다시 올라와 파-. 물아래서 내뱉을 숨이 부족해지면 코로 물이 차는데, 그전에 재빨리 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더 오랜 숨을 욕심내기보다 내가 편한 방식으로 호흡하며 물과 친해지는 시간이다.
습관적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힘을 빼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작은 세상을 깨고 헤엄치며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