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산 지 이제 일년 반이 되어간다.
정확히 세보진 않았지만 우리집 근처 (걸어가도 안 귀찮을 정도의 거리)에는 적어도 우리 할머니(올해 95살, 엄청 정정함, 기네스북 도전!)가 앞으로 살아갈 해보다도 더 많은 커피샾들이 있다.
노트북을 들고 가 커피를 하나 시켜놓고 3시간이고 5시간이고 앉아 시나리오 쓰는 척 하기가 취미인 나는 동네 커피파는 곳을 하나씩 다 가보기로 하였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r, d, t, n 글자 들어간 곳을 들어가고 날씨가 좋지 않는 날은 b, k, s, h 글자를 찾는 식이다.
하루는 운동을 겸해 좀 더 멀리, 그래봤자 홍대, 걷고 싶었다.
동산을 하나 넘고 1평짜리 타코야키 가게를 지나서 앞치마를 입은 풋풋 새파란 미대생무리를 뚫자 커피 냄새와 기름 냄새 나는 곳이 나타났다.
나는 가게 앞 서서 뒷짐을 지고 메뉴를 천천히 검토 후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굉장히 작은 카페인 이곳은 커피보다도 브런치나 샌드위치가 주종목인 것 같다.
쇼트머리에 안경을 쓰고 굉장히 마른, 현대 구형 쏘나타를 7년째 몰고 있을 것 같은 40대 중반 주인언니, 같은 나이로 보이는 약간 통통하고 동사무소직원느낌의 머리를 묶은 또 다른 언니가 알바로 일하고 있다.
가게가 협소한 관계로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에서 일한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는 알바 언니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언니의 모습은 그 작은 카페 만큼이나 소박하게 느껴졌다.
앞서 신중한 메뉴검토를 한 나답게 과감히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쓰다 만 시나리오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들어 온다. 그는 내가 앉은 창가 자리에서 한 테이블 떨어진 자리에 벽을 대고 앉자 마자 핸드폰을 본다.
주인언니는 팬에 불을 댕기고 기름을 붓는다.
주문도 안했는데 음식을 하는 걸로 보아 항상 먹는 것이 정해져 있는 단골 손님인가 보군.
이제 이 가게에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남았다.
그 사이 나의 아메리카노는 알바언니에 의해 정성스럽게 서빙된다.
오늘도 안 써지는 날. 날씨 죽이네, 창밖의 차와 사람들을 구경한다.
“잘 먹었습니다.”
그 단골 아저씨는 벌써 다 먹고 인사하고 창밖의 그림에 섞인다.
그 작은 곳에 다시 나와 카페 언니 1,2 만 남는다.
분명히 그들은 내가 뭘 하든 신경도 안 쓸 텐데, 이렇게 되면 나는 뭔가 생산적인 걸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기고 인상을 쓰면서 잘 안 써지는 글을 꾸역꾸역 쓰기 시작한다.
나의 그 짧은 초강력 집중타임 동안 언니2 가 어딜 나갔다 까만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그녀들은 가게 커플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는다.
곧 언니1 이 작은 접시를 내 테이블로 들고 온다.
접시 안에는 빨간 떡볶이와 튀김이 담겨 있다. 그리고 집에서 사과 먹을 때 쓰는 쇠포크가 옆에 놓인다.
“혹시 이런거 좋아 하시면 드셔보실래요?”
언니1은 너무 수줍어 하면서 이런 대사를 날린다.
브런치 가게에서 커피를 시킨 손님한테 떡볶이와 튀김 서비스.
“모든 손님한테 다 이렇게 주세요?”
“아니요, 혼자 계셔서.”
“앞으로도 계속 혼자 와야 겠네요.”
나의 이 시덥지 않는 농담에 둘은 또 너무 환하게 웃어준다.
우리 셋은 떡볶이와 튀김을 먹는다. 아주 조용히.
맛있었다.
팬케잌 냄새가 나는 이곳, 김말이 튀김의 레게머리 당면에 떡볶이 소스를 묻히면서 나는 순간 너무나 이 익숙하면서도 시골스런 말랑말랑, 푹신푹신, 끈적끈적, 축축한 고소한 사람냄새 나는 느낌에 웃음이 났다.
형형 색깔의 감동 도미노들이 하나씩 넘어지며 파도를 탄다.
내 맘대로 기네스 북에 도전하는 우리 할머니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우리새끼들 어서와’ 라며 반기는 식혜, 떡, 한과등으로 가득찬 마루,
이미 가득 찬 검은 플라스틱 봉투에 커다란 사과를 덤으로 넣어주며 또 오라고 인사하는 재래시장 상인,
친구 누구하나 힘들어 하고 있으면 건방진 소리없이 그냥 말없이 술을 같이 마셔주는 오래된 친구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외장하드를 한달이 넘게 지나서 찾으러 가도 웃으며 건내 주는 피씨방 알바청년.
겨울만 되면 아직도 연탄을 태워 난방을 하는 집에 개미들처럼 연탄을 짊어지고 오르는 대학생들.
엄마표 곰탕을 냄비에 넣고 끓이자 국물보다도 더 많은 고기가 둥둥 뜨면서 나는 김 사이로 보이는 ‘고기 좋아하는 우리딸’ 이러면서 음식을 싸고 있는 엄마의 큰손,
한국에 살면 얼마나 많은 순간 이 ‘정’에 감동하는지 모른다.
생활 곳곳에서 개념없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행동, 어처구니없는 형식 따위에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이런 정겨운 순간에는 이렇게 ‘우쭈쭈쭈 웃어’ 이러면서 나를 안아주고 그럼 나는 금방 또 무장해제.
‘정’
한국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만 뿜어져 나오는 따순 색깔의 아름다운 것.
자기일 알아서 각자 잘하면 서로 부탁할 일도 도와줄 일도 없이 깔끔하게 잘 살수 있다고 믿는 개인주의와는 대조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는 오랫동안 남의 일을 내일처럼, 콩 한쪽도 나눠 먹으며 살아왔다.
선택을 함에 있어 ‘나’보다는 ‘너’에 중심을 두고 내가 지금 당장 손해 보더라도 ‘우리’가 좋다면 다 같이 잘 살 수있다고 믿는 정서.
우리 자식들 먹는 것 같다면서 손님들한테 공짜음식을 막 퍼주는 식당의 경영방식은 사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참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주인은 돈보다도 정을 선택을 하는 것이다. 주머니에 돈보다도 당신들이 베푸는 정에 따뜻함을 느끼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만족을 하고 이것은 돈으로는 살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것, 배려, 친절 등은 분명 존재한다. 다 사람사는 곳이니까.
하지만 여기서의 정이란 좀 더 깊고 오묘하며 영혼을 치유하는 그 무엇이다.
가장 흉폭하고 치열한 시대에 가장 위대한 예술이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정도 어려운 시대를 거치며 받은 찢기고 쓰린 상처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영혼을 뒤흔들만한 아픔에는 가슴 깊숙이 들어가 영혼의 중심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어느 민족보다도 생명력이 강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항상 움직였다.
살아남기 위해 힘이 필요했고 경제성장을 위해 빨리 달려야 했다.
나이키 에어맥스를 신고 아이폰으로 심장을 펌프질하는 음악을 들으며 전력질주 후 맥도날드에 앉아서 빅맥을 먹다보니 가슴 한켠이 허전하고 우리는 무엇를 위해 따뜻한 것들을 다 벗어 제끼고 왔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에는 우리의 정, 아름다운 가치들이 다 씻겨져 가고 남질 않은 느낌이다.
오늘은 날씨가 중간이다.
노트북 가방을 메고 나간다.
라멘집 팬무리를 뚫고 100평짜리 화장품가게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재즈와 커피냄새가 흘러나오는 곳이 나타났다.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