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동남아,중국,일본,남미를 여행후 난생 처음 가 본 대구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거기서 태어났고 대학 전까지 줄곧 그곳에서 자랐다.
나에게 경상도는 서울보다 멀고 해외 어느나라보다도 멀었다.
살다가 가끔 만난 대구 출신 사람들을 볼때마다 경상도 사투리를 너무 귀엽게 쓴다라는 것 말곤 아는게 없었다.
지도에도 있고 기사에도 나오지만 내가 인지만 하고 있을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저 나에게는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곳이 경상도 어디 즘 대구였다.
선거때마다 빠알갛게 물든 한반도 오른쪽에서도 가장 빨간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하고 생각을 할까 항상 궁금했다.
2월 26일 화요일
사실 이번 로드트립을 즉흥적으로 하게된 이유는 심심한데 안 가본 국내 여행을 해볼까 하는 마음과 곧 떠나보낼 내 차에 대한 마지막 존경과 사랑을 담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함이였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베낭엔 양말 두켤레, 티셔츠 두개, 바람막이 나이키 자켓을,
차엔 귤과 딸기, 다크쵸콜렛, 커피, 그리고 사운드크라우드 플레이리스트의 음악을 잔뜩 채운채 슬렁슬렁 떠났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강변북로는 언제나 막힌다.
https://soundcloud.com/l2share52/woody-fire-up
이 노래에 춤을 추다가 순간 머릿속에 내차와 나의 추억 회상 영상이 펼쳐졌다.
매일 일산과 분당으로 몇 시간씩 운전했던 것, 모험심이 많은 나때문에 자갈길, 산길을 달리면서도 단 한번도 고장없이 쌩생 달리던 것, 내가 영어로 프레젠이션을 준비할때도 나의 반복적인 스피치 연습을 다 들었던 것도 이 차였고 스타벅스의 불길이 닿지 않는 시골이나 바닷가에 가서 몇시간씩 걷다 한적한 곳에 주차되어있는 내차로 다시 돌아와 앉았을때 그 편안함과 안도감이란..
나에겐 철과 유리, 가죽 등등으로 만들어진 이 커다란 쇳덩어리가 항상 사고없이 내가 원하는 곳에 나를 묵묵히 담담히 데려다 주고 그런 든든한 안정감으로 9년 동안 나의 보디가드역할을 해낸 골든 리트리버 같은 녀석이었다.
왼손은 핸들에 오른손은 조수석 헤드에 얹고 토닥토닥.
수고했어, 고마워
어느새 하남휴게소에 도착.
차의 탱크를 가득 채우고 나도 커피 충전.
첫번째 터치다운, 하이 경상도, 처음 뵙니다.
도산서원에 도착하니 해가 지기 전 골든 타임이다.
벤치에 앉아 안동호에 떨어지는 해를 잠시 감상. 몹시 평화롭다.
차로 퇴계종택에 갔다.
누군가 살고있는것 같아 조심스럽게 들어갔는데 하얗고 다리가 짧은 못생긴 개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집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있으니 조용히 내옆으로 와서 내가 뭘하고 있나 멀찍이 거리를 두고 살핀다.
나를 안 따라오는 척 하면서 이번엔 대문밖까지 따라나와 나를 중심에 두고 한바퀴를 크게 돌더니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무심한 캐릭터의 못생긴 퇴계종택 강아지, 안녕
호텔에 체크인
침대가 두개인 방은 침대 하나에 이것저것 늘어놓을수가 있어 편하다.
티비를 틀어놓고 뭘 먹으러 갈까 검색중 애인놈이 헛제사밥을 먹으러 가보라고 문자 추천,
제사밥이라니.. 전라도 우리집은 종손이라 일년에 제사만 수십번을 한다.
제사밥을 돈주고 먹는다는 컨셉도, 이상한 이름도 맘에 안들었고 사진보니 맛도 없을것 같았지만 결국 안동 헛제사밥을 먹으러 갔다.
역시 실패, 제일 유명하다는 집에 갔지만 그 지역 정치인들만 잔뜩 보고 밥은 반절 먹다 나왔다.
그 헛헛한 마음을 바로 앞 다리를 걸으며 좀 다스려 본다.
차를 몰고 안동시청에 차를 대고 시내를 걸었다. 유명하다는 맘모스 제과점을 지나 이리저리 걸었지만 그 헛제사밥에 입맛을 잃었는지 영 뭘 먹고 싶지않았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샌드위치집이 있어 내일 아침용으로 하나를 사고 그 옆집에 어묵집이 있어 어묵도 사서 툴레툴레 호텔에 들어갔다.
차를 주자해놓고 바로 들어가기가 싫어서 바로 옆 산책길로 걸었다.
텅텅 빈 산책로에 검은 색 차가 홀로 시동을 켠채 서있다.
역시 밤에 차로 하는 데이트는 이런곳에서 해줘야 Go boy and girl!
2월 27일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 어제 산 샌드위치를 먹고 하동대 가는길 잠시 들려 달빵과 커피로 아침.
달달한 아침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하동대로 향한다.
안동하회마을을 내려다 볼수 있는 언덕 같은 곳이다.
아침 산책으로 참 좋았다.
바로 안동하회마을로 가 입구에 차를 대고 버스를 타고 마을까지 진입, 걸어갈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가서 걸을거니까. 에너지를 세이브
나는 이 마을이 민속촌같이 그저 영혼없는 옛날 집이 잔뜩 있는 그런 곳일줄 알았는데 아직도 마을에 그 종손들이 살고 있었다.
고즈넉한 이 곳에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기와집과 초가집, 마을 이곳저곳을 걸으며 북미회담뉴스를 들으면 그렇게 걸었다.
600년된 느티나무에 소원을 빌고 다음 장소인 만휴정을 가기로 한다.
점심을 가서 먹을 까 아님 여기서 먹고 갈까 하다
입구에 있는 찜닭집에 들어가 찜닭을 시켰다.
"혼자 드실려구요?"
"네 혼자."
과연 혼자 먹을 양은 아니다. 세명정도 먹을 양인데 나는 또 밥까지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자 다음 장소로 출발.
미스터 선샤인 촬영 장소였던 이곳에 가면 분명히 사진을 엄청 찍고 있는 무리가 있을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쌍의 한복을 곱게 입은 소녀들이 인생샷을 찍을려고 엄청 욜심히 남자도 없이
"같이 합시다. 러브" 씬을 재현하고 있었는데 '같이 다리위로 올라가 봐요 내가 찍어줄게'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고 조용히 만휴정을 둘러본다.
이곳이야 말로 조선 버전의 Man's cave이다. 이런 계곡옆에 죄그마한 집을 짓고 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나무와 흙냄새로 하루하루의 시간을 채우는 아웃사이더의 고독감이 장소에서 느껴졌다.
이렇게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차단을 시키는 사람의 취향은 종종 핵인싸감이다. 장소 선정과 집의 높이, 집안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딱 위스키 한잔 하기 좋은걸 봐서 이사람도 청빈한 예술가 영혼 임에 틀림없었다.
날씨가 흐릿흐릿 비가 조금씩 내린다. 몸도 피곤하고 오늘밤 묵을곳도 정하지 않았다. 그냥 차를 돌려 서울집으로 돌아갈까 아님 대구까지 가서 하루 더 있어볼까
만휴정을 빠져나오는 그 길에 삼거리가 나온다.
좌 그리고 우.
갈까 말까 하는 나의 마음을 읽은듯 그런 길이 내앞에 펼쳐진다.
올해의 삶의 모토인 갈까 말까 할땐 가는 쪽으로!!
차를 몰고 대구로 고고.
일단 가서 커피를 마시자 라는 목표로 대구의 문화장을 도착지로 찍고 달렸다.
근처 공사장옆 차 한대가 겨우 들어 갈 만한 빈공간을 찾아 차를 대고 내리니 바로 앞, 버거집에서 센스있는 힙합 음악이 흘러나왔다.
대구, 너 벌써 맘에 든다. 음악이 좋아 그 앞에 더 서 있을수 있을것 같았지만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정확히 20걸음만에 도착, 문화장 카페.
옛날 목욕탕을 카페로 바꾸고 온갖 컬러풀한 색깔들로 안을 채운곳.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밤 묵을 호텔을 예약 한다.
일단 좀 걷자, 아까 먹은 삼인분짜리 찜닭이 아직도 소화가 안된듯.
골목이 숨어있는듯 있는 바, 이름도 히든이다.
차만 없었어도 들어가서 위스키 한잔 할 각인데, 쩝, 계속 걷자
이번에 건너편 하얀 레스토랑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 나이스
동성로를 향해 걷는다.
어설픈 힙합랩이 들리는 무대쪽으로 걸어가니 대구말을 쓰는 치과의사 아저씨랩퍼가 국채보상운동 기념전시관앞에서 랩을 하고 있다.
그 옛날, 일제에 빚진 1400만원의 국채를 갚기 위해 남자들은 금연을 여자들은 가락지를 팔아 국채보상운동에 기여했다는 설명글을 읽는 동시에 너무 아마추어같은 힙합음악을 듣고 있자니
우리 선조들이 이것을 위해 싸워왔구나 2019년의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쫓아 살아갈수 있는 그런 세상.
계속 걷는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엔 귀여운 광경을 목격한다.
신호등앞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옆에 체크무늬 자켓을 차려입고 화장도 곱게한 나이 지긋한 대구 할머니가 앉아 조곤조곤 오지랍 충고를 하고 있는것을 보았다.
"말도 그렇게 하지 말고예."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있다 아입니꺼."
할아버지는 그저 할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동성로에 볼일이 있어 온 대구 할머니는 노숙자 할아버지가 측은한 모양이었다.
연신 옆에 앉아선 이러쿵 저러쿵, 진심으로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구사람들에 대한 감이 대충 왔다. 대구에 처음와서 온지 2시간도 안된 그 시점에 나는 내 나름 대로 정리를 한다.
그동안의 역사적 불행 때문에 대구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해왔을 뿐, 이사람들 상당히 귀엽고 굉장히 생명력있는 에너지가 있다. 맛과 멋에 대한 기준이 높지는 않아 적당한 아름다움에 만족하며 살지만 동시에 예술적 가치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가치를 원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젠틀 먼스터 여기도 있네.
들어가서 이것저것 써본다.
뭘 먹을려고 줄서있나 봤더니 꼬챙이에 끼운 딸기들에 설탕물에 코팅한 걸 팔고 있었다.
미국에 살때 스트릿페어같은걸 하면 온갖 과일들을 슈거코팅을 해서 팔던게 생각이 났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때 엄마가 딸기를 씻어서 쟁반같은데 담아 흰 백설탕을 한 쪽 코너에 담아주면 그 설탕에 딸기를 듬뿍 찍어서 먹던 그맛, 그걸 팔고 있구나. 너무 머릿속에 그 맛이 그려져서 별 궁금하지도 않았다.
카페 골목이 나온다. 엄청 내공있어보이는 커피샵, 내일 낮에 다시 가서 커피를 마셔보기로 하고 걷는데 이번엔 힙합음악에 춤연습을 하고 있는 댄스학원이 보인다. 평일 저녁에 열심히 춤연습을 하고 있는 그곳 바로 아래는 와인을 팔고 있는 라운지. 이 골목 뭔가 분위기가 좋다.
차로 돌아와 호텔로 가려는데 그 버거집 힙합음악이 나를 둠칫둠칫 잡는다.
버거는 지금 안먹고 싶고 음악은 계속 듣고 싶어 근처를 어슬렁.
코너를 도니 자판기 이미지의 자동문이 보인다. 문이 열리고 여기도 힙합음악에 피자와 맥주를 파는 곳.
바에 앉아 맥주를 하나 시키고 음악을 듣는다.
대구가 점점 더 좋아진다.
2월 28일 목요일
대구에 오면 가고싶었던 곳이 있었다.
서문시장.
난생처음 부산에 자갈치시장에 가 받았던 문화충격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 아침을 먹으러 간다.
그런 문화충격은 없었다. 그냥 시장이다.
아침엔 달달한걸 먹어줘야지 씨앗 호떡, 넘 맛잇다.
목이 마르니까 주스, 자몽을 프뤠쉬하게 짜서 주스를 만들어주는 곳도 있다. 굿굿
아침식사 코스의 마지막, 김밥과 우동.
자 이제 디저트만 먹고 서울로 향하면 되겠어
차를 몰고 갤러리가 많아 보이는 골목으로 간다.
갤러리를 이곳저곳 둘러보는데 갑자기 피로감이 확 밀려온다. 카페인이 필요해
갤러리 골목 구석에서 일차로 커피,
그리고 어제 봐두었던 카페로 가 이차로 커피를 마신다. 스타벅스 리저브 같이 커피를 고르면 바로 앞에서 드립으로 내려주는 곳인데 분위기도 편안하고 커피도 맛있었다.
대구의 마지막을 장식.
오일리 버거, 대구에 와서 아니 경상도에 와서 먹은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가게 앞 스피커 앞에 앉아 음악과 봄의 미세먼지와 함께 즐긴 햄버거. 이걸 먹으러 언젠가 다시 올게, 굿바이 대구.
자 이제 서울로 다시 컴백. 올라가는 길에 마지막 코스, 영주 부석사로 향한다.
고속도로 상태가 아주 좋다. 막힌곳 없이 쌩쌩, 둠칫둠칫.
해가 질 시간이 다가 온다. 영주시내에 들려 쫄면을 먹고 갈까 말까.
해외에 나가 살때도 한국음식이 그립다거나 그런건 별로 없었는데 한가지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쫄면이다.
그건 코리안타운가도 파는데가 없었고 어릴때 먹던 신포우리만두 쫄면이 가끔 그렇게 먹고 싶었다.
할까 말까 할땐 하자. 영주에 중앙분식이라는 곳을 찾아 갔다. 오로지 쫄면만 있는 곳.
맛은 실망스러웠다. 너무 달고 소스에서 간장향이 났다.
역시 음식은 기대를 하면 안된다는 교훈.
늦었다. 국도를 타고 부석사로 고고.
가는 길이 좀 위험하다. 이차선 국도에 역방향으로 중장비차를 정차해놓고 농사일을 하고 있고 커브에서 추월차도 많았고 시골 동네개가 툭툭 튀어나와 유유자적 런어웨이 캣워크를 한다.
그런 코스를 통과, 부석사에 도착, 역시 골든 타임.
절 아래로 소백산과 멀리 마을이 보인다. 그 위로 해가 서서히 지는 걸 한참 동안 보았다.
마음이 차분해 진다.
이번 대구 안동 여행은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