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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권 Jan 09. 2019

Birdman, 버드맨 (2014)

피와 뼈,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냄새까지 뉴욕인 영화

43가 8av와 9av 사이, Riggan이 잠에서 깨어난다.

버드맨의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그의 의식을 건드리고 그의 몸이 서서히 공중에 뜨기 시작한다.

사람들 웅성웅성 거리며 그를 올려다본다. 

길거리 아줌마가 크게 외친다.

아줌마: “Is this for real or you shooting a film?” "야 그거 지금 진짜야? 아님 너네 영화찍냐!??"

버드맨: “It's a film.” "어 이거 영화촬영중!"

아줌마: “You people are full of shit”  "이 빌어먹을 영화쟁이들."


Dead on. 아주 정확해

다른 도시와 뉴욕의 가장 큰 차이점 중에 하나는 뉴욕커들은 연예인에 호들갑 떨지 않고 영화촬영 한다고 신기 해 하지도 않는 다는 거다.

오히려 자기 동네에서 영화촬영 한다고 하면 학을 떼고 싫어한다고 할까.

맨하탄, 내가 공부하던 학교 바로 옆, 워싱턴 스퀘어 파크 입구근처에서 조그만 한 트라이포드와 조촐한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던 학생인 우리에게 

곱상한 백인 할머니는 영화 찍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동네를 망치는지 일장연설을 해댔었다. 

하긴, 윌 스미스의 Hancock 영화 군단이 그 근처 워싱턴 스퀘어 파크 일대를 3개월동안 막아놓고 촬영을 할때는 나도 욕을 해댔었지. 이 빌어먹을 영화쟁이들, 왜 공원도 못지나가게 하는거냐


New York City. Center of the universe. 뉴욕, 우주의 중심.

뉴욕의 심볼이자 한복판인 타임스퀘어를 이리저리 헤집고 브로드웨이 공연장 뒷문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인물을 계속 따라다니며 촬영한 Birdman.

나는 이 영화를 앉아서 볼 수가 없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온 몸의 교감신경이 잔뜩 자극되어 있었는데,

멕시코감독들의 주특기인 굉장히 원시적이면서도 영화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연출력.

즉 마치 영화자체가 생물인 것처럼 심장이 팔딱팔딱 뛰면서 피가 숭숭 흘러나오고 그 신선하고 살아있는 피가 혈관을 통해 드럼 비트의 속도로 영화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동을 한다. 

거기다 영화 자체는 그 도시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Cut the crap. 야 닥치고 결론만 말해

Keep it real. 진짜만 통하는, 뉴욕

여기는 정글이고 선수들의 판이다.

예의 차리면서 두 번 세 번 간 볼 시간이 용납이 되지 않으며 사람들은 다양성에 관대하지만 개인의 소중한 에너지는 낭비되는 일이 없다.

바로 본론이고 문제가 있으면 바로 해결이 되어야만 하는 도시.

버드맨이 내 인생 최고의 영화중 하나가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뉴욕의 특징을 잔뜩 담고 있기 때문이다. 


#씬, 무대위, 배우들과 리허설 중,

Riggan은 남배우의 연기가 맘에 안든다.

Long take arching camera movement. 롱테이크, 카메라는 피사체들를 감싸듯 둥그런 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카메라, 남배우의 등뒤를 돌면서 건너편 riggan의 못마땅한 표정과 조명을 올려다 보는 눈을 보여주면서 계속 움직이다 riggan의 등 뒤에 도착 할 때즘, 

남배우는 대사를 마치고는 곧 이렇게 수다를 떨듯 감독을 보며 얘기한다.

“맘에 안들지? 감독 얼굴에 다 보여, 그냥 이건 어떤가 함 보여준거야 그리고,,,”

<<BANG!!!>>

그 남배우 머리위로 조명이 떨어지며 자연스럽게 대사가 끊긴다. riggan은 쿨하게 일어나서 무대를 벗어난다. 

얼마나 많은 감독들이 이런 초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는 하나님에게 기도했을까.

“음, 좋았는데...고 부분을 말이야, 좀 더 힘 빼면서 말이야 어쩌고 말이야 블라블라...”

이런 crap을 얘기하지 않아도 니 연기는 '개똥같아. 너무 형편없어'를 조명하나 배우머리위에 살포시 떨어 뜨리는걸로 문제 해결 끝. 

그리고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며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It fucking smells like Kimchi."

이 대사는 뉴욕에 잠깐이라도 살아서 온갖 식료품과 담배, 꽃등을 파는 뉴욕커에겐 없어서는 안되는 Deli라는 곳에 대해 조금이라고 안다면 한국의 자랑스런 음식을 모욕했다고 보기보단 뉴욕의 한부분을 리얼하게 다뤘다고 봐야 한다.

뉴욕시 전역에 있는 델리들의 79%이상이 한국인들 의해 운영되고 있다.

당연히 그안에서 신라면도 팔고 김치도 간혹 팔지만 김치냄새가 진동하는 델리는 개인적으로 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 씬이 거슬리지 않았던 이유는 델리=한국사장 이라는 뉴욕의 실생활의 한 부분을 양념으로 해서 약간 똘끼가 있는 힙스터 딸의 히스테릭한 앙탈을 쿨하게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주인이 옆에서 떠들고 엠마 스톤이

“It fucking smells like sushi."

라고 씬이 만들어 졌으면 게다를 두드리며 좋아 했을까?

오히려 맨하탄에 일본 델리사장? 이랬을거다. 

한때 블록버스터 영화바닥에서 주연으로 잘나가던 riggan은 이 브로드웨이 연극을 감독, 직접 출연하며 그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려 한다.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validation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돈이 많고 적고 늙었고 젊고 경험이 많고 적고랑 상관없이 이 validation,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길 항상 원한다.

샴쌍둥이가 아닌 이상 인간이란 원래 독립된 개체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개인이라는 각각의 등대에 누군가의 손길, 사랑이 닿을 때 마다 빛이 사아악하고 들어오게 되고 우리가 매일하는 모든 일련의 노력이라는 것은 결국 그 빛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쓰는 페이스북도 사실 우리의 이런 원초적인 필요를 건드린 영악한 현대의 테크놀로지의 한 도구로 보면 되는데 그래서 페이스북은,

잠깐, 나 버드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어.

타인의 인정라는 것, 역설적이게도 이것을 얻기 위해선 자신만의 투쟁, 자아성찰이 있어야 하고 영화 버드맨 안에서 남성들을 위한 면도기 광고에 나올법 한 낮고 무게감있는 목소리의 간헐적 등장은 riggan의 또 다른 자아의 건설적인 채찍질이다.

이렇게 우리 몸 안에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가 생명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롱테이크 샷에 있는데 기본적으로 배우의 연기를 끊지 않고 보여주는 연극무대위의 퍼포먼스 전달 방식이 뉴욕 브로드웨이쇼 감독,출연,그리고 혼란, chaos라는 영화 내의 배경과 잘 맞아 떨어진다. 

사실 이 촬영기법은 포커 판에서 앞에 있는 칩을 모두 안으로 밀어 넣고 웃는것과 같은 상당한 배짱과 담력이 있어야 할수 있는 것이다.

배우의 연기가 탁월하다는 조건이 맞아야지만 칩을 밀어넣을 때보다 더 환한 미소로 더 많은 칩을 끌어 당길 수 있다. 

촬영 전 시나리오안의 대사는 배우가 카메라앞에서 입 밖으로 내뱉어져야지만 비로소 그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 감독이 컷을 끊지않고 그대로 카메라를 돌리면서 관찰하듯이 촬영을 하면 그 프레임안의 배우에게 그 샷의 권력을 샷의 길이만큼 더 주게 되는 것이다. 

배우가 얼마만큼 하는냐에 따라 이 씬이 살고 안 살고, 영화의 생명력이 그 배우의 살아있는 연기에 달려있다.

배우들아, 화면을 장악하고 카메라를 이겨주세요!


#씬, 브로드웨이근처 어느 바,

재수없게 구는 영화평론 나부랭이가 맘에 안드는 Riggan, 에너지를 다듬더니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을 다음과 같이 시원하게 표효한다.

"None of this costs you fucking anything.

You risk nothing! nothing! nothing! nothing.!!!

I am a fucking actor.

This play costs me everything."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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