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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호스트 김형수 Feb 28. 2019

딸의 졸업식

-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간다

딸의 졸업

자연 다큐를 즐겨 본다. 자연의 법칙은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다. 강한 짐승이 약한 짐승을 사냥하고 가족을 부양한다. 물을 찾아 이동하고, 구성원 내에서 서열을 정하고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은 싸운다. 가진 힘의 크기에 따라서 서열이 정해진다. 약육강식의 잔혹함이 다큐멘터리 전반에 흐르지만, 때로는 어미 맹수가 보여주는 모성에 감탄하기도 한다. 사나운 짐승, 미물이라 할 지라도 새끼에 대한 어미의 헌신적인 사랑은 종종 인간사회의 비정함 과 비견되며 마음속에 파고든다. 양순한 얼룩말, 기린도 새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맹수와 싸운다. 새끼를 부양하기 위해 사냥하는 것도 주로 어미의 몫이다.

아비인 맹수는 어디로 간 것인지, 제 자식을 생뚱맞게 쳐다보는 녀석을 보면서 한심해하는 것도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재미다.


번식기에 암컷을 유혹해 잉태시키고, 어슬렁거리기만 하거나, 아예 가족 부양의 책임에는 손 놓아 버린 수컷 맹수들을 보며 아마도 포유류 중 인간에게만 주어 졌을 지 모르는 '부성애'를 생각한다.

가정 살림과 자식 교육은 엄마 몫이라며 손을 놓고 계셨던 우리 아버지 세대조차도 돈을 벌어 애들 가르치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몸이 부서져라 일하지 않았는가. 오직 인간에게만 부여되었을 이 '부성애'의 처절함을 몸소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을 새삼 발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영광된 지위와 역할이다.


딸의 유치원 졸업식에 다녀왔다.  평일 오후라 아빠들이 많이 참석 못한다며, 바쁘면 오지 말라는 아내의 정보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리해서 참석하길 잘했다.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에는 아빠들이 가득했다.

2012년 5월, 찬란한 봄날 오후에 태어나 5월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의 졸업식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제 곧 초등학생이라니.


유리창을 사이로 처음 만났을 때 만난  발그레한 얼굴, 아빠인 줄 알았는지 희미하게 아가가 미소 지어주던 게 엊그제 같다.

안으면 새털같이 가벼웠다. 자장가를 불러주면 어깨에 얼굴을 대고 잠들었던 내 아가.  

몸을 뒤집더니, 이내 기고, 일어나 앉더니, 내 손을 잡고 걸었다.

말이 늦터진다고 부부는 걱정했고, 왜 이가 안나지? 왜 밤에 이렇게 심하게 울까. 고열에 당황해 들쳐 안고 응급실에도 자주 갔었지. 우리 아빠도 그랬을까. 아... 우리 아버진 자식이 7명이니 둘째 때부턴 괜찮으셨겠구나.

남편 역할도, 아빠 역할도 처음이라 많이 서툴렀던 거 같아 와이프와 딸에게 미안하다.


졸업식장에 앉아서 스마트폰 안에 들어있는 딸의 아기 때 모습을 본다.

졸업하는 딸이 기특한데, 아가 때 딸 모습도 그립다. 지금 이렇게 너무나 예쁘지만, 더 커서는 지금보다 아빠를 덜 찾을까 벌써부터 서운하다. 스무 살이 되면, 서른 살이 되면, 딸이 커서 결혼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아냐...아냐 그 생각은 안 하련다. 


한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니 우리 아파트 단지의 '냥이' 가족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아빠는 누군지 몰라도, 새끼들을 살뜰히 챙기는 게 기특해 몰래 간식도 주곤 했던 녀석들은 겨우내 어디 가고 새로운 냥이 가족들이 나타났다. 어미가 새끼들 하나하나 핥아주고 먹을 것도 새끼들 먼저 먹이는 감동을 자연 다큐가 아닌 실생활에서 만나는 현장이다. 이제 몇 달쯤  지나면 아가들이 자라, 자신들만의 영역을 찾아 또 떠나리라.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한 내 유치원 졸업식

십수 년 후면 어미 아비 품을 떠나 자기 인생을 찾아 떠나게 될 내 딸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는 품에서 나를 보내며 어떠했을까. 아직 그 날은 너무나 멀리 남아 있는데, 부모님 마음은 어떠했을지 지금에야 헤아리게 된다. 


 어린이집, 유치원이라는 사회를 거치고 이제 초등학교 1학년 1반이 되는 내 딸 수현이를 통해 나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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