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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호스트 김형수 Jun 24. 2019

일산에서 산다는 것

마음 값을 알게 되다

교보문고에 들렀다. 경제경영 코너에는 월급쟁이였는데 아파트 스물몇 채를 가진 사람 이야기, 아파트 시대는 갔으니 땅 사라는 이야기, 부동산 경매 몇천만 원으로 시작하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여전했다.


 내가 스물몇 젊은이였을 때도 자신의 성공담을 자랑하는 부동산 투자, 주식 부자들의 비법(?)을 담은 수많은 책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경제경영서 매대에 놓여 있었다.


땅한뙈기  물려받을 것 없는 집에서 태어났기에  미래를 개척하는 것은 고스란히 내 몫이니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후 몇 년 동안 그런 류의 성공담들에 마음을 뺏겼다. 나 또한 그렇게 해서 부를 창출해 보겠다며 대출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도 했다.


어떤 것은 작은 성공을 거뒀으나, 어떤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함정이 숨어 있어 일상을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 외벌이로 내 식솔들을 책임져야 하고, 고령이신 부친의 생활비도 일부를 감당해야 하며 몇몇 투자 실패의 불을 끄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소득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50이 되고 60이 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월소득 높은 편임에도 저축할 여유도  많지 않았다.


일산 인근의 계곡에서 친구 가족과 즐거운 시간

일산을 만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산으로 거주를 옮기게 됐다. 한결 마음이 가볍다.

억 단위 대출에서 벗어났다. 같은 돈으로 서울 살이에서 구할 수 있는 집보다 넓고 쾌적한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집값이 몇억 올랐다며 쾌재를 부르는 것을 보며 잠시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게 됐다.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잘 만들어갈 커리어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부터다. 더군다나 내겐 투자를 잘할 수 있는 DNA가 없다.


일산 살이의 즐거움

일산은 서울 서북부에 위치한 1기 신도시다. 오래됐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일산이 '시'인 줄 안다. 고양시에는 덕양구, 일산 서구와 동구가 있다.


고양시의 캐치프레이즈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만 사는 곳은 아니지만, 소박한 이웃들이 많아 좋다. 비록 오래된 도시이지만 도로, 공원 등이 잘 되어 있어 살기 편하다. 서울에 인접한 여러 지역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일산은 주거에 드는 비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다.  

오래된 맛집도 많고, 주말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지천이다. 주차비, 관리비 등등 생활물가 또한 저렴하다.


부동산  가격만을 놓고 일산에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강남과의 접근성이 괜찮은 경기 남부 지역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과 대별된다.

서울과 일산을 잇는 자유로는 막히고, 지하철을 타도 강남까지는 한 시간이 넘는 환경인 것도 단점이긴 하다.


후배나, 지인들이 서울 살이의 고충을 토로할 때가 있다. 서울 서북부 마포, 종로 등이 그들의 일터라면 나는 일산을 권한다. 잠자는 시간 20분만 줄이고, 퇴근에 드는 시간 20분만 더 들여 과도한 빚을 없애거나, 대폭 줄일 수 있다면 할만한 일 아닌가.


수입의 50%를 대출 원금상환과 이자에 지출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일산으로 주거를 옮겨 쾌적하게 살면서 대출 상환에 드는 돈을 반으로 줄이고, 남는 반으로는 가족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소비(여행 등)도 하며, 일부는 또 저축도 할 수 있다.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는 내려놓는 느낌, 그에 따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경험이 뒤따른다.


가족과 여행길에 오르기전 집 앞에서

마음 값은 얼마인가

돈은 중요하다. 살고 있는 집의 가격도 중요하다. 한데 마음 역시 중요하다. 한 번도 마음에 대해서는 가격을 매기지 않아 몰랐다. 이렇게 개운한 마음은 얼마의 가치로 환산될 수 있을까.


칸트, 헤겔은 읽지 않아도  일상에서의 철학은 필요하다. 많은 이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자기 위안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렇게 살기로 했다.

옛 현인들이 말하는 안분지족의 삶이 그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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