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도가 본질이다
어느 날엔가 집 앞에 있는 미용실에 갔습니다. 원래 다니는 곳이 좀 멀기도 하고 귀찮아서, ‘남자 머리 커트가 얼마나 차이 있겠어? 가까운 데로 가자’는 생각에 늘 지나다니며 보던 곳에 들어갑니다.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커트보를 목에 둘러주고, 가위질을 두어 번 하다가 디자이너가 말합니다.
“아휴(큰일 났다는 듯 한숨 쉬며) 고객님... 이렇게 머리카락이 가늘어져 어째요, 이게 다 두피가 안 좋아서 머리가 가늘어지고, 이러다 보면 탈모로 이어지는 거예요. 아니 두피관리를 이렇게 안 하셔서 어떡해요? 두피관리 안 받으세요? 회원 가입하고 50만 원 결제하시면 20만 원어치를 더 서비스받으실 수 있는데 한번 해보세요.”
이 디자이너는 제가 ‘세일즈 스피치’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한 사람인지 당연히 모르겠지요. 밑도 끝도 없는 상품 구매 권유에 짜증이 살짝 나려고 합니다.
“아... 예... 예...” 하며 웃고 말았지요. 이내 디자이너의 연속 콤보 설명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원래 두피관리도 진짜 잘하는 걸로 이 동네 소문이 자자 하잖아요. 두피관리하시면 머리가 달라지는 걸 바로 느끼실 건데.”
“아... 예... 예... 근데 제가 좀 바빠서요 커트 마치고, 다음에 생각해 볼게요” 이 정도 했으면 알아들을 거 같았는데, 디자이너는 커트를 마치고, 머리를 감겨줄 때까지 계속해서 두피관리를 권유합니다.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보는데, 머리 모양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 귀 위쪽을 확 올려놓아서 주름 많고, 얼굴에 살 붙은 노안의 고등학생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여긴 다시 오면 안 되겠다 생각합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카드결제를 기다리는데 전표가 '찌징찌징' 소리를 내며 나올 때까지 디자이너는 최후의 판촉 수단인 두피샴푸 샘플을 주며 말을 이어 갑니다.
“오늘 머리 한 거 좀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이 샘플 비싼 건데 넉넉히(두 번 쓰면 끝날 분량이었습니다) 드릴 테니까 집에 가서 써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다음에 두피관리 생각해보세요~오” 까까머리 고등학생처럼 확 올려진 옆머리는 그 어떤 신의 손도 복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왔지요.
고객을 응대하는 직업, 상품을 권유하는 직업, 설득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TV에서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쇼호스트들이나 같은 운명입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실적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디자이너 분이 잘못한 건 무엇일까요. 두피관리상품을 설명하거나, 한정적인 판매조건(50만 원 결제시 20만 원 추가 서비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청자이며 고객인 저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잘못된 타이밍 - 인사하고, 가위질 두 번 한 뒤 권유함.
2. 태도 - 글로 표현되기 어려운 디자이너의 거슬리는 말투와 밀어붙이는 방식
미용실 사장님의 매출 압박 때문이든, 매출을 견인해 본인의 수입을 늘리려 하는 것이든,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든 두피관리 상품권을 고객에게 권유할 수 있죠. 하지만, 저라는 고객이 샵을 찾은 이유는 머리를 깎는 것입니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손님의 니즈(needs)인 ‘머리를 깔끔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먼저 헤아렸어야 하는 것이죠. 평생 동안 기술을 연마했지만, ‘말’이라는 것에 대해서 신경 쓰며 살지 못한 많은 분들이 종종 범하는 실수이기도 합니다.
상행위에 있어서의 말이든, 일상생활에서의 말이든 태도가 본질입니다. 미용실 디자이너가 제 니즈를 파악하고 먼저 머리를 잘 깎아주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 만난 사이의 서먹서먹한 마음은 사라졌겠지요. 아마도 이런 대화도 오고 갔을 겁니다.
“아유 옛날엔 머리 다듬기만 해도 예뻤는데, 머리숱이 줄어선지, 정수리 볼륨도 쉽게 가라앉아서 짜증 나요.”
“안 그래도 제가 깎으면서 보니까, 머리숱이 그렇게 적은 건 아닌데, 머리카락이 너무너무 가늘더라고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보통은 두피 상태가 안 좋아서 가늘어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어떻게 저희가 두피 상태 무료로 체크해드리는데 머리 예쁘게 자르고 한번 해보실까요?”
만약 이렇게 대화가 오고 갔다면 미용실 디자이너는 자신이 목표한 바에 한 걸음 더 다가갔을 것입니다. 커트를 마치고 거울을 봤을 때, 머리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에 또 이 샵과 디자이너를 찾게 됐을 것이고, ‘실력 있는’ 디자이너의 조언에 결국 두피 관리권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게다가, 뾰족하고 상스러운 말투가 아니라, 친근하고 상냥한 말투였다면 제 마음은 더 쉽게 열렸을 거고요.
미국의 어느 성공한 세일즈맨이 그의 아버지에게 들었던 인상 깊은 이야기가 [대화와 협상의 마이더스 스토리텔링](아네트 스미스 저 2001, 한언)라는 책에 나오는데 한 번 볼까요.
“지금의 저처럼 아버지도 세일즈를 하는 분이셨죠. 집집마다 방문 판매를 다닐 때, 영업사원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영업사원들은 ‘문에다가 발을 들이미는’ 판매 방식을 고집하곤 하죠. 하지만 아버지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죠. 발을 들이미는 영업사원들과 문을 닫아버리려는 주부들 사이에 기묘한 싸움이 벌어지는 걸 아버지는 수도 없이 보셨던 거죠. 아버지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문을 두드리고, 안에서 사람이 나오면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아라. 상대가 문을 열 때 오히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무나.’ 이 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비쳤으며, 주부의 의심을 덜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 주부가 아버지를 집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던 거죠.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보다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결국 판매로 이어지기 쉬웠습니다. 아버지는 진짜 세일즈맨이었습니다. 당신이 개발한 판매기법을 이용해 연매출 50억 기업체의 사장이 되었으니까요. 아버지는 결코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영향을 끼치고 싶은 사람들의 사무실이나 집에 발을 들이밀기 전에, 항상 그들이 자신을 초대하도록 만들었으니까요” - 대화와 협상의 마이더스 스토리텔링, 아네트 시몬스, 한언 2001. p73~74 中
홈쇼핑 방송이 나오기 한참 전 방문판매시장이 호황이었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고객을 존중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저 또한 초보 쇼호스트 시절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밀어붙이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방송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냉담한 시청자와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신경 쓰는 부분이 인용문에 등장하는 '성공한 세일즈맨의 아버지의 조언'과 닮아 가고 있더군요. 지금은 방송 준비를 할 때 어떤 고객층이 상품에 관심이 있을 것인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니즈를 어떻게 소구 할 것인가, 이 상품은 왜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 다음 순서로 주된 타겟층과 상품에 어울리는 어투와 표현들을 생각하고 상황에 맞추어 방송을 진행합니다. 살짝 열린 문틈에 발을 들이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저를 초대하도록 하는 스피치 전략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이와 같은 고객지향적 세일즈 스피치의 구성은 2W 1H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What he(she) wants it
Why he(she) needs it
How should I tell him about it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태도를 담고 그 다음으로 준비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뜻이죠.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풀어나가도 상품이나 기술, 서비스, 재화에 관한 설명은 비슷할 수 있으나 고객의 마음에 한층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한발 물러나서 기다릴 줄 아는 태도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몸짓에, 말투에, 억양에, 눈빛에 다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흔히들 태도가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상에서도 그러할 진대, 세일즈 스피치에서는 또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