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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호스트 김형수 Jan 11. 2019

쇼호스트의 말하기 3

- 무대 공포에게 말 걸기

고등학생 때 당시 인기 있었던 고등학생 퀴즈 대회에 우연히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지금도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손석희 아나운서였죠. 집에서 시청할 때는 모르는 문제가 없고, 출연자들보다 빨리 정답을 맞히곤 했는데, 실전에 나가니 옆에 앉아있는 출연자 녀석이 자꾸 저보다 버튼을 빨리 누르는 겁니다. 역시 퀴즈는 대진 운도 중요합니다. 2등이라도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자리를 일어서는데 손석희 아나운서가 내려와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30년이 지났는데도 그 아우라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두루 갖춘 그분은 아무 꿈 없이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교 2학년생에게 ‘큰 바위 얼굴’이 되었습니다.

 

나도 그분처럼 멋있는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면 국문과가 좋겠다는 담임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꿈이 생겼는데 문제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말을 하는 사람, 그것도 대중 앞에서, 그 무서운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직업을 너무나도 갖고 싶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는‘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발표만 시켜도 호흡이 가빠지고, 목소리는 떨리며, 머릿속은 아득해지는 타입이었거든요. 손흥민 같은 멋진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데, 운동신경이 둔한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정신없이 1학년을 보내다가 군대를 마치고 나니, 잠시 접어 두었던 꿈이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나운서가,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지? 고심 끝에 ‘공포에게 말을 걸기’로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누가 이 단락 읽어 보겠나? 교수님이 청하면 맨 앞에 앉아 수업을 듣던 복학생인 제가 손을 번쩍 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공강 시간 등 시간이 빌 때면 매일 녹음기를 들고 빈 강의실이나 인문대학 옥상에 올라가 신문을 낭독하거나, 큰소리로 뉴스 원고를 읽었습니다. 교양수업 등에서 조별 프로젝트 발표가 있을 때마다‘이때 아니면 남 앞에 언제 서보겠나’라는 마음으로 PT에 자원했지요.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두려움을 없애는 훈련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나름의 훈련을 계속해서 하다 보니 적어도 ‘남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공포’와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나운서와는 다른 길이지만 말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무대 공포와 친구가 되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그 친구는 제가 무대에 오르기 전 일에 생기를 돋우는 존재가 됐죠.


캐나다 토론토대 한 연구팀에서‘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을 했습니다. 조사 결과, 대중 앞에서의 연설이 두렵다는 응답이 고소공포, 금전문제, 죽음 등의 답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도 내일 혹은 다음 달에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하거나, 말을 해서 무엇인가를 팔아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남들 앞에 서면 긴장해서 원하는 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회사의 고위 인사들 앞에서 업무 또는 사업계획을 설명해야 하고, 다른 회사와의 경쟁 PT를 통해 수주를 해내야 하는 운명의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떨지 않고 말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서점에서 브런치에서 전문가의 조언을 찾았을 수 있죠.


스피치는 생각을 말로 전해서 타인의 생각에 영향을 주거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집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메신저(화자)가 떨고 있다면 신뢰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피치 자리에 서는 사람은 남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토론토대학 연구팀의 설문조사 결과처럼 대중 앞에서 말을 한다는 건 누구나 두려워하는 일이니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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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방송에서 떨리지 않냐고 후배가 묻습니다. 나도 떨린다고 답합니다. 하나도 안 떠시는 거 같던데요?라고 되묻습니다. 떨리지만 안 떨리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고 답합니다. 베테랑 강사, 아나운서, 쇼호스트 모두 무대에 오르면 긴장합니다. 말을 하는 무대에서의 공포증은 없애야 할 원수가 아니라, 말을 걸어 친해져야 할 대상입니다. 무대 공포증과 친해지면 두렵지 않습니다. 기분 좋은 긴장상태 것이죠.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믿으세요.


이른바 무대 공포증과 친해지는 방법들입니다.

1.   연구에 따르면 발표나 강의를 앞두고 생기는 불안은 4단계를 거칩니다. 1단계-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안을 예감하고, 2단계- 발표의 시작을 전후해서 강한 불안에 직면하며. 3단계 발표를 하는 과정에 심리적으로 적응하게 되고, 4단계 - 발표가 끝날 때쯤이면 모든 불안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불안은 해소되기 마련이라는 자기 암시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독여 봅니다.


2.    경험을 많이 쌓는 겁니다. 머릿속으로 100번 고민하느니 직접 한번 부딪혀 보는 게 낫습니다. 제가 아나운서, 쇼호스트 시험을 준비할 때는 비디오카메라가 없어서 거울을 보며 연습했지만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자신의 스피치를 연습하고, 모니터링하면서 훈련할 수 있습니다. 배우나 가수 중에도 데뷔 전에 번화가나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말하거나 노래 연습을 했다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반복된 훈련이 자신감을 줍니다.


3.   큰 목소리로 낭독하거나 스피치를 연습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면 목소리가 작아지고 떨리기 쉽습니다. 큰 목소리로 연습하되 말을 천천히 하는 연습을 권합니다. 무대 공포증이 있으면 여유가 없기 때문에 호흡과 말이 빨라지고, 결과적으로 전달력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말해야 호흡도 안정적이 되고, 듣는 이들도 편안합니다.


4.   심호흡을 합니다. 어느 테너 가수는 “빨아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흡을 한다면 불안감사라진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청중 앞에 서기 전에 2~30초 간 심호흡을 해보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청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 무대에서 생기는 공포를 줄이고, 성공적인 스피치 경험을 해내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지난날보다 성장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이 또 무대에 서는 공포감을 줄이고, 더 나은 스피치를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무대 공포에 쩔쩔매던 제가 해낼 수 있었으니, 당신께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스피치 실력의 향상은 무대 공포증과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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