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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Jul 30. 2020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생각만 했다면

커리어 체인지 15: 갈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기, 그리고 진짜 가보기

주소만 있으면 어느 전시든 직접 가서 보던 대학생 시절, 

동경하던 전설적인 큐레이터가 기획한 워크숍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리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갈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정보를 찾고 이메일을 보냈다. 


세르비아에 한번 가보니,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었다. 

독일로,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나갔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왔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인서울을 한 친구는 세명이고, 다들 각자의 대학생활을 하느라 자주 만나기 어려웠다. 대학은 시간표도 자유롭게 짤 수 있고, 언제든 집에 갈 수 있다고 하지만 혼자 사는 집에 가서 뭘 할지 몰라 6시까지 그냥 과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늦은 오후나 저녁시간에 열리는 미술관 오프닝을 다니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심심하면 전시 오프닝 하니까 가보지 그래라는 말을 듣고, 지하철 역만 알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직접 찾아다녔다. 더 많이 알고 싶으면 인사 미술 공간이라는 곳에 가보라고 했다. 보기 힘든 책과 전시 도록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대학 생활 내내 매주 열리는 전시를 보고, 주말에는 세미나, 컨퍼런스 그리고 작가와의 대화가 열리는 미술 공간들을 찾아다녔다. 대학생 때 모은 도록과 전시 리플릿이 큰 이사 박스 6개를 가득 채울 정도로 모이기도 했다. 


스무 살 첫여름방학, 고향이 있는 친구들은 집에 내려가기도 했지만 나는 서울에서 지내기로 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알바 생각은 없어서 매일 아침에 아르코 미술관 2층으로 가서 인미공 아카이브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마로니에 공원의 큰 나무가 넘실거리는, 김수근 특유의 붉은 벽돌에 큰 사각형 유리창이 있는 아르코 미술관 2층 한편에 있는 공간이었다. 



최정화 작가가 디자인한 책상과 의자, 디자이너가 브랜딩 한 A4용지로 복사를 할 수 있는 사무기기, 리셉션 같이 마련되어 있는 책상에서 일하는 두 명의 아키비스트,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포트폴리오와 DVD, CD가 담겨 있는 플라스틱 폴더가 가득 차있는 구석의 책장, 동시대 미술 현장의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는 사회과학책이나 철학책, 에세이집, 미술사 서적이 전 세계에서 모은 전시 도록과 작가들의 카탈로그 레조네가 뒤섞여 있는 메인 책장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매일매일 와도 새로운 책과 주제, 새로운 작가를 발견할 수 있는 보물섬 같은 곳이었다. 


인사 미술공간에서 해외 미술공간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국제협력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한국의 동시대 미술작가들을 소개하는 단체전을 독일, 멕시코 등지에서 기획하던 김희진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 선생님이 하는 전시, 썼던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저런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모르셨겠지만, 핫핑크 옷을 입고 부스스한 회색 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자료 더미를 가지고 와서 업무를 보는 김희진 큐레이터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미묘하게 서늘하고 조용한 아카이브에서 나는 게걸스럽게 책 보물섬을 탐험했다. 말로만 들었던 헤랄드 제만의 전시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큐레이터학이라는 1학년 전공 수업에서 김학량 교수님이 언급하셨던 그 큐레이터였다. 교과서가 따로 없는 전시기획이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여러 주제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읽고 정리해두는 것을 강조하셨던 것이 생각나서 어설프지만 마음에 드는 전시와 한번 더 읽고 싶은 글들을 복사해서 차곡차곡 스크랩하고 있었던 때였다. 


신이 나서 하랄드 제만 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모든 책을 골라서 탑을 쌓았다. 그중에서 하랄드 제만이 베오그라드의 큐레이터와 함께 기획한 <REAL PRESENCE>라는 워크숍을 발견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일 때 만들었던 미대생들의 '그랜드 투어'를 연상시키는 섬머 프로젝트였다. 


10년 동안 매년 여름 전 세계에서 미대생들이 모여서 자신의 프랙티스에 대해서 소개하는 '릴레이 프레젠테이션'과,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막 여행이 가능해진 베오그라드 시내에서 미술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섭외해서 베오그라드에 머무는 동안 작품 제작과 설치를 완료하는 '전시'파트로 이루어진 워크숍이었다. 


하랄트 제만과 함께 나오는 브릴리아나


날짜를 세어보니 다음 해인 2010년이 10년째 되는 해였고, 가고 싶었다. 

"갈 수 있을까?"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하랄드 제만은 10년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사망했고, 당시 같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큐레이터의 이름으로 구글 검색을 했다. 그 사람의 이메일 주소로 긴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조형예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큐레토리얼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은 한국의 미대생이고 꼭 참여하고 싶다고. 참여 신청이 끝났고, 우리 학교가 대상 학교는 아니지만 혹시 지금이라도 신청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알려달라고. 


포트폴리오를 달라고 했는데 직접 작품을 만드는 회화과나 조소과가 아니고, 대학교 1학년밖에 되지 않은 나는 딱히 보여줄 게 없었다. 그래서 2009년 용산참사 이후에 서울시의 재개발에 대한 여러 작가들의 사진 작업, 리서치 작업, 전시에 대한 생각을 모아서 리서치 피피티를 만들었다. 부족할 것 같아서, 당시 내가 조수로 있었던 독일 작가에게 이야기해서, 이와 관련된 작업을 같이 발표할 예정이니 추천 이메일을 써달라고 했다. 독일 작가는 좋은 기회라며 당시 강의를 하던 대학원의 회화과 언니 H와 함께 리얼 프레젠스에 신청했다. 


이메일이 오가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막상 확정을 받았을 때 비행기표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여권은 있는지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가족여행으로 일본은 가봤지만, 한 번도 혼자서 여행한 적도 없고 유럽은 더더욱 처음이라 덜컥 겁이 났다. 


부모님에게는 특별히 내가 한국에서 뽑혀서 가는 기회니 꼭 지원을 해주셔야 하고, 이 은혜는 대학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겠다고 했다. 얼마나 떨렸던지 장점과 기대 성과, 세르비아에서 하게 될 활동과 정보들을 A4용지에 정리를 해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아버지는 여자 혼자서 여행하는 것에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나이가 많은 대학원 언니와 함께 가고 방을 같이 쓴다고 하니 마지못해 OK사인을 내려주셨다. 


세르비아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여행차 다녀왔다는 어떤 사람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기숙사에 가기 하루 전날 게스트하우스만 예약을 해놓고 출발했다. 


전쟁박물관 옥상, 2009년이라 내가 가기 일 년 전 캠프의 사진 http://www.ica-realpresence.org/texts.html


리얼 프레젠스 2010은 마지막 해라 10년 동안 왔었던 미대생이 졸업하고 작가가 되어, 더러 대학원생이 되어 다시 방문했다. 마지막 해 워크숍이라 규모가 제일 컸고, 학교 단위로 한 스튜디오가 통째로 오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베를린 UDK, 비엔나, 파리 소르본과 보자르, 런던, 암스테르담, 헬싱키, 부다페스트, 니스, 팔레르모, 밀라노, 로마 등지 미술학교에서 온 200명의 미대생들 중에 한국 사람은 세 명 있었다. 한국 사람들만 같은 기숙사 방에 배정해서 만나게 된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던 02학번 선배(공교롭게도 같은 학교였다), 나와 H 언니였다. 


회화, 조소, 영상,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미대 출신들이 모인 3주간의 베오그라드는 매일매일이 스펙터클 했다. 매일 오전에는 전쟁 박물관 근처에 있는 홀에서 30분씩 순서대로 작품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떤 매체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자기소개를 했다. 점심을 다 먹고 각자 작업을 하러 뿔뿔이 흩어지거나, 베오그라드를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사고 전시 장소를 섭외하러 다녔다. 


주최에서 마련한 3층짜리 미술공간, 베오그라드 대학의 미대 갤러리, 전쟁박물관의 일 부분 중에서 자기 자리를 미리 선점하기 위해서 그룹을 이루기도 했다. 저녁은 매일 파티 분위기였다. 항상 새로운 사람이 옆자리 앉아있을 수도 있었고, 오늘 자기소개를 한 친구나 관심 있는 학교의 학생들과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 


일단 손을 내밀어보자. 


미술계에서 일할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언제나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말이 통했다. 용산참사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시공간적 부조리함, 시각적 충격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에서 동의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고등학교 친구들 보단 베오그라드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와 더 깊게 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영어로 나의 요즘 관심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나누다 보면, '취준'이나 '스펙'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한국의 고정관념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거꾸로 폐기하게 된 고루한 개념들도 있었다. 이렇게 매일 새로운 자극과 영감, 정보가 있는 네트워크에 나를 데려가고 싶었다. 


나도 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작업하고 싶다, 거기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자동적으로 의심이 따라 올라왔다. 한국의 양혜규 작가가 졸업하고, 다니엘 번바움이라는 큐레이터가 교장으로 있는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에 가고 싶어 졌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동아시아 전체에 대해 질문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지정학적으로 한 지역의 근대역사와 동시대 미술계의 메인 플레이어들을 잘 알아야 포지셔닝을 잘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유명한 미대에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이론이나 트렌드를 발 빠르게 접할 수 있고, 내 작업과 아이디어를 보여줄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당연한(!) 이치도 알게 되었다. 


"갈 수 있을까?" 


한번 가보고 싶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더 큰 의미의 미술계라는 공동체에 속하고 무슨 농담을 하는지 알아듣고, 한 몫을 하고 싶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전시를 하고, 한국의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만나면서. 


베오그라드에 왔었던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소속 학생들에게 연락처를 받고, 함께 방문했던 교수인 토비아스 레베르거 작가에게 물어봤다. 큐레이터에 관심이 있다면 미술이론을 가르치는 이자벨 그로우 교수의 코스에 문의하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식 교환학생으로 가는 건 까다롭지만 일단 도착하기만 하면, 그리고 교수님의 허락만 받는 다면, 청강하는 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 오자마자 독일어 어학시험을 준비하면서, 수석입학할 때 받았던 '어학연수'특전을 독일로 가기 위해 서류 준비를 해서 그해 겨울 방학에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로 갔다. 학생 보험비 50유로를 내고, 첫 수업에서 토론할 헤겔 논문 A4 묶음을 도서관에서 찾아가면서 독일에서 4개월을 보냈다. 


베오그라드에서 만났던 유럽 각지의 미대생 친구들은 어느 도시를 가도 서로의 친구들, 미술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나 꼭 봐야 할 전시를 추천해 주면서 계속 인연을 이어갔다. 내가 뉴욕이나 스페인에서 일할 때도 친구들과의 느슨한 연결이 새로운 도시에서 적응하고 친구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업계 네트워크는 아직 이해관계없이 친구로 만나고, 서로 도와주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또래일 때 시작되는 것 아닐까? 


나는 한국의 작가 레지던시에 지원하거나, 전시를 위해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가이드를 자처하며 서울을 쏘다니고, 작업 리서치를 도와주고, 기금을 받을 수 있게 번역을 하고 관계자를 소개해주면서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미술계를 떠나 IT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니, 벌써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SNS로 브랜드를 론칭한 친구들이 있다는 소개를 받기도 했다.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커리어가 쌓여가며 점점 더 강력한 네트워크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미술계 바닥을 구르며 성장하길 바란다는 

학부 시절 교수님이 사인해주신 덕담이 떠오른다. 




사람일은 정말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진짜 갈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는 것에서 

그리고 실제로 가보면서 

내 삶의 풍경이 바뀌고 

주어진 생각, 주어진 인간관계를 새로운 공간에서 완전히 리셋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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