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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Aug 27. 2020

의자 정리하다 면접 제안을 받다

커리어 체인지 16: 대학교 4학년 때 첫 직장을 어떻게 찾았는지 

대학교 4학년에는 졸업전시를 기획한다. 기획회의에서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하나의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위원회를 만들고, 각자 팀을 정하면 전시 오픈일까지 일을 담당해서 착착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날짜가 정해지면 어떻게든 전시가 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졸업전시 보다 학교 외부에서 일어나는 전시 소식이나 세미나를 계속 쫓아다녔다. 


카셀 도큐멘타의 총감독이었던 로저 브뤼겔이 2012년 부산비엔날레 총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번 광주비엔날레의 라인업이나 예산 규모에 밀리던 부산의 약진이 기대된다는 말을 들었다. 앨런 새큘라 같은 리서치, 도큐먼트, 지역의 역사와 지정학적인 기억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이 토대가 되는 그의 전시 스타일도 좋았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부산을 부정하고 멀리로만 뻗어나가고 싶었던 나에게 비엔날레가 부산에서 유명한 감독이 기획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국제적인 작가들과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프로젝트에 꼭 참여해보고 싶었던 대학생의 야망이 활활 타올랐다. 


졸업하고, 석사를 하면서 꼭 비엔날레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안공간 풀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했다. 감독이 직접 와서 이전에 했던 큐레토리얼 프로젝트, 그리고 카셀 도큐멘타 이야기를 해주는 자리였고 당시 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김희진 선생님이 사회를 본다고 해서 며칠 전부터 기다렸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구기동으로 갔더니 아직 행사를 위한 준비도 안돼 있어서 멀뚱멀뚱 기다렸다.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 의자를 정리하는 스태프를 도와 행사장 준비를 도왔다. 일찍 오기도 했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걸 보기도 뭐해서 그런 거였는데 풀 사람들과 로저 감독이 들어오길래 인사도 했다. 앞자리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전시가 기대되고, 부산에서 어떤 전시를 할 수 있을지, 카셀 도큐멘타의 성공처럼 부산에서도 '교육'과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가 가능할지 질문이 백개나 만들어졌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이어서 하다가 스태프들과 참여했던 작가, 강연을 들었던 미술계 사람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용산참사 이후 한국에서 재개발 관련된 커뮤니티의 붕괴, 서울의 시각문화의 변화를 추적하는 리서치 작업, 작가 콜렉티브의 프로젝트 들을 이야기하다가 서울에서 부산 비엔날레 준비를 위한 리서처로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연두부 찌개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얼결에 취직을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부산 비엔날레 프로듀서였던 분에게 연락처를 전달하고, 언제부터 일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그다음 날 부산에 있는 사무국에서 연락을 받아 정식으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현재 대학생이고, 영어로 모든 대화를 하면서 원하는 정보나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전달할 수 있고, 작가 리서치와 프로덕션을 돕는 프로덕션 매니저 일을 해본 적 있고, 중국어와 독일어도 조금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제안을 하신 것 같다. 실제로 다음날 연락을 받았을 때 아직 대학 재학 중이라 근로 계약이 취소될 뻔했는데, 학교 교수님과 남은 학기는 사이버 강의와 과제로 제출한다는 확인을 받고 월급에서 30%를 제하고 월 108만 원을 받고 일하겠다는 조건으로 취직을 했다. 



첫 직장이었다. 서울에 있는 프로듀서 사무실에서 해외 기관, 작가들과의 업무 연락을 전화와 이메일로 진행하고 한국어로 자료나 요구사항을 번역, 한국의 현지 업체 리서치와 견적을 통해 프로덕션 예산과 스케줄을 확정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비평가나 미술공간, 작가 스튜디오 방문을 준비하고 현장에서 통역과 기록을 진행하거나, 워크숍이나 토크에 참석할 때 통역을 하기도 했고, 후에 전시에 들어갈 수도 있는 작업을 사진 찍고 문서로 정리하는 일을 보조했다. 


메인 어시스턴트 한분이 수행을 대부분 했고, 프로듀서 한 분과 내가 팀이 돼서 3개월 정도 초기 프로덕션 준비를 담당해서 작가 리스트 40명 정도를 픽스했다. 그중 1/3이 한국에서 현지 제작하거나 설치하는 커미션 작업이었고, 워크숍 형태로 실제 시민들을 섭외하거나 참여를 받아서 완성해야 하는 퍼포먼스형, 커뮤니티형 프로젝트들도 있었다.  


전시 오픈 전 2명의 전시팀 코디네이터와 교육 코디네이터, 사무국 코디네이터가 추가 채용돼서 팀이 생겼다. 그때 만난 동료들은 아직도 활발히 미술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각자 담당하는 작가로 나누어서 예산 집행, 프로덕션의 A-Z와 보고, 현장 감리 및 작가나 담당자들의 수행 통역까지 병행하는 일이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사고도 많이 생겼다. 


작가들은 작품을 제작할 때 타협하지 않는다. '예산이 부족하다. 시간이 없다. 섭외가 안된다. 한국 법상 불가능하다.'등등 어떤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 결국 사무국에 이야기를 해서 예산을 만들어 내거나, 설치팀이나 운송회사와 협상해서 스케줄을 조정하거나, 제작이나 수입, 재료에서 무상지원을 협의해내거나, 온갖 기획서나 연락을 통해서 협조를 받아 내야 한다. 


"No for an answer"을 달고 다니는 갑과 슈퍼갑과 갑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하며, 데드라인을 지키며, 물리적인 완성도까지 끌어내야 하고, 어느 누구도 의가 상하지 않게 해야 하는 저예산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첫 직장으로 다니면서 많이 성장했다. 


➀일을 잘하려면 우선순위를 파악해야 한다. 

➁파이프라인에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일정, 법규, 담당자 휴가, 국경일, 세금...) 

➂사고는 터진다. 어떤 문제 던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➃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시키지 않아도, 평소에 관심 있던 큐레이터와 잘 알고 있는 미술기관의 이벤트에 일찍 도착해서 의자를 정리했을 뿐인데.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미술 현장에서 전시를 만드는 일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물리적으로 시간 내에 구현하는 일. 


아이 웨이웨이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으로 빌려오는 전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찰스 렌프로 같은 건축가 스튜디오와 미국의 개념미술가의 도시 정원 프로젝트를 실현하고, 중국과 아프리카의 자원착취에 대한 리서치를 책으로 번역하고 어린이 연극으로 만들고, 도자기 타일이나 합성섬유로 된 모형 배를 제작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문가의 시간과 협조가 필요한지, 전혀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자문을 구하고 배워가면서 완수할 수 있다는 과정이 짜릿했다.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만들려면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 커뮤니케이션이 재밌었다. 견적 단가나 마감 같은 물리적인 숫자로 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과업에서 마진을 찾아내서 협상했다는 쾌감도 있었다. 


보통 첫 직장은 사수가 있고, 업무를 배정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담당하는 프로젝트를 '성공' 시킨다는 목표 중심적인 역할이 있어서 특수했던 상황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 깨달았다. 물론 시급보다 못한 월급을 받으며 격무에 시달리고 성과를 내도 기본적인 생활비도 못 버는 미술계 현실에 눈 뜬 것은 6년 뒤인 2018년에 깨달았지만. 


첫 번째 직장이 비엔날레여서,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과 프로젝트를 '동시다발' 적으로 진행해본 경험은 큰 자산이 되었다. 실제로 비엔날레 코디네이터가 기관에 큐레이터로 입사하기 위한 등용문처럼 비치던 때도 있었다. (한때지만) 이때 일했던 작가들이 알음알음 제작하는 일을 맡기 기도 했고, 비엔날레를 한 번 해봤다는 게 경력이 돼서 다른 비엔날레 전시팀에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처음 직장을 잘 가야 한다더니, 의자 옮기다가 기회를 얻을지는 몰랐다. 

지금 2012년으로 돌아가도 로저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No for an answer" 

초년생 때 매일 집에서 울고 싶게 했던 말이지만, 어떤 일을 해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고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시도해보게 하는 나의 모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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