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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서윤 Nov 21. 2023

저지능 범죄와 저지능 수사의 환장 콜라보?!?!

쯔진천의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한스미디어, 2021)에 대한 서평

평점: 4/5

두줄평: 단언컨대 이 보다 잘 쓰인, 이 보다 짜임새 있는 허술한 추리물은 없다. 

배경은 작품의 배경인 실제 싼장커우시(三江口)의 전경입니다.


    중국 추리소설계의 대신(大神)으로 불리는 쯔진천의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는 진지한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 코믹 소동 활극'이다. 금은방 털기에 지쳐 부패 공무원을 털 계획을 세우고 싼장커우시에 온 강도단 팡차오, 류즈와 상급 공무원의 부패 조사를 위해 싼장커우시로 전배 된 장이앙 등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치밀하지 못한 저지능 범죄들이 벌어지고, 그 범죄들을 장이앙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저지능 수사로 해결한다. 


    이 소설의 가장 재밌는 점은 소설 시작만 해도 강도 팡차오, 류즈와 형사 장이앙이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형사 장이앙은 발령받은 지 하루 만에 동료 형사를 죽인 범인으로 오해받고 누명을 벗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1급 지명수배범을 잡는다. 이후에도 정말 별다른 수를 쓰지 않았는데 범인들이 넝쿨 째 장이앙에게 찾아와 제 발 저려 자신의 범죄를 술술 분다. 일련의 사건을 봤을 때 장이앙이 형사로서의 수사능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억세게 좋은 행운을 타고났음은 분명하다. 형사 장이앙의 행운은 범죄 집단의 불운을 의미한다. 즉 이 소설은 행운과 불운으로 대변되는 우연에 의존해 완전히 동떨어져 있던 장이앙과 두 강도를 밀접하게 연결해 버린다. 물론 이 연결 과정이 결코 뻔하거나 유치하지 않다.


    추리 소설이 이 정도로 우연에 의존하면 긴장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는 허술한 저지능 범죄와 그보다 더 허술한 저지능 수사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이 우리가 읽어왔던 일반적인 추리 소설이 아님을 인지시킨다. 그리고 그냥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너무 매력적이라 이 허술한 추리 소설을 용서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행운을 뛰어난 형사력으로 포장하는 뻔뻔한 장이앙은 과연 주인공답다. 사건의 모든 전말이 밝혀지고 장이앙이 수사 초반에 설정한 가설부터 수사 방향까지 모조리 틀렸다는 게 밝혀졌을 때도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급비밀이라 여러분에게 밝힐 수 없다.'라며 비장하게 말하는 장이앙과 '역시 장이앙님'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부하 직원들의 모습은 폭소를 뿜게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범죄자들 역시 골 때리게 매력적이다. 절도로 획득한 캐리어에서 시체가 발견되자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샤팅강과 샤오마오는 우연히 마주친 강도단 팡차오와 류즈를 보며 '쟤네 이미 사람 죽인 것 같은데, 우리가 하나 더 선물해 주자!'라고 말하며 캐리어를 바꿔치기한다. 아니 이렇게 시체를 허술한 방식으로 뻔뻔하게 처리하다니?!?!?! 어떤 추리 소설에서도 본 적 없는 저지능 처리 방식이지만 작품 속 범죄자들의 평소 행실을 보았을 때 너무 개연성이 있다 보니 '아니 이야기가 이렇게 튄다고?'라고 웃으면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우습고 하찮은 인물들로 엮어낸 이야기의 짜임새는 결코 우습지 않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물들, 불운에 의해 터지고 행운에 의해 해결되는 각종 범죄, 중국 특유의 꽌시(關系) 문화로 수사망이 좁혀 와도 '숙부가 있으니 괜찮다'며 별다른 긴장감이 없는 용의자들을 보고 있자니 도통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나름대로 추리하며 작품을 읽었지만 소란스러움 때문에 생각을 도저히 이어나갈 수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독자에게 혼란을 주다니 정말 색다른 추리 소설이었다. 이런 것도 서술 트릭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책을 덮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범에 대한 이런저런 힌트들이 있었지만 이놈의 서술 트릭 때문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평론가들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작품의 소란스러움과 뻔뻔함에 속아 누가 범인인지 도통 알 수 없었으니, 적어도 나에게는 잘 먹혔던 유쾌한 서술 트릭이었다. 


    여러모로 참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지만 제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라는 제목은 작품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이 작품이 부패한 중국 공직사회를 은은하게 꼬집고 있긴 하나, 등장인물들이 부패 그 자체를 척결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집단의 부패를 오히려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장이앙이 상급 공무원의 부패 이력을 조사하기 위해 전배 된 것이긴 하지만 이 역시 해당 상급 공무원이 직속상관의 사내 정치 라이벌이었기 때문에 몰아낼 구실을 잡기 위한 수사였다. 그렇다 보니 옮긴이의 말에서 이 작품의 원제가 <저지능 범죄>라는 걸 듣고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너무나도 적합한 제목이다. 


    이 서평을 읽은 이들이 중국 추리소설계의 대신(大神)이라고 불리는 쯔진천의 추리 소설에 대해 오해할까 봐 겁난다. 물론 추리소설 측면에서만 보자면 이 작품은 그리 잘 쓰인 작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나이브스아웃' 같은 뻔한 추리 영화도 잘 만든 추리물이라는 평을 들으며 시즌 2까지 제작되는 세상이 아닌가? B급 소재로 '나이브스아웃' 같은 B급 작품을 만드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당연하다. B급들끼리 뭉쳐봐야 무슨 시너지 효과가 나겠는가? 하지만 쯔진천은 B급 소재로 깔쌈한 A급 작품을 만들었다.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는 내가 읽은 쯔진천의 첫 작품이지만, 이 작가는 분명 힘이 빡 들어간 진지한 추리물도 잘 쓰는 작가일 것이다. B급 소재로 C급, B급, A급 중 어떤 급의 작품을 만들 것인지는 순전히 조합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얼른 도서관에 가서 쯔진천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무증거 범죄>, <동트기 힘든 긴 밤>, <나쁜 아이> 등의 다른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리고 부패가 가득한 이 세상에 얼렁뚱땅 정의를 구현해 줄 장이앙 같은 인물이 메시아 마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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