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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서윤 Feb 04. 2024

아피온카라히사르를 아시나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역주행 후진 버스는 친절하고 소시지와 로쿰은 맛나요

    남들과는 다른 뻔하지 않은 튀르키 여행을 하고 싶다며 호기롭게 아피온카라히사르(Afyonkarahisar) 여행 계획을 세운 철없고 대책 없는 나 자신을 칭찬한다.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는 유명 관광지다 보니 영어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앙카라에서부터 슬슬 영어가 작동하지 않는 걸 느꼈고, 앙카라 버스터미널에서 아피온카라히사르로 가는 버스 승강장을 찾을 때는 남동생과 함께 구글 번역기와 손짓, 발짓 등 모든 걸 총 동원해야 했다. 그렇게 무사히 아피온카라히사르 행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 올바른 버스를 탔다는 안도감과 함께 문득 걱정이 들었다. 나 아피온카라히사르 가서 잘 여행할 수 있을까?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다며 고른 아피온카라히사르 속칭 아피온은 세계 최대 의료용 아편 생산지이고, 온천과 인근의 프리기아 시대 유적으로 나름 유명한 도시이다. 하지만 파묵칼레와 카파도키아라는 세계적인 관광지 중간 즈음에 위치한 탓에 관광객이 그리 많은 도시는 아닌 듯했다. 또한 아피온카라히사르 도심 한 복판에는 거대한 돌산이 박혀 있고 그 돌산 위에는 '아피온카라히사르 성'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풍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방문을 결심했다.


    하지만 생소한 여행지답게 정보를 찾기 너무 어려웠다. 그나마 아피온카라히사르는 '대한민국(서울)-아피온카라히사르 터키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아피온카라히사르 시에서 한국 미디어 기자들을 초청해 단체 투어를 제공했던 적이 있어 관련 내용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https://m.blog.naver.com/lsh5755/221447097766) 자유 여행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이 글 덕에 '내가 아피온카라히사르를 방문하는 최초의 한국인은 아닐 것 같아! 그러니 나도 이 분들처럼 잘 여행할 수 있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아피온카라히사르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아피온 버스터미널에서 와르르 풀썩하고 사라졌다. 버스 터미널에서 예약한 호텔까지 어떻게 가야 하느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앙카라에서 아피온에 가는 내내 대중교통을 검색해 봤지만 구글 지도와 Rome2Rio 둘 다 '50분 걷거나 택시 15분 타세요!' 뿐이었다.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택시 승강장에 택시는 하나도 안 보이고 정체 모를 튀르키예어로 쓰여있는 돌무스와 11번 시내버스만 버스 정거장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하단 듯 버스 별 노선표는 전무했다. 이때 즈음 당황, 후회, 동생에 대한 미안함(동생은 아피온카라히사르 너무 정보가 없는데 안 가는 거 어때?라고 말했었다.) 등등으로 정신이 멍해져서 사고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때 남동생이 '내가 물어볼게!'라고 말하며 씩씩하게 11번 시내버스 기사님께 가서 호텔 위치를 보여주며 여기로 가는 버스 맞냐고 물어봤다. 그때 처음으로 '짜식ㅠ 고맙다. 같이 여행 오길 잘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기사님은 당연히 영어를 못하셨지만 영어를 할 줄 아시는 승객분의 도움으로 11번 버스가 우리 호텔(Double Tree by Hilton Afyonkarahisar) 쪽으로 간다는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11번 시내버스를 탄 이후에도 구글 지도로 우리 호텔 쪽으로 맞게 가는지 계속 확인했다.


    그러다 갑자기 호텔과 완전 반대인 방향으로 버스가 향해 동생과 나는 크게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다른 승객들도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기사님이 다른 버스 노선과 헷갈려 길을 잘못 든 것이었다. 학생 때는 학교 가기 싫어서, 직장인이 된 지금은 회사 가기 싫어서 가끔 버스 기사님이 길을 잘못 들어 학교나 회사를 빠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바람이 튀르키예 여행 중 아무 정보도 없는 아피온카라히사르에서 이뤄지다니! 이럴 때 보면 신은 참 짓궂다.


    얼빠진 나와 내 동생을 보고 많은 튀르키예 분들이 'No problem'이라며 안심시켜 주셨다. 그러곤 11번 버스가 후진을 시작했다. '역주행인 것도 엄청난데 후진 상태로 역주행이라니...'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도로에 차가 없어서인지 다들 웃으며 해프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게 맞겠지... 나와 내 동생도 튀르키예인들과 함께 웃었다. 그때 즈음에는 버스의 모든 승객이 우리가 한국인이고 Double Tree by Hilton Afyonkarahisar 호텔로 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11번 버스는 무사히 우리를 호텔 앞에 데려다주었다. 버스의 유이한 동양인이던(어쩌면 도시 전체에서 유이한 동양인일지도) 나와 내 동생은 호기심 어린 상냥한 눈빛을 받으며 튀르키예 승객분들과 작별했다. 호텔 로비에 도달했을 때는 동생과 나 둘 다 '이게 되네?'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 해외여행을 하면 이랬으려나? 그 시절 세상을 여행하셨던 이들의 모험심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버스 터미널에서 호텔로 이동한 것뿐이었는데 정보가 없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모험을 한 것만 같았다.


    모험 끝에 도착한 호텔은 정말 최고였다. 척추를 하나하나 감싸는 매트리스와 바삭하고 폭신한 침구까지 완벽했다. 한참을 늘어져있고 싶었지만 일어나 아피온카라히사르 시내로 향했다. 두 눈으로 직접 거대한 돌 위의 아피온카라히사르 성을 보고 싶기도 했고 카이막, 소시지(Sucuk), 로쿰 등으로 유명한 미식의 도시이기도 하다 보니 뭐라도 사서 먹고 싶었다.


    1860년부터 로쿰(Turkish delight, Lokum)을 팔았다는 'Mirimoglu Helva ve Sekerleme'의 로쿰과 헬바는 시식하자마자 로쿰은 쫀득 달콤하고 헬바는 부들 고소 달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맛 미미(美味)였다. '이건 사야 돼!' 란 생각과 함께 바로 3 상자 씩 쓸어 담았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최갑수 editor님! https://www.travi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79) 건너편에 있는 Sucuk Doner 집도 들러 이동하느라 긴장해 배고픈 줄도 몰랐던 주린 배를 채웠다. 매운 듯한 쯔란 향과 이빨을 밀어내듯 톡톡 터지는 Sucuk 소시지의 식감과 쫜득한 빵의 조화 이 역시 아름다운 맛이었다.

Mirimoglu Helva ve Sekerleme 의 술탄 로쿰
한 판 다 먹고 또 한 판 주문한 로쿰
압도적이었던 Afyon의 Sucuk

    다시 호텔로 돌아와 폭신한 침대에 누우니 오랜만에 여행이 아니라 모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유명한 관광지만 다니며 구글 지도와 블로거들이 떠먹여 주는 정보대로 편하게 다녔었는데, 새삼 그분들의 소중함을 느낀 하루기도 했다. 아피온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정말 막막했는데 따뜻한 튀르키예분들과 맛있는 음식 덕분에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아피온 3박 4일 중 첫 날일 뿐이었고, 그 이후에는 더 난이도 높은 모험이 동생과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통신이 안 터지는 지역에서 헤매는 등 더한 모험이 남아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아피온을 떠나 파묵칼레 인근 대도시인 데니즐리에 머물고 있다. 동생과 나 둘 다 아피온에서의 여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좋은 호텔과 친절하고 호기심 많은 아피온 사람들 덕에 현지인들과 직접 교류할 수 있었던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아피온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아피온을 방문하게 될 또 다른 한국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쓰는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 글이 아피온으로 여행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은 욕심도 든다. 그러니 부디 다음 편에서 이어질 아피온과 인근 소도시 아야진(Ayazini)이 나를 매료시켰던 것처럼 독자님도 매료시킬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이 모험은 혼자선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며 동생이란 든든한 아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글에서 나마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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