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 Pigeon valley에서 만난 강아지야 고마워!
터키 여행도 어느덧 2주 차이다. 꼬박꼬박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지만 역시 매일 글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튼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앙카라를 거쳐 지금은 아피온카라히사르라는 작은 동네에 머물고 있다. 작은 동네다 보니 간만에 글을 쓸 짬이 났다.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는 한국인들이 정말 많이 가는 관광지다 보니 여행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온갖 곳을 방문하느라 숙소에 돌아오면 씻고 곯아떨어지기 바빴다.
하지만 이렇게 피곤한 와중에도 여행 메이트인 남동생에 대한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많이 돌아다니는 게 힘든지 남동생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고, 음식도 입에 안 맞는다며 식사 시간만되면 죽상이 됐기 때문이다. 남동생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 쓴 글이 '0. Tlqkf... 혼자 여행할걸'이다. 튀르키예 여행을 주제로 쓴 첫 글이 이런 글이라니 발행 취소할까 싶은 후회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놈의 원수 같은 남동생 덕에 터키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찾아왔다. 동생은 카파도키아와 파묵칼레에서의 여행 일정을 담당했었다. 카파도키아를 대표하는 투어인 그린투어와 레드투어에 각각 하루 씩 투자하다 보니 카파도키아에서 자유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날은 딱 하루뿐이었다. 하지만 동생이 짠 자유일정 계획을 보니 정말 기가 찼다. 계획을 짜기 귀찮았는지 숙소 근처에 있는 관광지처럼 보이는 포인트 두 개만 찍어둔 것이다. 그 마저도 리뷰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순간 열이 조금 올랐으나 참고 여행 계획을 조금 수정해서 오전에는 괴레메 야외 박물관을 다녀오고, 점심을 먹고 난 후 동생이 찍어둔 두 포인트를 다녀오기로 했다.
동생이 찍은 두 포인트는 각각 Pigeon Valley Traihead East, Yusuf Koc Church였다. 하지만 영어가 짧디 짧은 내 동생은 Trailhead East가 트랙킹 입구를 의미한다는 걸 몰랐다. 그냥 두 포인트에 가서 사진만 찍고 숙소로 갈 큰 그림을 그렸던 동생은 'Pigeon Valley Traihead East'에 다다르자마자 '트랙킹 하자!'며 눈을 반짝이는 누나를 보며 질겁했을 것이다. 동생은 오전에 괴레메 야외 박물관을 다녀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번 생에 Pigeon valley 트랙킹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데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괴레메 마을과 닿아있는 Pigeon valley 트랙킹 초입부는 개울가 옆을 걸어야 하기에 길이 상당히 질었다. 길이 질고 싸락눈이 오는 것 같다며 남동생이 한 10번 정도 숙소로 돌아가자 했다. 나도 그 트랙킹 길에 우리 밖에 없었다면 두려운 마음에 동생 말에 동의하며 숙소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말고도 두 팀이나 더 있었고,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이국적인 풍광이 펼쳐졌다.
진짜 외계 행성에 떨어진 것 같았다. 바위가 파도치듯 물결치고 있었고, 각 층마다 색깔도 각기 달랐다. 예전에는 이 계곡에서 비둘기 똥을 비료로 쓰기 위해 계곡 바위에 구멍을 파 비둘기 집을 만들고 직접비둘기를 키웠다고 한다. 그 덕에 이제는 비어버린 수많은 비둘기 집들도 볼 수 있었고, 직접 바위를 파 만든 창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트랙킹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이긴 했다. 갈림길도 제법 있었고 눈 내린 돌길이라 많이 미끄러웠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귀엽고 든든한 길잡이 강아지가 있었다.
트랙킹을 시작한 지 15분 정도 지났을 때인가 갑자기 갈색의 귀여운 강아지가 우리와 함께 동행하기 시작했다. 장작을 패던 귀여운 튀르키예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무렵 갑자기 귀여운 갈색 강아지가 등장했다. 우리와 나란히 걷기도 하고 뒤쳐져 걷기도 하길래 처음에는 밥 달라고 쫓아오는 건가 싶었다. (튀르키예 여행 다녀오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정말 길거리 개가 많다.) 트랙킹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 중 하나가 '이게 길인가?'싶은 이상한 길들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통나무 하나가 엉성하게 놓여있는데 '이걸 건너 말어?'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길잡이 강아지가 먼저 건너더니 우리를 향해 컹컹 짖으며 건너오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Pigeon Valley 풍광이 워낙 독특하다 보니 사진 찍느라 중간중간 트랙킹 경로를 많이 이탈했었다. 사진 다 찍고 나서 '어... 트랙킹 길이 어디더라?'하고 얼타고 있을 때 즈음 강아지가 갑자기 등장해 컹컹 짖으며 따라오라는 듯 앞장섰다. 정말 신기하게도 강아지를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트랙킹 길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약간 강아지 표정이 '에휴 너네 때문에 힘들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Pigeon Valley 트랙킹 코스는 괴레메 마을에서 시작해 우치히사르 마을에서 끝난다. 우치히사르 마을에 거의 다다를 때 즈음 바위를 파서 만든 창고가 너무 신기해서 또 트랙킹 길을 살짝 이탈했었는데 또 강아지가 나타나 컹컹 짖어댔다. 그때는 '어유 길 좀 얌전히 가자!!! 이제 다 왔다고!' 하며 잔소리한 것 같기도 하다.
네이버 블로그 후기도 구글 한국인 리뷰도 전혀 없던 트랙킹 코스였지만 길잡이 강아지 덕에 '이 길이 맞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안전하게 트랙킹 할 수 있었다. 우치히사르에 도착한 후에는 길잡이 강아지와 작별하고 우린 버스를 타고 괴레메 마을로 돌아왔다. 트랙킹에 집중하느라 길잡이 강아지 사진 한 장 못 찍은 걸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괴레메 마을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길잡이 강아지는 이미 괴레메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있었다! 덕분에 고마운 강아지 사진을 몇 장 남길 수 있었다.
다음 날 그린 투어 때 만난 가이드에게 Pigeon Valley 트랙킹이 정말 좋았다고 말하니 일반적으론 우치히사르에서 시작해서 괴레메에 도착한 후 바로 커피 마시는 게 국룰이라고 했다. 한국인들은 주로 괴레메에 숙소를 많이 잡으니 확실히 우치히사르에서 시작해서 괴레메에서 끝내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았다. 다른 한국인 분들은 혹시나 Pigieon Valley 트랙킹을 하시게 된다면 버스를 타고 우치히사르로 가서 우치히사르 성을 구경한 후 Pigeon Valley를 트랙킹해 괴레메 마을로 돌아와 커피까지 딱 마시고 숙소 돌아오시면 좋을 듯하다.
사공중곡(射空中鵠),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격언이 떠오른 날이었다. 트랙킹인 줄도 모르고 가까우니 Pigeon Valley Trail East 가자고 한 동생 덕에 외계 행성 같은 멋진 풍광과 귀여운 강아지의 길 안내를 누릴 수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동생이랑 같이 여행하길 잘한 것 같다. 괴레메 마을 강아지, 남동생과의 Pigeon Valley 트랙킹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강아지와 남동생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