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대장 프리기아인들! 입구&계단 찾기의 즐거움
단정 짓긴 어렵지만 아야진(Ayazini)에 놀러 간 한국인은 우리 남매가 최초가 아닐까 싶다. 아야진은 튀르키예에서 세 번째로 긴 트랙킹 코스인 프리기안 웨이(Phryigian way)에 속한 마을이다. 혹시나 튀르키예 여행 중 아피온카라히사르를 방문한다면 그다지 멀지 않은 아야진까지 함께 방문하길 추천한다. 카파도키아와 비슷한 듯 다른 기암괴석들과 그 괴석들을 파고들어 만든 독특한 건축물들이 지척에 널려있다. 그중에서도 필자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던 가장 재밌었던 건물은 단연 'Metropolis Multi Storey Settlement'였다.
필자는 카파도키아 여행을 하면서 기암괴석을 파고 들어간 건물들이 멋있긴 하다만 내부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부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선 굉장히 커다란 바위가 필요할 것이고, 바위를 파내는 품도 많이 들다 보니 전반적으로 내부 구조가 단순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우치히사르 성'과 '오르타히사르 성' 내부 구조가 참 궁금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 내부까지는 들어가지 보지 못했었다.
아야진의 'Metropolis Multi Storey Settlement'은 이런 필자의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소해 준, 정말 다시 생각해도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밌는 구조의 건물이었다. 등심 스테이크 모양의 커다란 한 덩어리 바위 산을 파내 제작된 건물로, 무려 3층 짜리 건물이었다. 1층은 사람을 맞이하는 용도의 홀과 크고 작은 방이 딸려있었다. 그리고 1층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연결하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바위 산 외부를 둘러 만들어져 있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단은 희미해져 있었고, 난간은 당연히 없었다. 즉, 계단에서 미끄러져 바위산에서 추락하기 딱 좋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위험천만한 K-놀이터에서도 살아남은 나다. 2층은 어떠할지 너무 궁금했기에 네 발로 기어올라 기어코 2층에 다다랐다. 올라갔더니 바위를 파내 제작한 의자들로 둘러싸인 홀이 나타났다. 중간에는 어떤 용도였는지 모르겠는 구덩이들이 서너 개 파져 있었다. 흙먼지가 가득한 바위 의자였지만, 괜히 그 시대 사람에 빙의해 괜히 의자에 앉아봤다. 바위를 파내 만든 건물이라 채광이 안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딱 적절한 위치에 창문이 있어 빛이 넉넉히 들어왔다.
바위 의자에 앉아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다행히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바위 내부에 만들어져 추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작은 공간과 함께 뭔가 조르륵 흘러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한 구조의 홈이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3층은 화장실(그림 상에서 3층(1)에 해당)로 쓰였다고 하는데, 3층 높이에서 오물이 뚝하고 떨어지는 푸세식 화장실이라니! 중세 유럽에서 오물을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그냥 쏟아 버리던 것의 시초는 아나톨리아에서부터 시작됐나 보다. 실제로 사용한다면 오물이 어느 위치에 떨어질지 살짝 궁금했지만 프리기아 인들도 프라이버시가 있을 테니 그만 알아보기로 했다.
1층 홀, 2층으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과 2층 홀, 3층 푸세식 화장실이 아주 흥미롭긴 했지만 2층짜리 바위 건물은 카파도키아에서도 종종 봤었다. 그리고 3층 푸세식 화장실 공간이 예상보다 많이 협소해 이걸로 Multi Storey Settlement라 하기는 좀 약하다 생각하며 건물을 내려왔다. 그러고 다시 건물을 정면에서 살펴보는데 안 가본 3층 구역(그림 상 3층(2)에 해당)을 발견했다! 큰 창문도 2개나 있는 걸로 봐선 상당히 넓은 공간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분명 계단은 화장실로 가는 계단 한 곳뿐이었기에 다시 2층으로 기어 올라갔다.
열심히 두리번거린 결과 '이러니 못 찾았지' 싶은 절벽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70~80도는 돼 보이는 경사에 계단이 있었다. 사실상 계단이 아니라 계단 모양이 벽에 조각돼 있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계단 양 옆의 홈에 손을 꽉 끼우고 발을 계단에 디딘 채 몸을 끌어올려 3층으로 올라갔다. 커다란 창에 밝게 햇살이 들어오고, 깊은 구덩이들이 움푹 움푹 파인 넓고 깊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 공간을 발견했을 때 '아, 인디아나 존스가 이 맛에 탐험하는구나' 싶었다. 몸에 잔뜩 묻은 흙먼지, 내려갈 절벽 계단에 대한 걱정, 아야진에서 아피온으로는 어떻게 돌아가나 싶은 걱정이 싹 잊힐 정도의 카타르시스였다.
동생은 위험하다며 결국 3층 공간은 올라가지 않았고, 다른 튀르키예 관광객들도 이 절벽 계단은 발견하지 못해 3층 화장실만 방문하고 내려왔다. 보는 내가 다 아쉬워 영어로 저쪽에 굉장히 가파른 계단이 있고 올라가면 방이 더 있다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이 외국인이 뭐래?'라고 말하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조롱 섞인 웃음이 개의치 않을 만큼 그저 그분들이 그 공간을 보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까웠다.
튀르키예 여행 중 최고로 재밌는 건물이라며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며 혹시나 놓친 공간이 없는지 외관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바위산 옆면에 2층 3층 높이 정도에 방 세 개가 연달아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계단이 보이지 않아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절벽에 규칙적인 작은 구덩이가 파여 있는 걸 발견했다. 손과 발을 넣자 딱 맞게 들어갔다. 프리기아 인들은 매번 클라이밍을 해 저 절벽 방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너무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클라이밍을 꽤 오래 해야 할 것 같았고, 아무리 겁 없는 필자지만 이번만큼은 내려오다가 뒤통수가 깨질 수 있겠다 싶어 올라가진 못했다. 클라이밍 배워둘 걸 아피온을 떠나온 지금까지 두고두고 후회된다.
그 뒤 아야진 여행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저 건물의 2층, 3층은 어떻게 올라가는 거지?' 하면서 '혹시 여기에 계단이? 혹시 여기에 입구로 통하는 길이?' 하면서 계단과 입구를 찾고 그들의 창의력에 끊임없이 감탄했다. 아야진 애기들은 매일매일 이 유물들을 탐험하며 놀았을 것을 상상하니 정말 배가 아팠다. 절벽 오르다 넘어져서 무릎도 까지고 했겠지? 얼마나 즐거웠을까? 새로운 입구나 건물을 발견한 날에는 정말 너무 짜릿했을 것 같다. 그렇게 3시간 동안 열심히 아야진 유적들을 탐험했다.
그렇지만 프리기아 시대의 신을 모시는 사원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약소하게나마 경배를 드리고 사원 문 앞에서 사진만 찍었다. 신전 입구 위의 사자 부조는 정말 멋졌다. 또한 'Virgin Mary Church'의 경우 바위를 파고 만든 교회로 '셀리메 수도원'의 교회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직선으로 이뤄진 기둥과 천장 돔 구조가 놀라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그 무구한 유적들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유적 바로 앞 부지를 마을 공동묘지로 쓰고 있었는데 역시 유물 부자 튀르키예답다 싶었다. 심지어 튀르키예어 설명 옆에 영어 설명을 병기했어야 했는데, 구글 번역기 돌리는 걸 깜빡한 건지 튀르키예어/튀르키예어로 두 번 설명해 둔 표지판도 꽤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싶기도 했다. 정부 관리 아래 본격적으로 관광지화 되기 전, 주민들의 생활 속에 어우러져 있는 유적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내가 직접 이 유적들을 처음 발견한 탐험가에 빙의한 듯한 유적들을 구석구석 볼 수 있었다. 물론 출입하지 말라고 금줄을 쳐둔 곳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튀르키예인들만 가끔 관광 오는 이곳에 어쩌다 온 건 지 궁금해하는 아야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도 참 즐거웠다. 특히, '아야진 관광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인근 여고생들은 진지하게 우리 한국인 남매를 신기해하며 인터뷰를 신청했다. 그들에게 이곳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존재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짧은 인터뷰였지만 그들의 과제에 많은 도움이 되었길 빌어본다.
아피온으로 돌아가는 돌무쉬는 '3. 진정한 모험, 아야진(Ayazini)으로의 여정'에 첨부된 시간표에 맞게 16:10에 정확하게 Ayazini Merkez cami 앞에 왔다. 돌무쉬를 타고 돌아가면서 아야진에서 30분 트랙킹 하면 갈 수 있는 'Avadalaz castle'에 못 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완전 벌집처럼 생겨선 딱 봐도 내부 구조 탐험하면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동생에게 Avadalaz castle까지 보고 다음 돌무쉬인 19:10 거를 타고 돌아가자고 제안할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호캉스 여행 체질인 동생은 이미 누나를 배려해 점심도 거르고 아야진을 관광하고 있었다. (아야진 가는 길이 워낙 어려워 점심때를 놓쳤었다.) 그리고 동생은 아야진의 프리기아 유적에도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차마 그 건물 하나 보자고 30분 트랙킹 말을 꺼내기 너무 미안했다. 혼자였으면 갔겠지만 이건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니 다음을 기약했다.
그때는 차 끌고 와야지! 필자는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운전면허가 없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운전면허 학원으로 향할 예정이다. 다음 튀르키예 여행 때는 국제 운전 면허증과 함께 Avadalaz castle 뿐만 아니라 차박 하면서 멋진 프리기안 웨이를 싹 다 누빌 테다! 그날이 어서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