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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서윤 Feb 10. 2024

남들 다 가는 여행지의 가치

대자연과 고대 로마인의 합작! 끝없는 즐거움 파묵칼레

    남들 다 가는 여행지는 괜히 싫다. 나만 알면서 현지 감성은 풍부히 느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여행 정보는 넘쳐나는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그렇다. 필자는 몸은 편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나는 다르다'는 알량한 자존심은 채우고 싶은 전형적인 겉멋 든 쪼랩 여행자다. 그렇기에 솔직히 튀르키예 여행을 계획하면서 파묵칼레와 카파도키아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물론 블로그나 유튜브 여행 후기를 보며 '오~ 멋지다' 싶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차피 남들 다 가는 여행지잖아 뭐' 하며 은근 무시했었다.(인성에 조금 문제가 있는 편이긴 하다) 실제로 여행 중에 만났던 다른 한국인 여행객분들도 파묵칼레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역시 남들 다 가는 여행지가 좀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했던 파묵칼레적어도 우리 남매에게만큼은 정말 최고의 여행지였다. 내륙 여행에 지쳐있던 우리 남매는 인터넷에서 이미 본 하얀 계단식 논 풍경이 다겠거니 하며 사전 조사 없이 파묵칼레로 향했다. 어영부영 북문에 내려 파묵칼레 관광을 시작했는데, 여기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동생의 동태 눈깔에도 영혼이 없었다. 동생은 그저 무너진 돌덩이라며 폐허가 히에라폴리스에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디 말디 필자는 원형 극장으로 향했고 동생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오르막을 올랐다. 그리고 곧 거의 온전하게 보전된 크고 아름다운 원형 극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제야 동생의 미간 주름이 퍼졌다. 


    이때부터 파묵칼레는 자신이 세계적인 관광지인지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뽐내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크기와 완벽하게 보존된 원형 좌석, 섬세한 무대 장식에 혼이 쏙 빠졌다. 굴러다니는 로마 시대 돌만 봐도 신기했었는데 이토록 온전하게 보전된 건축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로마 시대에 이곳에서 어떤 공연이 펼쳐졌을지 궁금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 쉽진 않겠지만 몇 년에 한 번이라도 이곳이 본래의 목적에 맞게 공연장으로 쓰일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가 한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길!

장관이었던 히에라폴리스 원형 극장

    그러고 조금 내려가니 클레오파트라가 신혼여행을 와서 온천욕을 즐겼다는 'Antique pool'이 나타났다. 쾌청한 하늘과 야자수, 형형색색의 수영복을 입고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지상 낙원 같았다. 김이 폴폴 올라오는 따뜻한 온천에는 무너진 로마 양식 기둥과 부조들이 잠겨 있었다. 하지만 추가 입장료를 내야 하는 데다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온천에서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못 찍고 본인들이 운영하는 사진샵을 통해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술 그 자체인 온천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남매는 추가 결제를 하고 온천에 몸을 담갔다. 


    물은 생각보다 맑았고 기포가 자꾸만 피부를 간지럽히는 기분이 들었다. 따뜻하고 노곤한 것이 히에라폴리스를 돌아다니던 피로가 씻기는 것 같았다. 다만, 푸른 하늘을 보며 둥둥 떠다니다 보면 꼭 가라앉은 유물에 머리를 박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물이끼가 잔뜩 껴 미끈미끈한 로마시대 석재들을 만지며 온천을 즐기는 경험은 너무나 특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심이 2m 이상인 구역이 있어 머리털을 쭈뼛 서게 했다. 안전선 표시를 넘어가면 최대 수심 5m인 구간이 나오는데 구명조끼 없이 그 구간을 헤엄치려니 괜히 무서웠다. 실제로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 구역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식으로 수영을 배운 적이 없어 망설여지긴 했지만 자유형과 개헤엄 사이 애매한 수영으로 신나게 쓰릴을 즐겼다. 그리고 히에라폴리스 구간에서 뚱하기만 하던 동생도 이 온천에서만큼은 즐겁게 놀기에 마음이 놓였다. 온천까지 즐기고 나니 '이제 호텔로 돌아가도 되겠는데?' 싶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직 파묵칼레는 대표하는 계단식 석회암 온천 구간은 구경도 못했단 걸!


    파묵칼레, 정말 콘텐츠에 끝이 없다. 이러니 남들 다 가는 여행지가 됐구나 싶었다. 온천에 들어갔다 나와 축축해진 몸으로 보는 파묵칼레의 석회는 정말 장관이었다. 우리 남매는 부산 출신이라 하얗게 소복이 쌓이는 눈을 굉장히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파묵칼레에는 눈도 아니면서 그렇게 하얗고 신기한 게 가득 쌓여있었다. 하얗고 단단한 석회석 사이사이로 보글거리는 따뜻한 온천수가 흐르는 것 역시 너무나 신기했다. 뛰어난 풍광을 즐기며 족욕을 즐기고 있자니 이렇게 사람이 즐기기 완벽한 장소가 그저 자연에 의해 형성됐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오히려 눈을 사랑하는 지도자가 '사시사철 눈을 보며 노천욕을 즐기고 싶다!'라고 말해 천재 건축가가 창의력을 발휘해 지은 테마파크인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였다.

다시 봐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파묵칼레의 석회층

    히에라폴리스, 클레오파트라 온천과 석회암 온천까지 삼 박자가 완벽한 여행지였다. 남들 다 가는 여행지라 무시했었으나, 왜 남들 다 가는지 완벽하게 설득된 하루였다. 그리고 남들 다 가는 여행지라며 무시한 나의 겉멋을 반성해 본다. 파묵칼레는 남들 다 가는 여행지의 가치를 완벽히 보여줬다.


    요새 '파묵칼레 기대와 현실'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많이 돌아다니는 걸로 안다. 필자도 파묵칼레에 가기 전에 그 사진을 실제로 보기도 했고, 실망했다는 사람들의 마음도 십분 이해한다. 남들 다 가는 여행지가 그렇듯 호젓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는 데다 물 부족으로 파묵칼레 석회층에 기대만큼 물이 많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튀르키예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반드시 파묵칼레를 여행지에 넣을 것을 추천드린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자연경관과 온천, 유적에 감탄하는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700 TL(24년 2월 기준) 입장료는 결코 싸지 않고 클레오파트라 온천까지 즐기려면 추가 비용까지 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대자연과 고대 로마인이 합작한 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하루 종일 즐기시길 강력히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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