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는 날
간혹. 이 단어를 언급하는 것 조차 참 부끄럽게도 주기적으로 그런 날이 있다.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는 날. 도무지 감정의 기복이 생겨나지 않는 날. 그저 일직선의 감정을 유지하게 되는 그런 날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한껏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득한 상태에서 수평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나의 수평은 늘 잔뜩 지친 내 기분을 따라온다.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기분 위에 놓여진 수평계 덕에 이성은 한없이 냉정해진다. 내뱉는 말마다 가족에게 생채기를 잔뜩 전해 줄 만큼.
요즘들어 자주하는 말이 있다면, 단언컨대 이 문장이 아닐까 싶다.
나도 단조롭게 지내보고 싶다.
동생이 아빠네 집으로 간 후로부터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 본 적이 없다. 아빠 성격을 알았던 터라 동생과 아빠가 과연 잘 맞을까,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동생은 종종 아빠를 이해할 수 없는 여럿 이유를 들고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동생 전화만 와도 긴장된다. 통화 후의 대화 내용은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고, ‘동생이 아빠와 대화로 잘 풀었을까?’ 대한 조마조마함으로 순식간에 번진다.
동생의 그런 연락을 받고 나면 나의 하루는 참 보잘것없는 시간으로 전락한다.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변함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되고야만다. 분명 나도 오늘 세워 둔 계획이 참 많았는데, 엄마의 걱정거리를 따라 나의 하루도 걱정을 함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동생의 마음 편한 취침을 위해 내가 아빠에게 연락한다.
동생의 말보다는 제법 정제된 단어와 싹싹함으로 아빠에게 어찌됐든 ‘아빠도 힘드시겠지만, 동생을 배려해 주세요.’ 라고 나의 말로 전하면 신기하게도 아빠와 동생 간의 갈등 상황은 빠르게 완화된다. 나의 연락 하나로 상황이 정리되어 엄마와 동생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는데, 아빠와의 연락이 불편한 나의 꺼리낌이 뭐 그리 대수일까.
불편한 마음를 누르고 눌러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아두고 아빠에게 연락을 건넨 후 갈등이 마무리됨을 확인하고 나면, 엄마와 동생은 내게 고맙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의 내 기분은 마치 도로 위 이리저리 밟히는 종이쪼가리와 비슷하다. 스스로가 참 우습고 한심해진다.
나 덕에 동생도, 엄마도 편하게 잠잘 수 있게 되었는데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징그럽기만한 내 기분은 여전했다. 집에 오는 길, 잔뜩 정제된 말투로 엄마에게 생채기를 냈다. 어른의 싸움에 끼어버린 것에 대한 조용한 분노를 동반하며.
엄마, 사람 좀 잘 알아보고 만나지-.
엄마는 멋쩍게 웃으면서 한 단어만 반복했다.
예정아, 미안해.
참 보잘것없는 하루다.
나는 참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