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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Feb 18. 2019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

염화미소

델리서 보통 버스로 12시간을 밤새 달려 오는 곳이지만 비행기로 1시간 반 만에 날아 온 다람살라. 진동과 소음으로 무장한 경비행기에  내 몸이 바람의 움직임과 함께 흔들리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비행이다. 요란하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에 꼼짝없이 갇혀 창밖만 내려다 본다.  흙바람 날리는 건조한 산자락을 내려다 보며 문득 어린 왕자가 바라 보았을 사막이 떠올랐다. 외계 어느 한 지점, 사람이 살지 않는 곳, 빽빽한 도시 속 사람들 틈에 있다가 하늘 위에서 바라 본 아래는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불시착한 낯선 곳에서 만나는 것들과 관계가 형성 될 수 있을까. 

다시 택시를 타고 경사지고 위태로운 산길을 고불고불 따라 올라간다. 해가 비쳤다 먹구름에 비가 내리다를 반복하며 다다른 마을.

다람살라 위  해발 1800 미터에 위치한 인도의 작은 티벳 맥그로드 간즈.

60여 년 전 자신들의 터전을 뒤로 한 채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황무지의 이곳으로 오며 티벳인들은 아마도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관계를 믿었을 것이다. 

 구불구불 고갯 길과 산길을 따라 운무가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중턱과 언덕 비탈에 빼곡히 자리잡은 작은 집들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다. 기약없는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는 소박한 안식처. 낭떠러지를 곁에 두고 오르 내리는 길을 따라 배낭 여행자들의 발 길도 이어진다. 티벳인들에겐 정착을 위한 고행의 길이자 수행의 길, 종일 시끄럽던 델리와는 달리 조용하고  평화롭다.


산 중턱  티벳인 가족이 운영하는 그린 게스트 하우스. 전망 좋다는 평에 다른 숙소와 비교도 하지 않고 예약을 했다. 테라스 밖으로 나가니 산속에 안긴 마을 풍경이 그대로 들어온다. 전력공급이 약해 촛불을 켜는 일이 많았어도 매일 내다보는 조용한  바깥 세상이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테라스가 있는 로비에 앉아 있으면 각국의 여행자들과 눈 인사를 하게 된다. 요가와 명상을 배우러 온 이, 완전한 쉼을 원해 온 사람도, 여정에 없던 곳인데 우연히 들렀다가 몆 달을 눌러 앉아 있는 이도. 사는 모습이 다르듯 여행 모습도 각각이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3층 사원에는 온종일 불자들이 방문해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돌릴 때마다 경전의 불력이 생긴다는 마니차, 펄럭이는 타르초를 바라보며 경통을  돌린다. 생이 돌고 돌아가듯 멈추다가 또 누군가 그 뒤를 이어 돌리기를 계속한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며 시계 방향으로 도는 코라길 또한  순례와 명상의 장소이다.

맥간에 머무는 내내 들렀던  카페 롭파, 비영리 단체인 롭파 공방 카페 직원은 한국어와 영어를 스스로 공부하며  손수 물건을 만든다.  바느질도 하고 빵도 굽고 커피도 내린다. 물건은 흥정을 위한 가격이 아니라 공정한 재료로 만들어진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익금은 티벳 어린이들을 위한 탁아소 운영기금으로 쓰인다. 모든 상점에서 판매되는 공예품들은 개인의 이윤을 얻기 위한다기보다 티벳 독립과 난민 정착 그리고 환경운동에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투박하나 정성이 깃든 음식과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가 깃들어 있다.

 언덕 아래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티벳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마을 한 곳에 세운 학교와 불교사원 그리고 작은 박물관이 나온다.  망명사회의 생활상과 문화와 역사를 이해 할 수  있는 곳이자 더불어 티벳인의 소박함과 경건함이 베어있는 곳이다.

우기라 내내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달라이 라마의 사원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 붉은 옷을 입은 승려들의 따듯한 미소를 온몸으로 받을 수 있다.

운 좋으면 달라이 라마를 알현 할 수 있는 남갈 사원. 일요일 아침, 사원에 사람들이 모여 든다. 경전과 물 컵을 들고 조용히 앉아 작은 마니차를 돌리거나, 손가락으로 경전을 짚어가며 읽고, 봉사자가 따라주는 따끈한 밀크티를 마시며 옆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기를 나누고 기도한다. 정해진 예불 시간이 있나 싶었는데 하루 종일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하고 경전을 읽는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반가움에 담소를 나누고 정해진 규율이 없어 무척 자유롭다. 종일 절을 하거나 명상을 하고 경전을 읽는다.  큰 스님의 말씀이나 위엄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놀랍기도 했지만 예식과 틀에 얽매여진 습관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붙잡아 두려는 말은 금새 흩어지나 미소와 침묵은 남는다고, 깨달은 이의 말은 오히려 더 단순하고 소박하다. 문득 달라이 라마가 호탕하게 웃으며 복잡한 종교와 철학은 필요치 않다는, 때로는 침묵이 최고의 해답이라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열 마디의 말보다는 어린 아이같은 맑은 미소, 어린 아이같은 마음을 지닌 티벳인들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염화미소' .

승려와 이방인, 현지인들이 경계를 허물고 살아가는 곳, 특별히 무얼 해야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매일 숙소 언덕 길을 오르고 내리며 걸었다. 무더운 더위를 피하려 머물렀던 영국인들의 옛 휴양지였던 곳, 설산의 물이 흐르는 박수나트  다람코트 길, 걸으면 걸을 수록 히말라야 풍경에 더 가까워졌다. 천천히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것들에 눈길을 주며 시간에 여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런 온전한 시간을 마주한 날들이었다. 걱정과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하던 날들을 안타까워 하면서.


20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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