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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Sep 06. 2021

내기할때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연인끼리 다투는 이유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자들 세계에서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는 대개 돈 문제 아니면 여자 문제다. (물론, 다른 이유도 많이 있을 수 있겠다. 태클 금지!) 그중에서도 세상 가깝다가 정말 찰나의 순간에 어긋나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어떤 경우냐면 바로 ‘내기’할 때이다.


 ‘내기’란 모름지기 이겨야 제맛인데 상대도 같은 생각이니 지는 쪽은 필연적인 내상을 입게 된다. 나는 극도로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성향의 INFP 형 인간이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 건 좋지만 초면에 감당해내야 하는 그 서먹하고 어색한 시간은 끔찍하다. 평소에 말도 별로 없고 중간중간 추임새 정도를 넣거나 내킬 때 받아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내기만 하면 자아가 바뀐다. 저돌적이고 적극적이며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진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평소 자아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평소의 나는 치열한 삶이 두렵고 “누가 뭐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아무거나” 아니면 “니가 먹고 싶은 거 먹자.” 두 가지 대답으로 로테이션 돌리는 우유부단하고도 의존적 성향인데 왜 내기에만 돌입하면 ‘승부사’로 변신하는 건지…. 이런 나의 변신에 사람들은 곧잘 놀라고는 한다.


 몇 년 전 교회 수련회 때도 그랬다. 교회를 옮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나는 과묵한 성격 탓에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 컨셉으로 보였었나보다. 그런데 수련회를 가서 각종 퀴즈와 게임 앞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맹수의 눈빛으로 돌변한 나를 목격한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한동안 이슈가 되었었다고 한다. 2010년 월드컵 때는 지인들 한 열명이서 PUP에 모여 대형스크린으로 한국 vs 멕시코전을 관람하면서 누가 첫 골을 넣을 것인지를 맞추는 내기를 했었다. 나는 당연히 우리나라를 응원하지만 전력상 열세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고 또 물어뜯기가 시그니처 필살기이기는 하지만 골 결정력 또한 훌륭했던 우루과이의 공격수 ‘수아레스’한테 일격을 당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루과이 공격수한테 배팅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때부터 뭔가 서늘한 기운이 감지되었는데 정말로 전반 8분만 에 수아레스가 첫 골을 넣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기에서 이겼다는 기쁨 때문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려는 순간 모두의 따가운 눈빛에 반건조 오징어처럼 사지가 반쯤 찢겨 나갈 뻔했다. 그때 처음 뵀던 한 작가 선생님은 “ 저 시키 저거 매국노 아니냐!”며 단단히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다. (지금은 친해져서 나의 멘토 역할을 담당하시는 중이다. ) 한일전이 아니길 천만다행이었다. 아, 축구 얘기하니까 또 생각났는데 형들이랑 영국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박지성 선수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고 있었을 때라 다들 축구 팬이어서 맨유 vs 아스널 경기를 직관 가기도 했었다. 영국은 pub에 모여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문화가 우리나라보다도 발달해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곳곳에 스포츠 경기 배팅하는 편의점 같은 곳이 있어서 배팅을 하고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스포츠토토가 있기는 하지만 뭔지 모르게 도박 같은 느낌이 있는 반면 영국은 게임 같은 느낌이 있었다. 배팅 카테고리도 되게 다양했는데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실 누가 이겨도 그만인 경기를 보는 것하고 특정 팀, 특정 선수에 대한 배팅을 한 후에 경기를 보는 것은 그 몰입도의 강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냥 보는 것이 시청이라면 배팅하고 보는 것은 노동이다. 명승부이건 아니건 간에 모든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이다.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나름의 분석력으로 꽤 쏠쏠한 성과를 내면서 “ 아, 영국 참, 살만한 나라인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내기의 순간들이 있었다. A4 용지 두 장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내기를 했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아마도 대학 입학 후였던 것 같다. 작디작은 학교 안에는 ‘장독대’라 불리는 공간이 있었는데 주로 족구장으로 활용되고는 했다. 신입생 초기에 우리의 역할은 주로 공이 담을 넘어가면 담장을 뛰어넘어 공을 주워 오는 것이 주 임무였지만 재능은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되어 있는 법인지 언젠가부터 족구 멤버의 일원이 되어 있었고 양발을 다 쓰는 나는 팀에 승리를 안겨다 주는 남자 김연경 같은 존재였다. 군대에 가서는 타 부대와의 축구 시합에서 승리를 안기는 귀중한 골로 단체 포상 휴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 괴상한 단장이 나중에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지는 걸 싫어하는 불타는 승부 근성 때문에 팀전에서는 일견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문제는 개인전이었다. 한창 ‘위닝일레븐’이라는 축구게임에 빠져 있을 주로 내기를 걸고 하는 멤버들이 있었다. 그런데 똑같이 ‘열혈승부족’끼리 맞붙으면 꼭 빈정이 상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긴다. 진 사람이 제일 즐겨 쓰는 말. “ 한판 더해!!” 마지막 게임이라고 못 박았지만 안 받아주면 ‘먹튀’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 사람은 또 거기에 한 마디를 꼭 덧붙인다. “묻고 더블로 가!!” 이렇게 해서 그 사람 다음 경기에서 승부가 뒤집히면 똑같이 1승 1패인데 관용을 베푼 사람이 오히려 독박을 쓰게 된다. 그럼 또다시 “묻고 더블로 가” 이런 식이면 밤을 새워도 제로썸 게임이 되고 만다. 이쯤 되면 서로 말도 없다. 그렇게 친했던 사이가 순식간에 모르는 사이보다 더 불편한 사이가 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초딩같았지만 그땐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골프를 한번 같이 쳐보라”라는 말이 있다. 반나절이 넘는 시간을 함께하고 같이 사우나를 하며 서로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을 마주하는 것도 그 이유인데 가장 큰 것은 내기를 하면 보통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내기 앞에서 자기에게만 한없이 관대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양심을 속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이건 간에 내기에 지고 기분 좋아하는 사람은 못 봤다. 돈이 많은 부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아무리 작은 내기를 해도 패배 앞에 의연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때로는 져주는 지혜도 필요한 것 같기는 하다. 돌이켜보면 내기의 통산전적이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늘 최고의 순간은 내기할 때 찾아왔다. 20여 미터 롱펏을 넣어 버디를 기록하기도 하고 트러블 상황에서 기가 막힌 샷으로 파세이브를 해내기도 하고. 인생도 ‘내기’를 걸었더라면 좀 더 나를 끌어 올릴 수 있었을까? 왜 내기할 때만 그리 열정적이고 삶에는 무기력했었는지….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온 것만 같아 요즘 참 어렵다. '삶을 살아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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