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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Sep 17. 2021

나는 오늘 나를 죽이러 갑니다.

책 제목만 보고 전율이 일었던 적이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완벽한 통찰력이었다.


딱 내 마음이 그랬다. 사는 게 재미없었다.

어느 시점부터 무엇이 잘못된 건지 헤집어 들여다볼 용기도, 기운도 없었다.


이미 내 인생은 전복된 사고 차량처럼 거꾸로 뒤집힌 채 헛바퀴만 돌고 있었다. 고통 없이 죽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 바람을 들은 당시 여친은 스위스에서 2,000만 원만 주면 안락사시켜준다며 알아보라고 친절하게 얘기해 주었다. 저승길에 데려가고 싶었다.


인터넷에 알아보니 다 그렇게 해주는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자격요건 같은 것들이 있었다. 까다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는 비용으로 목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저렴한 몸값에 대한 정신 나간 사치였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사실 죽고 싶지만 막 그렇게 꼭 죽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죽고 싶은 사람 중에선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은 사람치고는 잠의 질도 투뿔한우급이고 식성도 여느 운동선수 못지 많았다. 보통은 고민이 많고 삶의 의욕이 없으면 잠도 잘 못 자고 식욕도 없다던데….


나는 특이케이스인 것 같다. 되려 먹고 싶은 게 많다. 떡볶이로 한정 지은 작가의 절제력이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 외에도 튀김, 만두, 순대가 먹고 싶고 배가 꺼지는 대로 속히 스시에 물회, 치킨에 치즈볼, 탕슉에 짜장, 그 외 생각나는 모든 것들이 먹고 싶다.


죽고 싶은 사람 중에 어쩌면 내가 가장 경박스러울 수도 있겠다. 지금 당장 죽기에는 세상에 맛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자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지만 한 편으로는 나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뭔가를 실행하는 사람들인 거니까.


내 자존감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또 한 단계 깊은 땅굴을 파고 내려간다. 나는 겁이 많아서 주삿바늘 하나에도 바르르 떤다.


요즘 지나다 보면 온몸에 타투를 한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특정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주로 하셨던 KS마크 같은 거였는데 이제는 문학도들도 휘황찬란한 문양을 자신의 몸에 새기고 다닌다. 많이 아프다던데….


당장 죽지는 못하더라도 따끔하게 나를 혼내주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 죽고 싶지만, 너무 아픈 건 싫다. 죽고 싶은 사람 중에 어쩌면 내가 가장 나약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내가 나의 아픔을 위해 결단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곳을 예약하는 일 정도다. 나는 몸에 흉터를 남기며 고통을 주는 일보다 나의 일부를 뿌리 뽑음으로써 나를 혼내주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 보관 통이 다 차서 나를 죽여버리고 싶을 때쯤 왁싱샵을 예약한다. 이 방법은 아직까지는 꽤 효과적이다.


7~8년 전쯤 유세윤, 허지웅 님 같은 유명인들이 왁밍아웃을 하기도 전에 여자 사람 친구가 아기 피부로 회귀하는 느낌이라며 추천해 준 이후 극도의 우울감이 밀려올 때마다 한 번씩 거행하는 사치스런 의식이다.


털은 머리카락 하나면 족하다는 평소 확고한 신념이 있기도 했고 적절한 고통 속에 가만히 누워 아무 반격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잠깐이지만 죽어있는 느낌이랑 비슷한 것도 같다. 죽는 마당에 비명을 지를 수는 없어 조용히 옆에 있는 곰 인형을 끌어안는다.


거무튀튀한 악령의 무더기가 내게서 뽑혀 나가면 나는 새 생명을 얻은 아이처럼 다소곳해진다.


어른에서 어른아이가 된 느낌이랄까? 며칠 간은 희망 회로가 작동되기도 한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그 어딘가에선 나를 필요로 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내가 작은 위로라도 되어줄 수 있다면 나는 살아 마땅하다고.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어둠의 터널 마지막 칸일 수도 있을 거라고. 당장 몇 걸음만 앞으로 가면 햇살 짱짱한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고. 비타500 뚜껑에 한 병 더 이벤트조차 당첨된 적 없는 꽝인 인생이 어쩌면 로또 1등에 당첨되기 위한 큰 그림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렇게 무한회로를 돌리다 보면 무한리필 소고기가 먹고 싶어진다. 그래, 2만 원 남짓한 돈으로 마음껏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이면 그래도 아직은 살만하지 않은가?


누군가 그랬다. 1,000원짜리 볼펜도 사 놓고 안 쓰면 사치고, XX게 비싼 다이슨 에어랩도 만족하면서 사용하면 가치라고.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고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며 현타가 올때가 있다. 주로 글이 안 써지거나 댓글이 별로 없을 때 그렇다.


그래서, 인제 그만 끊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면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도 같이 사라진다. 일주일에 하루... 카페에서 향좋은 드립커피와 함께하는 글쓰기 시간, 격주 토요일마다 만나 글을 쓰고 동료의 글을 듣는 모임에서의 시간. 그 시간이 내게는 치유의 순간이고 휴식의 시간이기에...


그래서 한 번 더 사치하기로 한다. 어쩌면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가치일 수도 있으니까…. 이 글을 써나가면서도 같은 INFP인데 왜 나는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쓰지 못하는가?. 분노하게 된다. 이럴 줄 알고 오늘 샵을 예약해두었다. 이제 15분 뒤, 나는 나를 또 한 번 죽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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