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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Jun 16. 2022

흔치 않은 일

캣맘 관찰일기_220616

땅콩이와 여러 마당 고양이를 돌봐주셨던 어머님께서 오랜만에 진에게 연락을 주셨다.


"꺼멍이가...여기서 새끼를 낳게 해달라고 찾아왔어요."


꺼멍이는 우리가 그 댁 마당 고양이들을 한창 중성화 수술할 때도 들었던 이름이었다. 정해 놓은 때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아이가 또 있다고 하셨는데 그맘때 우리가 자주 찾아갈 때는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시기상으로 보면 아마 그 당시 이미 임신 중이었을 것 같다. 


우리가 삼색마을 고양이들 TNR을 한 차례 마친 뒤에, 꺼멍이가 출산에 임박해 땅콩이네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그리고 어머님은 그 마음을 받아 꺼멍이의 출산을 도우셨고, 6주 정도가 흐른 뒤 진에게 연락을 주신 것이다. 꺼멍이를 중성화 해주고 새끼 고양이들은 입양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꺼멍이는 정이 들어 책임지고 키우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러 갔을 때 다섯 마리 꼬물이들은 장에서 나오겠다고 앞다퉈 바둥거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꺼멍이는 사람을 은근히 경계하면서도 새끼들 옆에서 의젓하게 앉아있었다. 아기 고양이들은 현재 병원에서 기본검사를 마치고 잠복기 확인을 위해 입원 중이다. 아마 일단은 진이 임보 하게 될 것 같고, 다른 임보처나 입양처를 구해볼 것이다. 꺼멍이는 수술을 잘 마치고 오늘 그 댁 마당에서 방사했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솔직히 어머님이 좀 대책 없이 일을 벌이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맡을 여건이 안 되는 상태라면 진에게 먼저 연락을 주시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마는 나 스스로에게 다시 놀랐다. 갓 태어날 생명을 바로 눈앞에 두고, '길에서 태어나는 건 불행이야, 이 새끼들은 태어나지 말아야 해, 맡아줄 곳도 없어' 하면서 그걸 막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건 전혀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점점 재개발이 가까워 오는 삼색마을. 어머님도 곧 이사를 앞두고 계시다. 돌보던 마당냥이들을 모두 데려가실 거라고 한다. 남의 땅이긴 하지만 울타리로 영역을 보호한 채로 키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셨다고 한다. 일종의 이주방사일 텐데, 영역을 한정하고 적응을 도울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재개발은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그곳마다 고양이는 터전을 빼앗긴다. 마당 고양이였든, 이웃 고양이였든, 그저 동네 고양이였든 책임지고 데려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정말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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