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처음 가장 헷갈렸던 것 중에 하나가 약 이름이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약물과 미국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에 본질적인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내가 일했던 한국 병원에서는 약의 성분명으로 소통했기 때문에, 일반 브랜드명에 익숙하지 않았다. 가령 흔한 심장약 중 하나인 carvedilol(성분명)은 coreg 이라는 상품명이 따로 있다. 혈액응고를 막아주는 enoxaparin(성분명)은 lovenox 라는 상품명이 있다. 미국에서 특히나 더 헷갈렸던 부분은 전산상에서도 모두 대부분 성분명으로 명시하지만 사람들끼리 부를 때는 그냥 상품명으로 부른다. 그리고 미국의 일반 마트에서는 한국의 경우 약국에 가야만 구할 수 있는 전문 약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환자들도 상품명에 굉장히 익숙한 편이다.
한번은 내가 맡았던 환자가 'tums' 를 달라고 요청했는데, 아무리 PRN(환자가 필요할 때 간호사가 의사의 사전 처방에 따라 자율적으로 줄 수 있는 약물) 리스트를 찾아봐도 'tums' 를 찾을 수 없었다. 환자에게 해당 약이 처방에 있지않아, 의사 오더를 받아서 주겠다고 하니 환자가 어젯 밤에도 먹었다며 따졌다. 그때 난 'tums' 가 'calcium carbonate antacid' 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흔히 병원에서 쓰는 약물들의 상품명과 성분명을 정리했다.
상품명으로 소통하고 전산상에는 성분명으로 나와있어 헷갈린다고 동료에게 하소연하니,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간호교육을 받은 그들도 헷갈린다며 맞장구쳤다. 사실 어떤 약 들은 그냥 성분명을 그대로 부르기도 해서 이렇다할 기준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다.
업무상 쓰는 표현이나 영어, 약명 등은 이제 제법 익숙해서 일하는데 별 문제는 없다. 여전히 어려운 부분은 일상 생활 표현이다. 미묘한 어감상의 차이 들은 계속 영어를 사용하며 하나씩 배워 나가는 중이다. 가령 미국에서 마른 사람을 지칭할 때 'skinny' 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우리는 스키니 하면 단순히 마른 이미지를 생각하고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칭찬처럼 느끼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이다. 마치 해골 처럼 앙상한 그런 느낌이 강하다. 다른 사람에게 누군가를 묘사할 때, 미국인들은 돌려서 표현을 많이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사람 날씬하다' 라고 할 때, 여기서는 'she is small' 이라고 가장 많이 얘기한다. 반대로 비만일 경우 'she is a big lady' 라고 표현할 수 있다. 비만의 수준이 심각할 때 이렇게 이야기 하고, 한국 기준의 비만인 경우 'curvy' 라고 말할 수 있다.
예전에 유투브에서 미국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할 때 "what?" 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고, 대신 'I'm sorry?' 혹은 'pardon?' 이라고 한다는 영어 교육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일하면서 혹은 일상생활에서 'pardon?'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보통 연세가 많은 분들이 점잖게 얘기하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같은 상황에서 가장 많이 듣는 표현은 "what's that?" 이다. 내 경험상 80% 이상은 이 표현을 쓴다. 바쁘고 정신없는 병원 상황에서는 그냥 "what?" 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영어는 미국영어, 영국영어, 호주영어, 아일랜드 영어 등 나라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고 미국 내에서도 중부, 서부, 동부, 남부에 따라 사투리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 어떤 표현이나 단어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외국어로 영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헷갈릴 수 밖에 없고, 항상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는 것 만 같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에게도 때로는 서로다른 표현이 어렵다. 때로는 이를 재미삼아 서로를 놀리기도 한다.
아래의 영상은 영국 커플이 미국과 영국의 문화 혹은 언어 차이에 대해 비교해서 다루고 있다.
내가 있는 미국 중부(특히 미네소타)에서는 "you bet!" 혹은 "you betcha" 라는 대답을 "you're welcom" 대신 많이 쓴다. 아래 영상은 미국 중부에서 왔다고 했을 때 다른 지역 사람들의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다루고 있다. 이 유투브 채널의 이름 자체가 You Betcha 이고, 일반적인 미국 중부의 삶을 재밌게 보여준다.
미국인들과 매일 대화를 하며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의외로 정말 쉬운 단어들만 조합해서 표현을 만든다. 잘 못알아 들었을 때 대부분의 경우가 단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 표현이 생소해서인 경우가 많다. 한번은 친구가 차 배터리가 나가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도움이 필요할 때, "jump start a car" 라는 표현을 쓴다. Jump 라는 단어는 한국 초등학생들도 다 알만한 단어이지만 처음 들었을 때,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일상적으로 영어를 사용하고, 영어로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난 여전히 영어가 어렵지만 더이상 두렵진 않다. 대화하다가도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 있으면 바로 물어보는 편이다. 괜히 어설프게 이해했는데, 아는 것 처럼 넘어가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미국인들에게도 어떤 단어는 철자가 헷갈리기도 하고, 어떤 발음은 어렵기도 하다. 간혹 일하며 간호 기록이나 동료들이 사용하는 표현들을 보면 그들도 문법 실수를 하고 철자를 틀리기도 한다. '영어를 완벽하게 정복하겠다' 가 아니라 '영어로 자유로운 소통을 하겠다' 가 외국인으로서 우리가 영어를 대하는 최종적인 목표가 아닐까? 영어는 다양한 억양, 표현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인에게도 때로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