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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4. 2022

남편은 축덕, 힙스터

이스탄불에서 마흔둘

내 남편은 축덕이다.

전 세계 축구 구장에 축구를 보러 다닌다. 이 축구 덕후의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기 이전부터 남편은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결속을 다졌다. 이때 만난 사람은 아직도 남편과 막역지간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다시 만나자며, 얼마 전 함께 비행기표를 예매한 사이다.

이 사람들과 함께 사 모은 남편의 유니폼 레플리카는 이스탄불까지 실려와서, 우리 집 장롱 위를 점령했다.

전 세계의 유명 선수의 번호와 엠블럼을 구해 마킹하는 재미를 공유하며 사모은 200여 개의 레플리카. 내 눈에는 비슷한 선수복을 계속 사들이는 남편을 보고 '자본주의의 노예'라며 쇼핑 중독자 취급을 했었지만, 이것들은 남편에게 자신의 자랑스런 컬렉션이다. 남편의 노고가 담긴 이 옷들은 이스탄불로 이사를 올 때도 우리 짐 컨테이너에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지금은 따로 둘 곳이 없어, 박스에 고이 접어 안방 장롱 위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지만,  남편은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 방이 많아지면 방 하나를 레플리카를 전시하는 옷방을 만들거라는 포부를 나에게 밝히기도 했다.



남편은 축덕이면서 또 힙스터다.

5년 전, 이스탄불에 오기도 전 일이다. 남편의 지인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가게 된 적이 있다. 장소는 부산이었데, 선박 물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특권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부산 신항만을 견학시켜주고 싶다고 아빠들이 뭉쳐서, 1박 2일 일정으로 모인 자리였다.

 그때, 남편의 선배 와이프가 나와 남편을 보자마자 남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만,

 나에게 자기 남편 사회생활 잘할 것 같단다. 전체적인 패션의 완성도가 높다며 나에게 남편의 옷차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뭐 별 감응 없이, "남편이 좀 옷을 철없이 입죠? 저런 걸 워낙 좋아해요." 했었다.

당시 그 선배 와이프의 직업은 스와로브스키 한국 법인 마케팅 팀장이었고, 파리 오뜨 꾸뛰르 연례행사로 다니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직장 선배가 남편을 볼 일이 있었다. 먼발치에서 남편을 본 선배는, 남편이 입은 점퍼를 보면서 완전 자기 스타일이라며, 자기도 저런 점퍼 하나 사고 싶었단다. 남편의 패션을 위아래로 아련히 감상하더니만, 아무리 봐도 자기 스타일이라나 뭐라나!

나는 또 뭘 모르고 왈,

"저런 거 우리 집에 엄청 많은데, 옷을 진짜 나이에 안 맞게 철없이 입어. 회사 갈 때는 자유복 아니고 양복이라 다행이지. 자유 복장이면 아마 회사에도 저렇게 입고 다닐 인간이야."

대충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내 직장 선배는, 남편은 프로 골퍼였고 목동에 거주하며, 친정까지 부유해서 공무원은 취미로 한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이었다.


나의 지인들이 남편을 보고 하나같이 하는 평에 대해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응수할 뿐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남편의 패션, 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은 아무 감응을 주지 않는 것들이었고, 나의 패션 센스는 공무원으로서 입기에 손색없는 무색무취의 옷으로 무난한 스타일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수준이었다. 자신의 나이와 맞지 않는 남편의 깨 발랄한 패션에, 혀를 끌끌 차며 꼰대처럼 못마땅해하던 이유도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묻히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패션을 선호하는 탓이었을 것이다.


이스탄불에 살면서 나는 쓸데없이 시간이 많아졌고, 나처럼 쓸데없이 시간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할 일도 늘었다. 그러니 그동안 쓸데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졌다. 보통 내가 쓸데없다 생각하는 것들무엇인고 하니, 과도한 쇼핑이나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콘탠츠 소비 아니면 인스타그램 같은 sns을 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있을 때 나는 쇼핑은 필요한 것만 검소하게,  미디어 소비보다는 독서와 글쓰기를 했다. 나에게 집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sns에 쏟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렇다 보니, 나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요즘 유행하는 콘츠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으며,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흥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남편은 나와 달랐다. 내가 쓸데없다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좋아했으며, 하물며 잘 즐겼다. 한국에서 늘 나는 정말 나와 너무도 다른 인간과 살고 있다 여겼다. 가끔은 문학이나 철학 같은 지적 대화가 안 되는 우리 사이에 염증을 느끼며, 우리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다. 허나, 나는 남편을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맞다. 서로의 취향과 선호가 이렇게 다름에도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결혼에 골인한 것을 보면 내가 남편을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스탄불에서 어느 날, 나는 남편에 대해 자각을 하는 기회를 맞았다.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이스탄불에서도 한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였다. 우리 동네는 특히 강남에 사는 언니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압구정에서 온 사람들이 몇 있었다. 강남에 사는 것도 못 자라 그중에서도 압구정이라니. 동네 사람들은 은근히 그쪽에서 온 사람들을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나 답게, 남들이 다 좋다는 강남에 크게 감응이 없는 사람답게,

늘 그랬던 것처럼 나와 말이 통하는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마음이 좀 열려있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인지?

이런 것을 살폈다. 근데  그중 한 언니는 이스탄불에서 만난 어느 누구보다 나와 말이 잘 통했다. 한국에서 방송국 문화부 PD로 일했다던 그 언니는, 비교적 삶의 패턴이나 노선이 나와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그 언니가 나와 좀 다른 점은 유달리 물건을 고르는 취향이 까탈스럽다는 것이다.

"명품도 싫다." "이스탄불에는 마음에 드는 브랜드가 하나도 없다." "살게 없다."

자신은 서유럽이나 북유럽을 가야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는 둥,  그녀가 물건을 고르는 세계관은 유난스러웠다.

'코로나 보복 소비로 다들 명품을 사느라 줄 서던 때, 명품도 싫다면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지?' '이스탄불에도 꽤 살만한 것들이 있는데, 왜 구매대행으로 다른 나라에서 쇼핑을 해야만 한다는 거지.' 나는 도통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이렇게 물건 취향이 분명한 압구정 살던 언니가 내가 걸친 물건에 관심을 보인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코로나로 셧 다운 기간이 길어지면서, 새 옷을 사도 입고 갈 데가  없는지라 구매 욕구가 제로였던 그 시절,

그래도 계절은 변하고 옷을 입고 다녀야 했기에, 나는 그동안 남편이 우리 집에 쌓아 둔 슈프림 로고 티셔츠를 하나씩 꺼내 입기 시작했다. 요즘 제법 키가 큰 아들도 사이즈가 맞길래, 엄마랑 커플룩처럼 입자며, 남편이 나에게 넘겨준 슈프림 박스 로고 후디와 모자, 액세서리까지, 아들이랑 깔맞춤 착장으로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 눈에 띄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강남 언니들이 많은 이 동네에서 우리 모자는 힙스터라 소문이 났다. 동네 사람들은 슈프림을 어떻게 샀냐며, 물어왔다. 나는 우리 집 양반이 이 브랜드를 좋아해서, 집에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입는다고 했더니만. 압구정에 산다는 취향 카탈스런 언니는, 우리 집 양반은 힙스터라며, 식구들도 다 힙스터를 만들어 버렸다는 둥, 부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실 나는 슈프림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늘 여우같이 자기 좋아하는 것을 잘 챙기는 남편은 곰처럼 우직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나 몰래 무엇이든 다 집에 사 모을 수 있는 사람이다. 옷방이 Supreme이라는 글자가 박힌 옷들이 수십 개가 싸여가도 나는 남편이 무엇을 사들이고 있는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나는 거의 옷방 정리를 안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의 관심은 오로지 일하고, 책 보고, 아들 보고 그것뿐이었다. 그냥 철없고 방정맞아 보이는 요란한 옷이라고 치부해 버린 남편의 옷가지에, 모든 관심은 OFF.


이스탄불에 와서 동네 아줌마 사이에서 난데없는 힙스터로 추앙받고 나서야 나는 남편이 모아둔 슈프림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사용할 카드 지갑이 하나 필요하다는 나에게, 이번에는 남편이 빨간색의 에삐 가죽으로 된 작은 지갑 하나를 주었다. 거기에는 하얀 글자로 Supreme이라고 적혀 있었다. 근데 가죽의 질이나 모양새가 꼭 루이뷔통 같았다.

내가 물었다. "이거 루이뷔통 지갑 아니야?"

신랑 왈, "응. 그거 루이뷔통 슈프림 콜라보야."

내가 다시 물었다. "슈프림, 도대체 이건 뭐야?"

신랑 왈,......(아무 말이 없는 그.)

불현듯 나는 슈프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로 궁금해져서는, 네이버님께 급히 여쭈어 봤다. 검색 결과로 뜬 검색창에 루이뷔통 슈프림 카드 지갑의 가격은 내 눈을 똥그랗게 만들었다.

일 개 카드 지갑의 가격이, 어떤 것은 150만 원, 어떤 것은 200만 원. 나는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남편에게 물었다. "이게 뭔데 이렇게 비싸? 그냥 루이뷔통보다 훨씬 비싸네. 이거 에르메스도 샤넬도 아닌데,

루이뷔통이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신랑이 하는 말, "그건 그냥 루이비통이 아니라 슈프림이니까?"

세상 일 어느 정도 알건 안다 하는 불혹의 나이의 나에게, 슈프림이라는 물건은 요상한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샀어? 이렇게 비싼 걸?

남편 왈, "나는 다 정가 주고 산거야. 미국에서 배송받은 거지, 리셀로 산 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Supreme을 어떻게 이렇게 많이 사셨냐고요?

용돈 모아 샀단다. 지인들과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슈프림 화보를 미리 탐독하고 뜰 것 같은 디자인을 먼저 찜한 다음, 발매일에는 눈이 벌게지도록 새벽까지 슈프림 사이트에서 클릭을 했으며,  떡상이 예상되는 디자인부터 공략해서 먼저 몇 개씩 사 모았단다. 운 좋게 그중에 연예인 누군가가 입고 나와서 가격이 떡상하면, 그걸 팔아서 종잣돈을 삼아 다시 개수를 늘렸단다.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 때문에, 그때는 모든 정보와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지인들과 함께 옷 보다는  인기가 덜한 액세서리를 공략했고 그렇게 희귀한 아이템들을 늘리고, 그  어치 있는 것은  좀 팔아서 종잣돈을 불리고, 이런 반복을 몇 차례, 우리 집에 100개 가까운  슈프림이 있게 된 과정이다. 


잉여자본의 무한 증식, 그냥 자본주의구나! 자본주의를 꾸준히 실천하는 자여,

그대 이름은 힙스터.

그동안 내 주변에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지인들이 나에게 누누이 말해준 것처럼,

내 남편은 Supreme 말고도 이런 요상한 물건이 많은, 힙합 뮤직을 사랑하는, 요즘 말로 힙스터다.  


나도 이제 남편을 철없이 방정맞은 남자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힙스터라고 인정한다.

내 남편은 축덕이고, 힙스터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야무지게 즐기고 사는 여우다.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안에서 산다.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생태계 속 하나의 개체이니, 당연히 우리는 자본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하나의 피조물분명하다. 자본을 본질로 한 세계 속에 살기에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을 보고 힙스터라고 하나보다.


나처럼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건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전혀 힙한 일이 아니지만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 곰처럼 우직하게 하고 있다. 

힙스터든 아니든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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