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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9. 2022

해가 진 오아시스,  천 개의 별과 달

여행의 이유

길이 없는 사막을 달려보고 알았다.
내 길을 만들며 내달려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이집트 후르가다에 도착한 첫날, 호텔에 짐만 두고 사막 투어에 나섰다. 사막으로 떠나는 시작부터 고역이었다. 사막의 모래 먼지가 잔뜩 낀 사륜구동 지프 차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갈 차를 슬쩍 보니, 운전석과 분리된 짐칸에 실려 갈 모양이다. 개조된 짐칸 벽에 붙은 작은 좌석은 역시나 모래가 버스럭거릴 것처럼 보였다. 독일인으로 보이는 백인 커플 한 쌍과 우리 가족 셋 이렇게 5명이 일행이었다. 몸을 낮추고 지프니 뒷칸에 앉아보려 했는데, 그만 좁은 입구를 통과하다가 이마를 '쿵' 받혀 버렸다. 이 더러운 지프니가 사막으로 출발도 하기 전에, 먼저 타박상부터 선사했다. 


검은 올리브 같이 까만 이집션 운전자는 영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불안은 더 고조됐다. 사막은 당연히 다 비포장도로다. 도로라는 말이 무색하다. 길은 없다. 숙련된 지프니 운전자는 울퉁불퉁한 사막에서 길을 내가며 내달려야 했다. 

'여기서 도대체 뭘 보며 방향을 잡고 나가는 걸까?' 생각했다. 사방이 펑 뚫린 사막에선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조차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매일같이 투어 지프니를 운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지프니 기사라는 것을 알지만달릴수록 가속도가 붙는 차는 언제 전복될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지프니 기사는 달리는 일에 거침이 없었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지프니를 몰면서도 옆좌석의 앉은 동료와 눈을 맞추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 데는 그였다. 그러다 언성을 높이더니 급기야, 동료와 말싸움까지 났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이 상황에 전화벨이 울렸고, 싸움을 멈춘 지프니 기사는 한참을 유쾌하게 통화하더니, 한 마디를 못 알아듣는 아랍어로 옆 사람과 열렬히 다시 싸웠다. 휴~^^


안전벨트는커녕 내 몸하나 지탱하기 힘든 좌석에 앉는 나. 내 양손을 어디에 두면 가장 차와 밀착될지 신중해질 때였다. 한 손은 앞자리 운전석 헤드를 꽉 잡고 다른 한 손은 내가 앉은 좌석의 바닥을 힘껏 잡았다. 맞은편에 앉은 남편과 아들은 서로를 꽉 잡으며, 의지하는 듯했다.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다. 사륜구동 지프니가 사막에서 롤러코스터를 태워준 시간이었다. 이렇게 1시간을 더 가야 목적지가 도착할 것이라 했다. 

이 상황에서 제일 안전한 사람은 운전자다. 차가 전복된다면 가장 빨리 낌새를 느낄 사람이니까. 최대한 자리와 몸을 밀착하고 나니, 지프니 앞 유리를 통해, 내 눈앞에 사막의 광경이 펼쳐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길을 내고 사람이 지나간 흔적들. 멀리 보이는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 산맥들. 붉고 검고 누런 모래와 자갈, 흙으로 된 땅. 신기하게도 이 황량한 땅을 달리는 동안 나는 지루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장관에 완전히 매료돼서 일까? 차가 뒤집힐까 온몸에 촉각을 집중해서 일까?


지프니가 길을 뚫고 가는 리듬이 몸에 익숙해질 무렵, 우리는 목적지인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신기루 같은 사막의 오아시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이 막막했던 땅에 나무가 솟아오른 모습이 마치 신기루처럼 보였다. 

이곳 오아시스 주인은 사막에서 물이 터지는 바람에 대박이 났단다. 사막에서 물이 터지면 기름이 터지는 것보다 낫단다. 오아시스 주인은 이 메마른 사막에 물이 터지자, 수박 농사를 시작했는데, 수박이 너무 달아서 떼돈을 벌고 있다며 우리의 별빛 투어 가이드가 목청 높여 설명을 해 주었다. 

사막에 오아시스란 정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적막한 이 사막은 과연 생명체가 살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땅이었다. 오아시스를 만나고 나니, 사막도 생명이 깃든 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아시스에는 나무가 있고 물이 있고 사람이 지은 집과 가축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오아시스에 도착한 시간은 밤의 어둠이 온 땅을 삼켜버릴 것 같은 해 질 무렵이었다. 이 적막강산에서 모든 생명이 깃든 존재들은 물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올 수밖에 없어 보였다. 사람도 낙타도 염소도 닭도.

사막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모든 것을 모이게 하는 생명의 원천은 바로 물이었다. 오아시스에 모인 우리는 밤의 찬기를 막아줄 카펫 위에 자리를 잡고 달과 별을 맞이 할 준비를 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슴푸레해 지자, 먼저 우리를 반겨준 것은 달이었다. 이 날의 달은 보름달에 가까워지고 있는 둥근레한 달이었다. 완벽하게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거의 차 올라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달의 표면을 봤다. 천체망원경 속 달은 옥토끼가 살 것 같은 설화 속의 달이 아니라 우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에서 봄직한 달의 표면이었다. 우리는 이 날, 있는 모습 그대로 실재하는 달의 진면목을 보았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달은 더 은은하게 빛을 발산했다.

사막의 오아시스, 카펫 위에 누워, 하늘에 별이 하나씩 점등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본 적은 없었다. 하늘이 캄캄해질수록 여기저기 불을 밝힌 별들이 빛을 발사했다. 하늘을 관장하는 누군가가 스위치를 하나씩 켜면 별에 불빛이 들어오는 걸까. 처음에는 몇 개 빛나던 별들이었는데, 수십 아니, 수백 개에 별에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우리의 별빛 투어 가이드가 내게 다가와서 내 별자리를 물었다. 

"나의 별자리는 토러스." 황소자리였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오감으로 소유를 향유하는 별자리. 나는 토러스라고 말했다.

별빛 투어 가이드는 지금은 황소자리가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며 대신 초저녁에 제일 잘 보인다는 전갈자리를 보여줬다. 

밤하늘에 또렷이 빛나는 전갈자리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별자리, 깊은 내면과 욕망을 감추고 무심히 살려하는 전갈자리, 내가 아는 전갈자리 지인들이 머릿속에 하나, 둘 떠 올랐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인문의역학을 공부했었다. 서양 별자리도 공부한 적이 있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4년도 전 일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벗들과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에세이를 섰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주역, 명리, 서양 별자리, 허준의 <동의보감>, 박지원의 <열하일기>, 도스트 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수많은 위대한 책들.

문사철과 의역학, 인문학 고전을 읽고 글을 썼었지! 그때의 내가, 저 별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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