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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8. 2022

지난 여름 이집트 행

여행의 이유

이스탄불에 여름이 가고 있다. 아쉽다. 이스탄불은 4월부터 10월까지 건기이다. 이 기간에는 날씨가 정말 끝내준다. 겨울로 들어서는 11월부터 3월까지는 긴 우기로 접어들게 된다. 우기가 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비가 온다.  운이 좋으면 하루 이틀 맑다가도 금방 다시 비가 오는 날씨다. 비, 비, 비. 날씨가 이렇다 보니, 겨울이 되기 전에 겨울을 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나같이 나가기 좋아하는 사람이 밖을 못 나가면 병 나기 십상이다. 집에서라도 무엇이든 할 거리를 만들어 놔야 불평 없는 타국 생활이 가능해진다.

나는 벌서 이스탄불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같이 비가 쏟아질 이스탄불, 남편도 아들도 나가고, 나 홀로 집에 담겨, 할 수 있는 나만의 놀이를 준비하는 중이다.  읽거나 쓰거나다. 한번 앉아서 쓰기 시작하면, 서너 시간은 뚝딱 가니 시간 보내기에 이 보다 더 좋은 놀이는 없다.  


유럽쪽 나라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매일 비가 오고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스탄불에 처음 왔을 때는 나도 몰랐다. 한국에만 살아 본 나로서는 인생 최초의 경험이었다. 이스탄불에 온 첫 해에는 모르고 당했지만 이제는 벌써 4번째 겨울이다.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 놓고 대비를 한다. 대책이 허술하면 우중충한 날씨가 나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끝없는 침잠으로 나를 데려가고도 남을 잿빛 비구름들. 오늘도 내일도 비로 지루할 하늘을 대비해서 레인코트와 장화도 준비했지만, 나는 브런치에 글을 연재할 태세를 확고히 한다.


오늘은 이 끝내주는 건기의 여름 날씨가 가는 것이 아쉬워, 올여름 이야기 중 하나인 이집트 여행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터키 이스탄불 공항은 유라시아 지역을 어디든 갈 수 있는 허브 공항이다. 비행기 편수도  많고 갈 수 있는 나라도 매우 다양하다. 심지어 매우 싸다. 우리 가족을 이스탄불이 아닌 다른 생태계로 데려다 줄, 천마 페가수스의 저가 항공기는 이착륙 시 약간 덜커덩거리는 공포만 참을 수 있다면, 가히 싸고도 나쁘지 않다.

보통은 유럽 여행을 많이 가지만, 이번에는 이집트 후르가다가보자고 남편이 제안을 했다. 사실 나는 요즘 들어 여행에 좀 시큰둥했었다. 특히 낙후된 나라 여행은 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서 고생하러 여행하기를 각오하지만 나는 집보다 나을 것이 없는 여행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쾌적하지 않은 숙소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예정된 여행이라면 굳이 왜 가야 하는가? 짐을 싸고 다시 풀고, 식구들의 며칠치 빨래가 옴팡 내 차지가 되는 여행이라는 걸 가려면, 내 입맛에 딱 맞는 흥밋거리 있어야 했다. 비행기만 올라타면 땡땡해지는 

다리와 비행기에서 내리면 펼쳐지는 낯선 언어들의 혼란스러움, 이런 것들을 감래 할 충분한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집트는 적당히 좋은 호텔에 묵더라도 모든 면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나라였다.

내가 왈, '왜 하필 이집트야? 안 가도 될 거 같은데, 유튜브에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호객행위로 기분 잡치기 일수인 나라가 이집트라던데..."

나에게 이집트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까마귀 떼처럼 깍깍거리는 억센 호객꾼들 사이에서 이집션들의 밥벌이 영어를 알아들으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기꾼들 사이에서 멀뚱멀뚱 호갱 여행자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나라였다.


근데 남편은 자꾸 이집트를 가자고 나를 설득했다. 이유인즉, 여름에는 이집트가 가장 싸단다. 보통 유럽은 여름이 극성수기이기 때문이다. 1년 중 여름이 가장 비싼데, 특히나 숙박이 약 3배 정도 차이가 난단다. 

여름이 가장 비싼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유럽의 날씨는 여름에만 좋기 때문이다. 가을 겨울로 갈수록 말도 안 되는 우중충한 날씨에 비를 동반하기 때문에 비싼 항공료를 내고 우기에 유럽을 선택할 이는 드물다.

넷플리스 영화 <셜록>을 본 사람은 쉽게 상상할 수 있. <설록>의 우울한 잿빛 배경은 영화적인 설정이 아니다. 실제 런던의 날씨가 그렇다. 우기인 이스탄불의 겨울 날씨라면,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런던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극성수기 유럽을 가기보다는 여름에 물놀이를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이집트로 가성비 여행을 제안하는 남편에게, 나는 가심비를 주장했다. 나는 집보다 나은 곳이 아니면 굳이 돈 들여 어딜 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남편도 잘 안다. 편안한 집에서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 놓고, 책 고 노트북에 글도 끌적 거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있으면 만족스러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나'이니까. 

머무르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떠나고 싶은  남자. 우리는 늘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이스탄불에 머물러야 할 이유보다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가 분명해지면 그 때 움직인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이집트를 굳이 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사막에서 천 개의 별을 보여 줄 거라고 했다. 그리고 홍해 바닷 속 거북이와 니모는 덤으로 보게 될 것이라며 나를 꼬드겼다. '사막에서 천 개의 별을 볼 수 있다고?' 스노클링은 여러 번 해 봤지만 사막에 별빛 투어는 구미가 좀 당기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 관심을 보였니, 남편이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집트 썰을 더 풀어 나갔다.

이집트에서 유학을 했다는 후배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이집트에 갈 기회가 생기면 흔히 하는 사막의 바이크 투어 같은 것은 하지 말고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밤을 즐기며 별을 봐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집트 후르가다에선 딱 한 개 있는 '오아시스에서 별자리를 보여주는 투어'를 하는 곳을 찾았단다.

순간 혹해서 걸려 든 나는, "그래? 그럼 그거 영어로 다 설명해주는 건가?"

"그렇지? 영어로 설명 다 해주지."한 밤중에 자기 별자리를 찾아 주며 설명해주는 투어인데, 지금 후르가다에서 여기, 딱 한 곳만 진행한다니까." 하며 희귀한 투어를 자기가 픽했다며, 여행상품을 고르는 안목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뭐, 우리 부부는 늘 이런 식이다. 낚는 그와 낚이는 나.

"어때? 이집트 갈 거야?"예약해야 되는데...

"응, 알았어. 예약해. 남편.


이렇게 우리는 사막에 별을 보겠다고 한 여름에 40도가 훌쩍 넘는 뜨거운 이집트행을 택했었다.

도착하자마자 지렁이가 꿈틀꿈틀 거리는 것 같은 아랍어가 펼쳐는, 멀쩡한 문명인을 까막눈의 문맹인으로 만드는, 아라비아 숫자조차 도통 알아볼 수 없는 그런 나라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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