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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Aug 17. 2021

///걸어온.반찬.청혼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

시간을 맞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거나 혹은 술을 마시는 일반적인 약속의 경우에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있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그동안  지냈는지 안부를 확인하고 근황을 묻는다.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는 등의 부수적인 활동을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만남의 목적은 그동안 못한 얘기들을 하고, 듣기 위함이다. 연락의 빈도에 따라 대화의 깊이는 달라진다. 연락을 자주 할수록  깊은 얘기를 나눌 확률이 높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근황을 겉핥기식으로 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화의 깊이가 관계의 깊이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또한 누적된 시간이 관계의 깊이를 나타내지도 않는다. 이에 반해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는 여행은 함께 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포함하지만 여행지에서의 목적이 분명히 따로 있기 마련이다.  목적은 휴식이  수도 있고, 관광이나 쇼핑이  수도 있다. 보통 여행지에서 해야  것들이나 가야  곳들이 여행 계획에 포함된다. 물론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어'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지 선택이 꽤 어려웠다. 이런저런 조건들을 충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해진 여행지에는 역시나 가야 할 명소, 가보고 싶은 카페, 먹어야 할 동네 맛집들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떠나기 전의 나의 여행 목표는 '방해 없는 참 휴식'이었지만, 막상 여행지에서는 촘촘한 시간계획대로 움직여야만 완수할 수 있는 미션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고 '참 휴식'은 오히려 녹초가 된 채 집에 돌아온 다음에야 가능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런 와중에 함께 여행을 간 사람과 여행의 목적이 다르거나, 여행의 포인트가 다를 경우에 그 여행은 한 없이 불편해질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양보와 타협으로 대부분의 여행은 무사히 끝나게 된다. (그 후에 다시는 같이 여행을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일반적인 약속이 아닌 여행을 함께 떠난다는 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일단 함께 여행을 갈 정도의 사이라는 건 불편하지 않은 꽤나 가까운 사이라는 것, 여행에서의 시간을 함께 맞춰나가며 공유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역시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지만 오랜 시간 알고 지냈어도 여행에서는 또 다른 문제와 마주칠 수 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동안 몰랐던 습관을 알게 되기도 한다. 처음 떠난 여행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알 수 없는 고집에 짜증이 날 때도 있고, 배려 없는 말 한마디에 서운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한다. 때로는 공감의 박수와 함께 맞장구를 치지만 또 어떤 때에는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그동안 누군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여행의 일정 끝에 누군가는 든든한 식사를 찾고 누군가는 시원한 음료를 찾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다른 모양인데 같은 곳을 향해 같은 속도로 걸어야 하는 여행은 참 힘든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연이라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간의 누적만으로 누군가를 잘 안다거나 믿을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낯선 모습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으며, 때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범하는 실수들도 있다. 나란히 걷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함께 하는 사람에게로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우리는 낯설고 복잡한 그 여행을 통해

서로의 보폭을 맞출 수 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함께 하는 여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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