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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Jul 30. 2021

///왼발.큰아들.도배

변화해야 하는 시기

출근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만나거나 아무튼 외부활동을 하다가 지치고 힘들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심지어 가끔씩 들르는 본가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면서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더운 날들이 계속되면서 집 밖을 나서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의 집이 대단히 좋은 집도 아니고 그 안에 꿀단지를 숨겨놓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다리는 반려동물이나 현관문 앞에 택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쉽지만 더 이상 택배는 나에게 설레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치고 힘들면 집을 찾게 된다. 직장에서 '엄마 보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루 종일 수 없이 듣는 걸 보면 누구다 다 똑같은 마음인가 보다. 물론 집에 가기 싫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몇몇 상황일 때이다. 예를 들면, 집에 불편한 사람이 방문했다거나, 좋아하는 이성 앞에 서라던가 (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 누군가 나한테 그랬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들..  

예전에 글로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를 '집돌이'로 자부하며 며칠씩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집에는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많은 수단들이 있고, 책이 있고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전자책을 구매해서 바로 읽으면 된다.), 나의 관심사가 반영된 많은 놀거리가 있고, 완성된 메뉴나 식재료를 원하는 대로 문 앞까지 배달해주기 때문에 음식도 문제 될 게 전혀 없다. 심지어 얼마 전에 이용한 배달 서비스는 마트에서 장 보듯이 고르면 30분 내외로 문 앞에 갖다 주기까지 해서 다음날 새벽까지 기다릴 필요조차 없었다. 처음 직장생활의 휴식기를 맞이했을 때, 나는 당분간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속으로 삼키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휴식의 시간에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면서 재충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또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휴식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 있는 게 휴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똑같이 밖에 나가면 간절하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집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편하고 좋은데 쉬는 것 같지 않은 알 수 없는 느낌. 휴식에도 매너리즘이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항상 집에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때쯤에 호캉스라는 것을 떠나기로 했다. 예전의 나라면 굳이 같은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호캉스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혼자 떠나는 호캉스가 집에 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어쩐지 집에서는 나 스스로를 가둘 수 없었고 그래서 더 이상 충전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밖에 돌아다닐 생각은 아니어서 호텔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고, 나를 고립시킬만한 곳이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SNS와 유튜브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읽을 책 5권을 챙겼다. 처음에는 휴대폰도 놓고 가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실천하지 못했다. 휴대폰에는 연락의 기능 외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이 염려스러워 어플은 깊은 곳으로 숨겨뒀다. 호텔에 도착해서는 짐을 두고 바로 나와서 먹을거리를 잔뜩 샀다. 고립 준비랄까. 그리고 체크아웃할 때까지 따로 서술이 필요 없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읽었고, 먹었고, 생각했다. 그동안 몸은 집에 있었지만 조급한 마음에 스스로를 괴롭힌 건 아닌지,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건 아닌지 혹은 조급해질 때까지 너무 회피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했다. 뭐든지 수치로 평가되는 세계에 지독하게 환멸을 느꼈는데 거기에 길들여진 건 아닌지, 그것이 휴식의 시간을 침범하고 뭐든지 수치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10권의 책을 읽으면 뿌듯해하고 9권의 책을 읽으면 왜 이것밖에 못 읽었느냐며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고 자책하진 않았는지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다음 날 아침에 호텔을 나서니 하늘이 개어 있었다. 전날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내려서 불편했는데 더 이상 우산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근처 공원을 좀 걸었다. 아주 어렸을 때 놀러 온 이곳은  넓은 아스팔트 광장이었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달려도 끝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그 전에는 비행장이기도 했다던데. 그런데 지금은 모네의 <수련>을 옮겨놓은 듯한 연못과 나무, 꽃이 가득한 공원이 되었다니. 공원으로 처음 이곳을 만난 사람들은 비행장이나 아스팔트 광장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생에서도 그렇게 변화해야 하는 시기가 여러 번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아스팔트를 갈아엎고 나무를 심어야 하는 시기. 혹은 반대로 나무를 뽑고 땅을 다져서 아스팔트를 깔아야 할 시기. 지금 내가 그런 변화의 시기에 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집에서 보내는 휴식의 시간이 휴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건 변화 앞에서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이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정체되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욕심과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호텔에서 보낸 하루 사이에 내 마음에 있던 먹구름도 조금은 걷힌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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