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이나 걸릴 일이었을까. 진짜로.
만나이 27에 이혼하고. 작년으로 9년이었으니 이제 10년.
나는 37이 되었다.
아직 젊다면 젊은 청춘이라지만.
나의 20대 후반, 30대 초반은
가장 빛나야 할 시기인데도
결혼과 이혼이라는
추가적인 고민과 압박감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솔직히,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이혼녀라는 타이틀을 갖고 살아가는 것도 버거웠고,
내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데 이혼이라는 개인적 이슈까지
주렁주렁 달고 사는 게 너무 싫었다.
진로는 진로대로 힘겨웠고,
사회에서 자리도 잡아야 하는데
경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뭔가 출발선이 나만 한 200미터 뒤로 밀린 느낌이었다.
그냥 되게 어린 애처럼 앞만 보고 산 시간도 꽤 오래 된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20대 후반에 이혼녀가 된 게 너무 억울해서
못 견디겠고 억울해서,
그럭저럭 대학원생이라는 명맥만 유지하면서
하루살이처럼 그 날 하루만 보고 살았다.
미래는 없는 듯이, 아니. 내 미래는 이제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듯이.
부잣집에 시집 가서 결혼에 들인 돈만
약 1억원이었는데도(물론 우리 부모님 돈이었고, 지금도 그래서 갚고 있지만)
이혼 후 전남편측에게서 받은 2,000만원이 전 재산이었던 나는,
이런 저런 생활비와 이혼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생활비조로 진 빚을 갚고
오피스텔 보증금을 내고 나니 정말 빈털털이가 되었다.
당장 대학원을 다녀야 하니
학비며 생활비를 벌어야하는데,
돈 벌면서 공부하는 게 참 힘들었다.
이혼하느라 힘들었으니,
보상심리 때문에
이혼하고 나서는 좀 편해야 하고,
꽃길만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개고생을 하니 억울했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그냥 친구들하고 만나서 놀고
또 놀고, 돈 벌면 다 써버리고.
상처받은 자아를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방식으로
치유한다고 믿고 그렇게 다뤘다.
그러다 더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나는 로스쿨에 간다.
그냥, 이혼녀라는 내 초라한 자아를
숨겨줄 그럴싸할 타이틀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영원히 늙지 않는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수 없다는듯,
내 자아는 아직 망나니처럼 행동할 그럴싸할 타이틀 하나가
필요한데 그 다음 타이틀은 로스쿨생이라는 듯,
운좋게 로스쿨생이 되었다.
물론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로스쿨이
나한테 두 배의 고생을 안겨주게 될지는
이 때만 해도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로스쿨도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수단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상처 받은 자신을 수술하지 않고,
지혈만 하면서 겨우겨우 버티는 동안.
9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게 9년이나 걸려야 할 일이었을까 싶다.
그 사이 내 청춘은 많은 부분 날아가버렸다.
물론 열심히 살았고,
그 사이 정신줄 붙잡고 매일 최선을 다해 산 건 맞다.
하지만 방향이 틀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열심히만 살았다.
나한텐 수술이 필요했는데 철철 흘러나오는 피만 붕대로 칭칭 감고.
어떻게든 세월이 해결해주겠지하고
멍하니 기다렸던 9년이었다.
그럴 일은 아니었다.
그냥 바로 수술하면 될 일을.
이건 후회한다.
후회한다고 말하는 것도 나한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 세상에 이혼인들이 정말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나처럼 후회하지 마시길.
이혼의 회복은 정말로. 9년이나 걸릴 일이 아니다.
당신의 청춘을 희생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