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여름이 멀지 않았음을 체감할 수 있는 날이었다. 서울시 교육청 주차장에 차를 대고 국립현대미술관까지 걸어가는데 정수리가 뜨겁게 달궈졌다. Y는 얼마 전 부모님으로부터 머리가 빠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고를 들은 터라 손으로 그늘을 씌워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그만뒀다. 역시 우리가 사는 세계 - 아직까지는 아인슈타인의 세계 - 에서, 빛은 절대적이다.
광화문은 힘들이 교차했던 공간이다. 왕조가 깃들었던 곳, 일제가 그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앙청을 세웠던 곳, 연합군의 실질적 우두머리였던 미국의 대사관이 자리한 곳, 그리고 군부의 장갑차가 달리던 곳, 촛불과 야광봉이 있었던 곳. 그리고 그날 거기엔 피부색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금박을 수놓은 한복을 입고 오가고 있었다.
대형 스피커를 울리며 찢어질 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해 보니 선거를 앞둔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목소리 주인공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적어도 호칭으로 보자면 종교인이었다. 중세를 겪어보지 못해서인지, 면죄부를 팔던 그 시절의 민초가 아니라서 그런지 Y는 저쯤 되면 '세속화'라는 말이 우스워진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2000년 하고도 25년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 큰 변고가 있었다.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론 뮤익 특별전을 볼 당시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은 전시장이 있었고 Y는, '꼭 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덕수궁에서 봤던 초현실주의에 이어 현대미술을 테마로 한 전시였다.
Y는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푸른빛의 작품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다. 그때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이 정중하게 제지했다. Y는 당황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은 대부분 사진을 찍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저작권 때문에 촬영하실 수 없습니다. 이 전시의 다른 모든 작품은 촬영이 가능한데요, 단 하나, 이 작품은 안 됩니다."
단 하나. 김환기의 1973년 작, 산울림(산울림 19-II-73#307)이었다. Y도 들어본 적이 있는, 어떤 작품들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은 매우 유명한 작가였다.
심술이 난 탓일까? Y는 김이 빠졌다. 전시된 다른 작품들도 아주 유명한, 도록에서 봤던 기억까지 있는 작품들이었는데도 긴장 없이 건성으로 바라보고 말았다. 약간 과장해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처음에 전시를 보러 가면서 Y는 '추상'이라는 단어 자체에 집중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왜 구상이 아니고 추상인가? 그런데 김환기의 작품을 보면서 추가해야 할 키워드가 생겼다. '단 하나'라는 키워드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요즘 Y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과의 연결점을 찾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산울림 19-II-73#307>(1973)은 작가의 뉴욕 시기 점화 중 후기 대표작으로, 캔버스에 묽은 안료로 점을 찍어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깊고 짙은 청색을 바탕으로 미세한 점들이 반복되어, 원들이 겹치고 퍼져 나가는 형태가 마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가는 1970년 1월 8일 일기에 점화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물을 생각하며 오만까지 찍어 가는 점. 어떻면 내 마음속을 말해 주는 것일까." 점화는 작가의 일기이자 오랫동안 지향해 왔던 질서의 세계에 대한 표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Y는 이름 때문에, 유명세 때문에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늘 생각한다. 그런데, 김환기 작가의 작품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고 보았을 때도 아름다웠다. 멀리서 볼 때,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 볼 때 작품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추상화는 왜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방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추상은 모방이 아니다. 애초에 소리에 붙여진 이름인 '산울림'은 형상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김환기의 작품은 모방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미메시스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1448b4-19
추상미술은 언제 출현하게 되었을까? 19세기 후반 후기 인상주의의 자유로운 경향은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추상주의로 나아갔다. 여기서 Y는 서양 미술사의 '단절', 즉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지점의 논의들을 장황하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잘 모르기 때문에 아는 척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상황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시기적 특수성'을 짚을 수는 있다.
우선 '콘텐츠 제작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추상미술이 촉발된 시기는 사진기가 만들어진 시기와 맞닿아있다. 두 번째, '산업'적인 측면에서, 증기기관이 도입되어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노동으로 대체되는 시기였다. 요컨대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화가들은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839년 카메라의 발명은 미술사에서 하나의 혁명과도 같았다. 예술가는 카메라와 싸워 대상을 카메라보다 더 정확하게 그리려고 힘쓰거나, 카메라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현실 세계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을 그만두고 회화만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이후 예술의 패러다임을 변화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흐, 세잔, 피카소, 모두 카메라의 발명 이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예술가다.
https://www.acc.go.kr/webzine/index.do?article=834&lang=ko
그런데 과거 화가들이 맞닥뜨렸던 질문을 지금 우리 모두가 마주하고 있다. 게다가 그 파도는 단순히 미술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모든 창작 활동에 동일하게 다가오고 있다.
해외의 어느 게임회사 3D 아티스트는 미드저니 v5 출시 이후, 상사가 미드저니로 작업할 것을 지시하여 자신의 업무가 달라졌다고 호소한 바 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3D 아티스트가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키는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결과물을 더 보기 좋게 구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결과물도 자신이 직접 만든 것보다 미드저니로 생성한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혼란스러워진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와 같은 창작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요하는 일인데, 이것은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그 믿음을 깨고, 이제 인간의 영역을 넘고 있다.
https://www.acc.go.kr/webzine/index.do?article=834&lang=ko
소설가 Y는 작년 4월부터 생성형 AI 미드저니를 구독해 쓰고 있다. AI가 인간의 작품을 학습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창작이 아니라 '짜깁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인간의 창작 활동 또한 '장기간의 학습을 거쳐 자신이 습득한 패턴을 창의적으로 출력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생성형 AI와 다를 게 없다.
챗GPT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은 학습한 지식을 벡터로 구현해 신경망을 구성하고 하나의 낱말에 다음 낱말을 잘 이어가는 방식(생성형)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나 엄청난 학습을 해서 만들어진 모델은 사람과 다르지 않게 말하고 글을 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음악들을 학습한 수노(SUNO)라는 인공지능은 가사를 주고, 곡의 분위기를 설명해 주면 1분 만에 곡을 뽑아낸다. 작곡만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글, 사진, 동영상, 음악, 목소리 등 거의 모든 것들이 AI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서 Y는 이쯤에서 1부 격인 이 글이 말하려 했던 바에 대해 급하게 정리해 본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내 밖의 세계'의 모사였던 회화는 내면의 모사, 혹은 생각의 드러냄, 제시로 나아갔다. 모든 창작의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인공지능이라는 도구가 창작의 문턱을 극단적으로 낮추게 되는 시점에서 예술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를 맞게 될 것임에 틀림 없다. 회화가 그랬던 것처럼.
큰 방향으로 보면 예술은 '취향의 문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플랫폼의 변화(극장 -> OTT)로 '영화'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달라지고, 사람들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의 소비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통되는 거의 대부분의 사진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묵직하고 값이 비싼 SLR카메라와 대포처럼 생긴 렌즈가, 아주 적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아주 제한된 영역에서 인간에 의한, 과거의 방식에 의존한 창작 활동이 계속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건, 아주 소수. SF적으로 생각해 보면 미래의 어느 날, 단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고 Y는 생각한다.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
■ 아래는 SUNO라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Y가 만들어낸 곡들이다. '동그란'이란 여자 가수는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1집으로 10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Y가 한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 가사를 쓰고, 곡의 분위기를 설정해주는 일. 두 번째로는 그렇게 해서 나온 곡들 가운데 가장 '취향'에 맞다고 생각되는 것을 고르는 일. 그렇게 해서 동그란의 첫 번째 앨범 <오후 2시의 공원>이 완성되었다.
'소설가 Y의 미술관 산책'의 독자시라면 반드시 들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