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hy not Cub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ia Sep 13. 2020

그래도 여행은 좋을 수밖에 없더라

07. 모히또, 랍스터, 그리고 피냐콜라다

중심가로 나가니 사람이 가득했다. 3일 후 뜨리니다드로 가야 했기에 비아술 매표소에서 운행 시간부터 확인했다. 카메라로 시간표를 찍는데, 쿠바노 한 명이 다가와 치근덕대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군’


지인들은 내게 종종 '놀리기 쉬운 사람'이라고 평했다. 반응이 재밌다는 거였다. 아바나의 쿠바노들이 '치나'라고 부르며 다가올 때도 난 역시 격하게 반응했고,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었더랬다. 피곤해지지 않으려면 원래의 나를 숨겨야 했다. 최대한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앞만 보고 걸었다. 그렇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자 쿠바노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이내 사라졌다.


당시 비냘레스에서 뜨리니다드로 가는 비아술은 하루에 단 한 대뿐이었다. 그것도 무려 아침 6시 45분에 출발했다.


내 생애 첫 랍스터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위와 장이 채워달라며 아우성이었다. 미리 몇 군데의 식당을 알아두었지만, 정보는 모두 내 곁을 떠난 손전화 안에 있었다. 고민하다가 오달리스 까사에 있던 가이드북에서 스치듯이 본 '돈 또마스'에 가기로 했다. 건물도 간판도 모두 큰 곳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2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저물 때라 어둑했지만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점원이 준 메뉴판을 살폈다. 생각해 보니 쿠바 도착 이후 제대로 된 식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싸도 괜찮으니 먹고 싶은 걸 먹자고 다짐했다. 점원을 불러 랍스터 요리와 모히또 한 잔을 주문했다.


돈 또마스는 비냘레스에서 나름 유명한 음식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왜지...?)
돈 또마스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아기자기하고 예쁜데, 나무가 다 가렸네.


먼저 나온 모히또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응? 알고 있던 맛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국의 그것보다 럼주 비율이 높은 듯했다. 꽤 썼다. 하지만 풍경과 여행 기분을 안주 삼아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술술 잘 넘어갔다. 그렇게 3분의 1쯤 마셨을 때쯤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익숙지 않은 칼질을 하며 내 생애 첫 랍스터를 천천히 음미했다. 살이 탱글탱글한 것이 식감이 묘했다.


그때 내 앞에 3인조 밴드가 나타났다. 그들은 조용히 악기를 세팅하더니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공연을 시작했다. 한 곡이면 끝날 줄 알았던 공연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 곡이 끝날 때마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과 함께 열심히 손뼉을 쳤다. 공연비로 약간의 팁도 냈다. 얼마냐고? 너무 적은 금액이라 비밀이다.


럼주 함량이 높았던 모히또. 하지만 홀짝홀짝 잘 마셨다.
내 생애 첫 랍스터 요리! 맛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잘 안 먹혔다. 미리 마신 모히또 때문에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공연 참 좋았는데.. 팁이 적어 미안했다.


딱 한 잔만 더!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공연 덕에 흥이 오른 채 식당을 나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피냐콜라다를 파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모히또로 살짝 알딸딸한 상태였지만 이 흥을 아쉽지 않게 즐기기 위해서는 취기가 더 필요했다. 그래, 이거 한 잔만 더 마시자. 가격은 2쿡. 갖고 있던 현지인용 화폐(모네다)를 써버려야겠다는 생각에 모네다로 계산이 가능하냐 물었다. 주인은 쿡만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2쿡 대신 50모네다를 내겠다고 하자 태도가 돌변했다. 24모네다가 1쿡이니, 주인 처지에서는 50모네다를 받으면 이득인 셈이었다. 그는 여러 번 내게 고맙다고 했다. (사실 좀 불쾌했지만) 마지막에는 윙크까지 하더라. 2모네다, 나한테는 별 게 아닌데. 나에게 고작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모히또와 피냐콜라다로 한껏 열이 올랐는데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노곤해진 몸을 침대에 뉘인 채 "아, 잘 왔어. 진짜."라고 중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채.


숙소로 가는 길.
2쿡, 아니 50모네다짜리 피냐콜라다. 달달하니 맛있었지만, 역시 한국의 그것보다 럼주 함량이 높더라.
숙소 침대 옆에 있던 방명록. 얼마 만에 보는 한국어인가! 3년 전에 묵었던 손님이 적어둔 거란다. 이후 한국 손님은 내가 처음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지도와 손전화 없이 여행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