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수요일. 퇴사한 지 1년 된 전 직장을 찾아갔다. 아, 7개월 간 계약직 인턴이었으니까 퇴사는 아니고 졸업이라고 하자. (이곳은 실제로 누군가 떠날 때 퇴사가 아닌 ‘졸업’이라고 하고, 졸업식을 한다.) 찾아간 이유는 간단하다. 다니는 동안 좋은 동료들 틈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일에 대한 가치관을 새롭게 적립할 수 있었기에 함께했던 대표님과 사수, 그리고 함께한 동료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다만, 졸업 후 1년 안에 꼭 찾아가는 게 스스로 내린 미션이었기에, 작년 졸업일 3월 31일이 되기 이틀 전에 찾아갔다.
감사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대하는 태도와 마인드를 점검할 수 있었다. 또, 일도관계도 잘 맺는 프로페셔널한 동료들을 보며 나의부족함을 직면하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또 힘들어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나를 알아가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조직 문화 속에서 일했던 경험은 내 삶의 아주 큰 선물이었다.
맛있는 도넛을 잔뜩 사들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 앞을 지나치던 대표님을 만나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었다. 새로 보는 직원들이 많아 어색하고 뻘쭘하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반가웠다. 잠시 공간을 둘러보고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을 하든 3년-5년은 존버하라는 이야기와, 실력과 리더십,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역량을 잘 갖추어라는 이야기, 그 이외에도 많은 얘기를 해주셨는데 너무 정신이 없었기에 기억이 잘 안 난다.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나 그냥 내가 걸어가고는 길을 응원해 주실 분이라는 것, 찾아와 준 것에 대해 반가워해주신다는 것에 감사했고 그걸로 충분했다.
왜 이제 찾아갔을까 싶었다. 지금까지 미뤄온 이유 중 하나가 '뭐라도 돼서 가고 싶어서'라는 이유였는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뭐라도 되어야 한다는 생각 따위가 제발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조금은 성장하고 발전해 있는 모습의 '나'로 찾아가고 싶은 마음도 알겠지만 성장에는 끝이 없고, 내가 바라는 목표지점까지 가려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말이다. '되긴 뭐가 돼~그냥 아무 때나 오면 되는데!'라는 인사가 참으로 반가웠고, 진작 올걸 생각했다. 환대에 감사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나에게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함께 일 할 기회를 주었던 언니, 허접한 이력서를 내밀었던 나를 받아준 대표님 덕분에 7개월 간의 회사생활은 내 삶에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고, 지금 내가 머무는 곳에 오기까지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누군가 나의 어떠한 면을 발견해 주고 기회를 준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유퀴즈 전도연 배우 편을 보고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기회를 선물 받은 것처럼 존버의 시간을 잘 지나 맡은 내 일을 잘하는 멋진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 좋은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의 좋은 기억을 안고 출근 전 마음을 다 잡는다. 머무르기보다 나아가는 사람, 생각하기보다 움직이는 사람, 신뢰할 수 있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환경이 어떻고 저떻고 핑계는 그만 좀 대고, 안팎으로 잠그고 있는 내 마음의 빗장을 열고, 계절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 듯 내 마음에도 조금의 변화가 있기를 바라면서 하루를 살아보려 한다. 오늘 하루만 잘 살자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에 모든 것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실력과 능력을 갖추기까지는 부단한 노력과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 복권도 걸리려면 사는 '노오력'이 필요하듯 요행을 바라지 말고 해야 할 일을 잘하자.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어른들의 모습을 하나 둘 닮아가자. 흐트러진 마음을 계속 흐트러진 채로 두지 말고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기 위해 애를 써보자. 게을러진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글도 부지런히 쓰자. 혹시 아나, 진짜 뭐라도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