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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수 Jul 22. 2019

<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린다 그래튼의 책을 읽고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회사나 조직이라는 곳에서 일해온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안정된 건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조상의 대부분은 농업, 목축업,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파는 일은 가내 수공업의 형태였다. 도구는 필요한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그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손으로 물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부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수공업을 통해 얻은 이윤을 재투자하여 생산량을 확대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부가 확대될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21세기도 이미 20년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100년 전과 같은 큰 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로봇의 발달로 단순 생산라인의 노동자는 사라져 가고 사무직은 꽉 짜인 위계질서보다 유연한 조직으로 프로젝트 형태의 일이 많아지고 있다. 오프 라인보다 온 라인에서 일하고 쇼핑하고 게임하는 시간이 더욱 늘어나고 있고 AI가 등장하면서 이젠 우리의 일이 어떻게 변해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변화는 항상 큰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오늘날의 변화는 급속한 기술 발전, 세계화의 확대, 수명과 인구구조의 근본적 변화, 저탄소 경제, 그리고 이들로 인한 빠르고 급격하게 요동치는 사회라는 다섯 가지 힘이 미묘하게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2차 산업혁명 시기에 엔지니어는 종업원들을 생산 라인에 적절히 배치하기 위해 공장을 재설계했다. 노동자들은 자율성을 잃었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품처럼 언제라도 교체 가능한 존재로 전락했다.”


산업혁명으로 증기 기관을 사용하게 되고 이것을 제조 공장에서 이용하게 된다. 제조 공장에서의 일은 분업화되어 있다. 하루 종일 한 가지 일에만 집중토록 하여 생산성을 높여갔다. 제조업이 확산되면서 엔지니어들은 생산 라인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배치하였고, 노동은 더욱 획일화되고 특화되었다. 그와 더불어 직장 생활과 작업 스케줄은 깐깐한 위계질서에 따라 관리되기 시작했다. 생산 라인뿐 아니라 사무직에서도 그러한 위계질서가 만들어졌다. 조직은 관료화되었고 조직의 상층부로 올라갈 기회는 있지만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디지털과 모바일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의 일도 크게 달라졌다. 기술의 변화로 세계는 가깝게 연결되고 노인 인구가 확대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런 상황에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첫째, 모든 정보와 지식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일반적인 역량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는 이른바 ‘유연한 전문능력(Serial Mastery)’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 가정은 해체되고 조직은 유동적인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협업하는 방식의 일이 확대될 것이다. 셋째, 높은 소득과 노동 시간만 따지는 일이 아니라 균형 잡힌 삶, 경험의 질을 높이는 삶에 더 주목하게 될 것이다. 다섯 가지 힘과 세 가지 고민의 결과로 우리는 매우 스마트하고 풍요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결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손 안의 컴퓨터와 같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없는 게 거의 없지만 그것에 집착하게 될 수 있다. 전 세계 사람들과 협력하며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그들과 경쟁에서 뒤처지면 기회를 얻기 힘들어진다. 



“우리의 세상은 이미 파편화돼 있다. 그런데 대다수 지구인을 하나로 연결하는 기술과 밤낮의 구분을 없애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결합은 파편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잠에서 깨자마자 밤새 세계 곳곳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한다. 급한 것만 빠르게 읽고 답장을 보내지만 아침 식사에 집중할 겨를도 없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계속되는 회의 일정이 잡혀있고 새로운 고객과 만나거나 기존 고객과 통화하다 보면 하루가 그냥 가버린다. 마트에 들를 시간이 없어 온라인으로 물건과 음식을 주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읽어야 할 자료와 보고서가 쌓여있다. 이러한 일의 파편화는 이미 2000년경 인터넷과 이메일을 이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휴대전화와 문자로 인해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조용히 있을 수 없다. 직장인들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끝없는 경쟁을 벌인다. 내가 기회를 잡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채어가 버린다. 밤낮이 없고 주말도 없다. 


지금 우리 인류는 모두가 시간에 쫓기고 있다. 몰입하는 시간, 성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집중하려고 할 때마다 무엇인가가 방해한다. 선배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역량과 기술을 높일 시간도 없고 누군가를 배려할 시간도 줄어든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불안함을 고조시킨다. 결국 순간순간의 시간으로 쪼개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삶을 피하려면 자기만의 시간을 모아 두고 잘 활용해야 한다. 급한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지 말고 급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에 시간을 더 써야 한다. 그 시간을 이용해 자신만의 전문역량을 쌓아야 한다. 그 역량이 다양한 곳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 생각을 실험하고 펼쳐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파편화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파편화로 인한 고립과 소외감도 극복할 수 있다. 도시화와 이민, 그리고 쪼개진 가족으로 인해 사람들의 외로움은 커진다. 일로 인한 관계도 좋지만, 일이 아니라 자기 성찰이 가능한 모임은 더 유용할 수 있다. 깊이 있는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의미 있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으로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고도의 연결성과 시간 축적, 사용자 제작의 힘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집단 지성을 만들어내고, 세상의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결합하는 오픈소스 혁신을 이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전형적인 위계 조직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디지털 시대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정보와 지식이 디지털로 변환되어 축적될 수 있다는 거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든 사이트와 블로그들이 그렇고, 이제는 위키피디아 같은 공용 백과사전이나 유튜브 같은 동영상 저장소, 링크드인 같은 인력 풀 앱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조직들이 자신의 문제를 의뢰하는 이노센티브도 마찬가지다.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열정적으로 나누고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고민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각 개인이 변화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 더 큰 혜택이다.


세상이 급격히 달라지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고 있다. 직장에서 일을 배우고 상사에게 잘 보여 자신도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것이 과거의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이기기 어렵고 고달픈 승진 경쟁에 참여하기보다 자신만의 삶을 찾아 떠나려 한다. 다른 사람이 거쳐갔던 길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요구와 취향에 더 맞는 길을 선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조직이 달라지고 가족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은 자기 성찰을 통해 변화를 꿈꾼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가 같은 질문을 통해 삶의 다채로움을 살리고자 한다.


큰 조직 내에서 일하기보다 소기업가로 활동하며 자율적인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생태계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프로젝트에 따라 모였다 헤어지며 일한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일가며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모든 거래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기업에는 정년퇴직이 있지만 이들에겐 그런 것이 없다.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고 고객이 인정해 주는 한 계속해서 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 내 정규직과 외부 프로젝트 단위 참여자 사이의 경계선이 불분명해진다. 



“일의 미래에는 일과 개인생활, 일과 놀이를 구분하는 장벽이 계속해서 무너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일에서 전문성을 기르려면 놀 준비를 해야 한다. 자신의 일에 열광해야, 전문성을 쌓기까지 따르는 긴장감을 사랑해야, 그리고 도전의식을 발휘해야 일에 필요한 전문 능력을 쌓을 수 있다.”


새로운 변화의 기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자본(Capital)을 축적해야 한다. 첫째는 지적 자본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면서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는 사회적 자본이다. 자신의 모든 인간관계와 일과 관련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대기업에 소속되지 않고 가족은 쪼개지면서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 소속감과 안정감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 일을 찾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셋째는 감성 자본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신이 내리는 선택의 과정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히 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회복력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일을 즐거움이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계적으로 일을 한다면 우리의 본성 일부가 사라지고 진정성도 확보할 수 없다. 의미 있는 삶은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을 하고 미디어가 홍보하는 상품을 쇼핑하는 데서 찾을 수 없다. 자아의 적극적인 참여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관심 있고 전문성이 있는 분야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놀이하듯이 역량을 쌓아야 하며, 그 역량으로 주위와 상호작용을 하며 가치를 만들어 내어야 의미를 얻게 된다. 자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함이 알려질 것이고 그것으로 개인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기술이 결합하면서 가치를 만들거나 높일 수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나누며 기술과 생각이 결합하면서 심층적 기술을 만들어 낸다. 


유연한 전문가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높은 가치로 평가받는 기술을 익혀야 하며, 그 핵심 기술 주위에서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역량과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면서 기회를 넓혀 간다. 겉보기에는 서로 관련성이 낮은 일들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깊은 연관성과 연속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한 대기업 임원은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책을 쓰며 작가 생활을 병행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개인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이 쉽지는 않다. 미지의 영역으로 한 번에 움직일 수는 없다. 자신의 전문성을 충분히 확인했다면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기회를 찾아내고 실험해야 한다. 실험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확인하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전환을 시작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을 도와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인정해주고 그 정체성에 맞는 태도와 활동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휴식기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재통합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며 대가 밑에서 배우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조직에 들어가 10년 정도는 경험하며 전문성을 쌓아야 하지만 1년 정도 쉬며 학습하고 전문 역량을 개발하여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다. 취미나 동아리 활동으로 그러한 관심과 역량을 키워갈 수도 있다. 50세 전후에는 다시 시간을 갖고 어떠한 일로 나머지 삶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전까지 쌓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소기업가로 변신한다면 정년퇴직에 관계없이 일 할 수 있다.




“우리가 다닌 학교는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는 방법도, 선택의 결과를 이해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전환한다는 것은 행동을 취할 마음을 먹는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1년간의 사회체험과 연봉을 맞바꾼다는 말이며, 독립적인 소기업가가 되는 대신 여기에 따르는 모든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할 시간을 내기 위해 유연근무제 혹은 파트타임 업무를 선택한다는 의미다. 분명 미래에는 과거보다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진다. 전환을 하려면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필연적으로 불안감을 불러오고,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에 불안감을 안겨준다는 죄의식이 생길 수도 있다. 


선택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죄책감을 억누르며 모순된 점을 말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고 새로운 일을 찾아갈 수 없다. 특히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 대신 생산적 경험을 중심에 두고 일을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모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일은 분명히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우리 삶이 바뀌려면 일 하는 방식이 바뀔 수밖에 없다. 선택은 물론 당신 스스로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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