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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수 Jul 26. 2019

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일의 미래>와 <내리막세상에서일하는노마드를위한안내서> 함께 읽기


우리는 일에서 무엇을 찾는 걸까? 스스로 돈을 벌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과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궁극적으로는 일을 통해 나의 정체성과 내 삶의 의미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면 그런 긍정적인 부분들이 부정적인 것들로 뒤바뀌기 시작한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는 건 비참하고, 조직과 사회에 필요한 역할이 아니라 상사나 경영진의 배만 불려주는 느낌이 든다. 내 삶의 의미를 찾기보단 오히려 초라해지려 한다. 힘들다고 맘대로 쉬어가거나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도 어렵다. 아무리 좋은 일도 오랜 시간 반복되면 에너지가 소진되기 시작한다. 


처음 직장이란 곳을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 자신에게 3년을 버티겠다고 다짐했다. 첫 3년은 새로운 곳, 새로운 사고방식에 적응하느라 쉽지 않았다. 매일매일 다른 일을 찾아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배우며 성장하는 자신이 그리 나쁘지 않게 보였다. 그렇게 3년씩 버티다가 18년을 견뎠다. 하지만, 계속된 야근과 스트레스로 번-아웃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신입사원 때부터 하던 전략기획 업무, 회사에서 인정받아 해외 MBA 과정을 다녀온 이후로 담당하게 된 경영진단 업무는 번-아웃 이전까지 내 삶의 보람이었다. 비록 힘들고 어렵고 가족과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해야 했지만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며 인정받는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아내도 소위 잘 나가는 남편을 자랑스러워했다. 동네 남편들 중에서 일등이라 했다. 돈 잘 벌고 회사에서 잘 나가고 특히, 집에서 저녁 먹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야근으로 매일 회사에서 저녁을 먹으며 뱃살은 불어갔고 친구들과의 만남은 거의 사라졌다. 누군가와 만나 속마음을 해소한다고 해도 내 일을 이해해주는 건 회사 동료들뿐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는 명절에나 잠깐 볼 수 있고 대학 친구는 내가 못 나가는 경우가 많아지자 연락이 뜸해졌다.


바쁜 것이 잘 살고 있다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되던 때였다. 모든 것이 회사 일 중심으로 돌아가고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는 줄고 상사의 지시에만 귀를 기울였다. 회사는 조직이고 조직에서 일한다는 건 상사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거다. 상사는 내게 일을 주고 일의 결과를 평가함으로써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난 언제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비록 엉뚱한 지시를 하거나 지시가 고압적이거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일을 주어도 말이다. 



미래에 우리의 일이 어떻게 바뀌어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작년부터 52시간 근로제도가 시행되고 최저 임금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지만 그게 우리 일의 근간을 바뀌어 놓으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스스로를 바꿔가고 있다. 과거에 인간은 생존 자체를 걱정했지만 이젠 길어진 생존기간이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 한 가지 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고 그렇다면 여러 가지 대안을 갖고 살아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늘어가고 자기 성찰을 통해 전환을 모색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은퇴 후 삶을 고민하는 사람, 휴직하며 일을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의 미래>를 통해 알게 된 가장 큰 변화의 움직임은 공장 같던 생산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거다. 100년 전 인간은 분업화를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바늘 하나도 혼자 만드는 것보다 공정을 쪼개어 여러 사람이 자신이 맡은 부분만 해내면 훨씬 더 많은 바늘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다. 같은 사고방식이 생산 공장뿐만 아니라 사무실에도 적용되었다. 부서를 나누고 부서별 역할을 수행하면 회사의 일이 효율적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자신의 일이 회사의 성장과 연결되지 못하는 소외감을 키웠다. 그 소외감이 개인의 열정을 이끌어 내지 못해 창의성의 더 중요해진 시대에 대응하긴 힘들다. 


이제 많은 일들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돌아간다. 나 또한 매년 3~4개의 TF를 운영하는 팀장으로 일했다. 서로 다른 부서의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다. 3~4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일하고 다시 헤어진다. 개인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장기적인 관계 유지보다 단기적인 소통 능력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협업과 소통은 같은 회사 내에서 회사 외로 번져간다. 중요 기능을 아웃소싱하는 회사들이 많아졌고 다른 회사와 경쟁이 아니라 협업이 더 중요하다. 당연히 해외에 있는 회사, 외국인들과의 소통도 늘어났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술의 발전은 이제 우리의 모든 일과 연관되기 시작했다. 자동번역기가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AI와 연결되면 서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성격과 주변 상황을 모두 고려한 최적의 통역이 곧 가능해질 것이다. TF 팀을 구성할 때 사람들의 전문성과 관계, 소통방식을 고려하여 참여할 사람 하나하나를 판단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 한 곳에 모여 일 할 필요도 없다. 온라인으로 즉시 소통하고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만 얼굴을 보며 얘기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6살 유튜버가 한 달에 수십 억 원을 벌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고, 어느 대학생이 그 소식에 자신이 쌓아온 많은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노력들을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튜버를 인플루언서라 부르기도 한다. 재미만 주는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많아지길 기대하지만 어쨌건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협업과 소통이 중요한 시대에는 자신의 평판이 쉽게 퍼져간다. 평판이 좋을수록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일하는 세계의 인플루언서가 되어 일의 대가를 더 많이 받게 될 게 틀림없다.


다만, 긍정적인 부분은 우리가 자신이 대해 고민하는 자아성찰의 시간이 더 늘어나고 자신만의 개성과 고유성을 찾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생산라인에 매달리듯 일하는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는 건 나와 내 옆 자리의 누군가는 서로 다른데 동일하게 대우받는다는 거다. 같지 않은데 같은 일을 하고 대우도 같으니 답답한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지, 어떤 일이 더 적합한지, 더 나아가 어떤 일로 내 정체성을 찾고 내 열정을 쏟아내고 싶은지 찾아야 한다. 어차피 생존기간이 더 길어진 만큼 자신의 개성과 일에 대해 고민할 시간은 더 많아졌다.



<내리막세상에서일하는노마드를위한안내서>를 읽고 나도 일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일로 살아갈 수 없다면 또는 의미를 찾기 어렵다면 다양한 일과 활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일에 대한 판단 기준은 “시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 돈이 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각 개인들은 돈이 되든 안되든 열정이 느껴지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물론 돈이 되면 더 좋다. (여기서 ‘일’은 포괄적인 의미로 노동과 작업, 활동 모두를 의미한다.)


아래와 같은 2X2 매트릭스를 생각해 보았다. 가로축이 돈벌이, 세로축이 열정의 강도를 의미한다. 돈벌이도 되고 열정도 느껴지는 일은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A) 일한 만큼 대우를 받고 일을 하면서 열정을 통해 몰입과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바라는 소위 “좋아하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어렵고 좋아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지겨운 일이 되기 쉽다.       

A와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일이 지겨워져 B로 바뀐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일하는 시간 대비 벌이가 적은 등 일 주변의 조건들이 열악해지는 경우도 많다. 어떤 이유로든 열정이 식으면 일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기에 일을 대충 처리해도 쓸데 있는 일로 인정받는다. 매우 안정적이어서 철밥통이라 불리는 일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돈벌이가 되진 않지만 열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도 C와 같은 일도 있다. 취미나 봉사 활동이 그렇다.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A와 같은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길 바라겠지만 B에 해당하는 지겹고 힘든 일도 생기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C의 활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없는 일은 아무리 열정을 다해도 놀이로 간주될 뿐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일이 돈벌이로 연결이 되면 A와 같은 바람직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돈벌이가 되지 않고 열정도 느껴지지 않는 노동 D도 있다. 가사 노동은 그 자체로는 가치가 크지 않지만 돈벌이를 하는 사람을 내조하는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가사 노동은 세탁기, 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의 발달로 투입하는 노동의 양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요리 같은 일은 오히려 가족을 위한 가치 있는 일이 되어 C의 놀이 같은 일로 변화되기도 한다.


A부터 D까지 네 개의 사분면이 모두 모여 나의 일이 되고 나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A가 개인과 사회 모두에 가장 바람직하다. B의 열정을 잃어버린 일은 큰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다시 A가 되긴 어렵다. 내 직업이 B가 되면 그때부터는 C를 찾아야 견딜 수 있다. C의 놀이와 활동은 A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내가 열정을 느끼지만 아직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돈벌이가 되는 일로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주말마다 목공으로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비록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돈벌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공 일에 재미와 재능이 느껴진다면 돈벌이로 전환할 수 있다. 돈벌이를 위한 시장 진입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몇 년 전 내가 번-아웃된 것은, 회사 일에만 집중하면서 나 자신의 전체를 활용하지 못하고 일부만 소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내가 관심을 가졌던 다양한 것들에 대해 귀를 닫아버린 채 회사와 상사의 지시에만 매달려 있었다. 무언가 맞지 않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만의 개성과 고유성을 감추고 일에 나를 끼워 맞추기만 해던 것이다.


이후로 주말에 목공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야 번-아웃 되어버린 내 마음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많은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고 당장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목공방에 있는 그 시간만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고 나무를 만지는 데 몰두할 수 있었다. 조금씩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의 일탈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글을 쓰고 싶었다. 매일 회사 보고서를 쓰고 다듬고 또 보고하면서 회사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담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씩 일기를 써오긴 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처음에는 리더십에 관해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에게 전문성이 있으면서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팀을 효과적으로 리드하는 방법이란 걸 알았다. 더구나 이젠 야근이 필수적인 시대가 아님을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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