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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i May 14. 2020

<0⥃0, 혹은 투명한 몸과 뒤집힌 세계> (2020)

몸들은 부딪칠 때 가장 재미있다. 부딪치는 일은 천천히 사라지는 것, 또한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범퍼! Bump!》(이하 《범퍼》)의 영상들은 서로 만나고 충돌하며 자신의 경로를 찾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전표처럼 놓인 한 쌍의 영상 작품들이 총 다섯 줄, 한가운데로 틈새를 만들면서 천장에 걸려 있다. (가장 마지막의 <Murika>와 <Julie>만은 예외적으로 서로에게 보다 가까이 접해 있다.) 입구를 등지고 서면 오른쪽 행이 이소정의 작품들, 왼쪽은 박세영의 작품들이다. 나란히 걸린 한 쌍의 영상들은 서로 간의 느슨한 연계 속에서 함께 설치되었다.

 위캔드의 전시 공간은 한 덩어리로, 분리된 영역 없이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열을 제외하면, 관객들은 영상을 관람하기 위하여 각 작업에 할당된 의자와 헤드셋을 사용한다. 해당 영상의 소리에 집중할 때 영상들 사이의 마찰력은 한층 약화된다. 앞뒤로 반사되는 다른 이미지들, 프로젝터의 빛 등이 미약한 방해가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범퍼》의 직접적인 갈등은 물리적인 조건들 아래서보다, 관객들이 전시를 하나의 맥락으로 기억하는 순간 본격적으로 심화한다. 모든 이미지들은 정해진 공간에-묘사하자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각자 다른 스타일의 영상이 양옆으로 밀착되어 있을 때, 각 작품에 대한 인상은 전시 전체의 감상 속에서 각개의 ‘변별 요소’라기보다는 ‘부분집합’으로서 인지된다. 어떤 이미지들이 먼저, 또 나중에 떠오를 것인가? 동시에 《범퍼》의 영상들은 어쩌면 극장의 지위를 탐내는 방식으로 재생된다. 그들은 자신과 마주앉은, 헤드셋과 의자에 앉은 한 명의 관객에게 중심으로서 주목받기를 원한다. 어떤 스크린 앞에 마주앉더라도 관객들은 “나를 주목하라”는  이미지들의 힘 싸움에 휘말린다. 열을 따라 지그재그로 영상을 감상하건, 행을 좇아 각 작가의 행보를 살피건, 영상들은 서로 부딪친다. 무엇을 먼저 보고 또 누구를 다음에 보든, 모든 작업들은 서로 비슷하거나 달라서 변함없이 충돌한다. 충돌이란 만남의 또 다른 형태다. 그들은 하필 같은 전시장 안에 함께 설치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운명공동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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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작가와 박세영 작가의 2인전 <Bump! 범퍼!>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전문은 위캔드 홈페이지(https://weekend-seoul.com/)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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