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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i Feb 11. 2021

<o와 오래된 마음>, 일부

(...)


o의 뜨개 속으로 처음 들어간 날,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곳은 지금껏 방문한 어떤 장소보다 현란하며 복잡스러웠다.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정교한 구조로 만든 매듭들 사이를 비척거리며 누비고 다니는 게 고작이었다. 나중에는 그 일조차 견디지 못하여 헐떡이며 기어 나왔다. 

o는 쭈그리고 앉은 채로 웃었다. 어때요? 묻기에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지난 번 그의 사진 속에 들어갔을 때보다 더하다고 답했다. 적어도 사진 속의 세계는 제자리에 잘 부착되어 있었노라고. 픽셀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찾은 양, 고정된 위치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반면 이 부드럽고 가벼운 뜨개 속은—.

이놈의 실들은 도저히 붙들려 있지를 않네요. 오히려 누군가를 붙잡으려고 혈안인 것 같아요. 보풀들에게 사로잡히면 놓여나지 못할 거 같아 겨우 도망쳐 나왔어요.

내 하소연에도 o는 깔깔 웃을 뿐이었다. 나는 억울해져서 거듭 말을 덧붙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정신을 차리고 보면 거기 꼭 붙잡혀서 당신 정원의 관리인이라도 되어 있을 것 같았다니까요. 

o의 웃음은 멈추질 않았다. 그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공원으로 데려갔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었다. 당시의 o는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작고 매끄러운 바퀴 위에 올라가 방향을 잘도 바꾸어 댔다. 무릎을 살짝 틀거나 어깨를 움찔거리는 것만으로 자신의 경로를 정할 수 있는 듯 보였다. 지금 o는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가 내 어깨에 자라난 보풀을 누르며 말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실들은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야 계속 자라날 수 있거든요.


(...)


시각예술 작가로 활동하는 '오수'님과의 협업 속에서 함께 만든 이야기, <o와 오래된 마음>을 소개합니다.

전문은 오수 님의 작업과 함께 차근차근 소개할예정이며, 먼저 공개한 텍스트는 https://oh-su.com 의 "The story of O" 항목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와 함께 읽는다면 좀 더 흥미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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