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볼 것 같은데 마음처럼 안 될 때
마음같지 않다.
호기롭게 직장을 때려치고 찾아온 공백 안에 아주 아주...
강렬한 것, 좋은 것, 이제는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만 채워넣으려 ‘발악’을 해봐도 아직은 ‘때’가 아닌가.
앞뒤 볼 것 없이 일단 지르고, 행보를 완전히 틀어 과감히 떠나버린 여행 유튜버들을 볼 때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
행보를 완전히 튼다는 건 뭘 근거로 할 수 있는 걸까.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아니, 틀고 싶은 방향이 있긴 한가?
방향이 없는데 허공에 뜬 발이 도대체 어디로 떨어진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방향은 도대체...
마음이 피어나질 않는다.
근성이 없다는 내면의 메아리가 온 몸과 마음을 적신다.
어차피 더 크게 할 수 없을 거라는 축축하고 찝찝한 불안감이 계속 찾아온다.
그래서, 그래서 또 쉬운 걸 찾는다.
쉽게, 그저 쉽게 할 수 있는 것
원래 해왔던 것, 그중에 가장 쉬운 것.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
비교적 깔끔하고, 일만 하면 그만인 것.
식당 홀서빙이나 하자.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알면?
그 사람이 날 뭐로 생각하지?
내가 그 시선에 자유로울 수 있나?
호언장담했던 그것들, 인생을 뒤집어보겠다는 그것들은 어떡하지?
어미의 삶을 답습하기 싫다고 오만을 부리던 그 과거는 어쩌지?
결국 그녀의 삶이 내 삶에 보이기 시작한다.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
과거의 내 생각, 나의 모든 말을 지울 수 있는 버튼.
아니 그냥 누군가 와서 내 머리에 쌓은 갖은 고정관념들을 지워주면 좋으련만
내 어미의 모습까지, 아니 이 순간에도 누군가 탓하고 떠넘기기 바라는 하찮은 정신머리까지도.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면 삶은 끝없이 가혹해진다.
보는 풍경, 그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그 사실 하나가
푸른 나무를 시궁창으로 끌어들여 말라 죽여버린다.
나는 푸른 나무를 본다.
하지만 그 나무는 죽었다.
내 안에서.
빙그레 바나나 우유를 한 잔 사먹었다.
배송 시 빨대를 챙겨달라는 부탁이 가볍게 무시된 상황에 야속하다.
어쩔 수 없이 손톱으로 뚜껑을 깐다.
마신다.
달콤해.
까끌까끌
제대로 눕히질 않아 입술에 따끔하고 불편하게 닿는 뾰족한 초록색 뚜껑 조각 덕에
달콤한데, 따끔하다.
이런 게 인생인가.
힘들여 달콤한 걸 들이키다가도
내 손톱이 만든 모난 뚜껑에 입술이 아프다.
마음이 이끌리는 것을 하기에
나는 아직 그 수많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혼돈의 상태에 있다.
대단하다 그대들이.
기꺼이 자신을 믿고 그냥 그걸 해내고 있는 그대들이.
나는 아직도 저 수많은 물음에
대답할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