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계탕 Aug 07. 2024

빨대 없이 먹는 바나나 우유

잘 살아볼 것 같은데 마음처럼 안 될 때

마음같지 않다.

호기롭게 직장을 때려치고 찾아온 공백 안에 아주 아주...


강렬한 것, 좋은 것, 이제는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만 채워넣으려 ‘발악’을 해봐도 아직은 ‘때’가 아닌가.


앞뒤 볼 것 없이 일단 지르고, 행보를 완전히 틀어 과감히 떠나버린 여행 유튜버들을 볼 때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


행보를 완전히 튼다는 건 뭘 근거로 할 수 있는 걸까.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아니, 틀고 싶은 방향이 있긴 한가?

방향이 없는데 허공에 뜬 발이 도대체 어디로 떨어진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방향은 도대체...


마음이 피어나질 않는다.

근성이 없다는 내면의 메아리가 온 몸과 마음을 적신다.

어차피 더 크게 할 수 없을 거라는 축축하고 찝찝한 불안감이 계속 찾아온다.


그래서, 그래서 또 쉬운 걸 찾는다.

쉽게, 그저 쉽게 할 수 있는 것

원래 해왔던 것, 그중에 가장 쉬운 것.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

비교적 깔끔하고, 일만 하면 그만인 것.


식당 홀서빙이나 하자.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알면?

그 사람이 날 뭐로 생각하지?

내가 그 시선에 자유로울 수 있나?

호언장담했던 그것들, 인생을 뒤집어보겠다는 그것들은 어떡하지?

어미의 삶을 답습하기 싫다고 오만을 부리던 그 과거는 어쩌지?


결국 그녀의 삶이 내 삶에 보이기 시작한다.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

과거의 내 생각, 나의 모든 말을 지울 수 있는 버튼.

아니 그냥 누군가 와서 내 머리에 쌓은 갖은 고정관념들을 지워주면 좋으련만

내 어미의 모습까지, 아니 이 순간에도 누군가 탓하고 떠넘기기 바라는 하찮은 정신머리까지도.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면 삶은 끝없이 가혹해진다.

보는 풍경, 그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그 사실 하나가

푸른 나무를 시궁창으로 끌어들여 말라 죽여버린다.


나는 푸른 나무를 본다.

하지만 그 나무는 죽었다.

내 안에서.


빙그레 바나나 우유를 한 잔 사먹었다.

배송 시 빨대를 챙겨달라는 부탁이 가볍게 무시된 상황에 야속하다.

어쩔 수 없이 손톱으로 뚜껑을 깐다.

마신다.

달콤해.


까끌까끌

제대로 눕히질 않아 입술에 따끔하고 불편하게 닿는 뾰족한 초록색 뚜껑 조각 덕에

달콤한데, 따끔하다.


이런 게 인생인가.

힘들여 달콤한 걸 들이키다가도

내 손톱이 만든 모난 뚜껑에 입술이 아프다.


마음이 이끌리는 것을 하기에

나는 아직 그 수많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혼돈의 상태에 있다.

대단하다 그대들이.

기꺼이 자신을 믿고 그냥 그걸 해내고 있는 그대들이.

나는 아직도 저 수많은 물음에

대답할 자신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