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겠다.
만일 한 남자가 친절하게
자동차 문을 열어주면
자동차가 새것이거나
여자가 새로운 여자일 경우이다.
- 우쉬 글라스 -
'대한민국 1%'라는 차가 있었다.
무려 20년 전, 2001년에 출시된 '렉스턴'이다.
2002년 고1 때,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보다 날 더 흥분시킨 건 대한민국 1%, '렉스턴'이었다.
렉스턴의 차주는 친척 형이었고, 결혼을 앞둔 형수님을 모시러 가는 길이었다.
당시 형수님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고, 렉스턴 속에는 내가 있었다.
그때, 자동차가 갖고 싶어졌다.
22명이 공 1개를 두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그런 거 말고,
22살엔 차 1대를 타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그런 꿈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20살에 일단 자동차 운전면허를 땄다.
주변에서 분명 쉽게 딴다고 했는데, 장내기능 시험만 무려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만에 겨우 합격했다.
유비가 제갈량의 초옥을 세 번이나 찾아갔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다행히도 이후 도로주행은 단 한 번에 합격했다.
1톤 트럭은 내게 삼고초려의 깨달음과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뤄진다는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22살에 아버지 자동차를 물려받다.
나는 태어나면서 아버지께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
명석한 두뇌, 풍성한 머리숱, 오복 중 하나로 불리는 건강한 치아
그리고 짧은 다리까지.
물려받은 것 중 최고는 건 단연 자동차였다.
손 안 대고 코 푼 격으로 2002년 17살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가스(LPG) 차는 내게 짧은 다리에 대한 보상이자 2002년 월드컵의 데자뷰였다.
2일 만에 찾아온 일생일대의 고비.
나는 타고난 음치, 박치 그리고 기계치다.
내 손에 닿으면 잘 나오던 TV도 안드로메다로 직행한다.
안타깝지만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타자마자 차가 갑자기 시동이 안 걸려서 긴급출동을 불렀다.
이후 어렵사리 운전을 하긴 하는데 문제가 곧 발생했다.
'주차'라는 걸 잊고 있었다.
내가 장내기능 시험을 3번이나 치렀던 기억과 3번째 시험에서 주차 점수를 통째로 감점당하면서 겨우 커트라인에 턱걸이 점수로 합격했다는 사실마저도.
2일 만에 결국, 자동차를 버리다.
'진퇴양난', '사면초가', '고립무원', '사고무친'이 이런 기분일까.
양옆 차로의 일렬 주차된 왕복 2차로 원룸촌 골목에서 운전 2일차였던 나는 평행 주차라는 시련과 맞닥뜨렸다.
뒤에서 차량 3대가 동시에 클랙슨(빵빵)을 울려대고, 앞에서 마주 오는 차량은 상향등을 초당 22회 깜빡였으며, 흡사 무섭게 달려드는 좀비떼 같았다.
이미 정신줄은 놓았고, 차도 놓아주기로 했다.
바로 옆 길가에 45도 대각선으로 대충 차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자동차를 그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는 내게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시간 속성으로 자동차를 배우다.
'안되겠다' 싶어서 운전병 출신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후진 주차, 평행 주차 등 주차에 대한 걸 배우러 갔다가 주차는 못 배우고, 오히려 5가지 큰 깨달음을 얻고 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 운전은 오직 '왼손'으로만 한다. 오른손은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2. 여자와 브레이크는 최대한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 한 번에 강한 힘을 주면 안 된다.
3. 음악은 항상 최신곡으로 업데이트를 한다. 마지막 데이트가 윈도우 업데이트가 되기 싫으면.
4. 후진할 때는 고개를 오른쪽 45도로 돌리며 최대한 턱 선이 날렵해 보이도록 한다. 백미러는 거들 뿐.
5. 자주 다니는 이동경로에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외워둔다. 자동차를 또다시 버리기 싫으면.
2달 후, 5대 성인이 완성되다.
나는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의 세계 4대 성인에 그 친구의 이름을 포함시켜 5대 성인으로 불렀다.
자동차는 내게 세계 성인을 한 명 더 추가시키기에 이르렀다.
2012년 12월 7일 첫눈과 함께 찾아온 대한민국 1%.
친구의 깨달음을 마스터하고, 각종 사건사고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운전도 마스터했을 무렵 그녀가 나타났다.
10년 전 렉스턴의 흥분보다, 10배 더 강력한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자동차는 그녀만큼이나 작고 귀여운 차였다.
'아침'을 뜻하는 차였는데, 우연히 뒷문을 열자마자 고요 속의 외침.
눈을 털어줄 무언가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작은 자동차에 쓰레기통 2개를 비롯 온갖 책, 악보, 옷가지 등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그리고 자동차에 구두가 왜 4켤레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아침이라 불리는 자동차는 내게 1%의 틈만 있다면, 모든 짐들을 다 구겨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증명해 줬다.
지금은 대한민국 99%가 된 그녀,
와이프의 차(지금은 아침이 아니지만)를 가끔 내가 탈 때마다 양손 가득 쓰레기를 버리곤 한다.
자동차는 내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친절하게 자동차 문을 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글. Wit Driver 이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