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한 편 써서 활발히 작가활동을 하는 동료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지 말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동료에게 들은 얘기는 너무나 듣기 좋은 얘기였다.
"이 시나리오는 도대체 뭐라 할 말이 없어.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면 어떤 기준에 맞춰서 썼거나 패턴이 있어야 되는데, 상업 시나리오나 그런 걸 보면 다 그렇잖아. 일정한 형식이란 게 있다고. 그리고 그 기준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겠지. 근데 이건 그냥 어떤 것도 아니잖아. 이건 그냥 너잖아."
그래 그건 나였다. 내가 본 세상이고, 내가 본 진실의 형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써왔다. 어떤 시절엔 매일 한편씩 써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돈이 되어야 한다거나, 대단한 작가로 인정받아야 된다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그게 내가 추구했던 가치였다. 아직 내게서 나오는 그런 이야기가 성숙의 단계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내가 써놓고도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 몇몇 있지만, 충분치는 않다. 특이해지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투명하게 그려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무가 되고 싶었다. 언젠가 어떤 생에서는 나무로 살아보고 싶었다. 나무는 투명하게 이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지켜본다. 땅에서 하늘로 향해 점점 더 자라나면서. 그러니까 우주를 향한 방향성에 머물면서 계속 이 세계를 지켜본다. 그래서 나무는 알고 있지만, 안다고 해서 무언가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알고 있고, 단지 살아있으며, 보고 있다. 나는 마치 나무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창작의 충동이 만들어내는 거친 감정을 걷어내고, 가장 차분한 진동을 가진 무언가를 쓰고 싶다. 이야기 자체 안에 들숨과 날숨을 가진, 봄에 돋아나는 새순과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