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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May 25. 2022

혼자 하는 공부보다, 함께하는 공부

피어 러닝 Peer learning의 중요성


영재학교 원서 접수가 다음 주로 다가왔습니다. 6월 첫째 주 1단계 서류 접수를 시작으로 8월 말 3단계, 중학교 기말고사까지, 쉽지 않은 일정이지만 아이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이겨내길 바랄 뿐입니다.  일정이나 학습량 면에서 꽤 힘들 법도 한데 잘 버티고? 있는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칩니다. 2년 가까이 아이가 학원을 오가며 지금까지 잘 완주해오고 있는 데는 함께 공부한 친구들의 몫이 꽤 컸던 것 같습니다.


예전 테솔 대학원 수업 때 배웠던 개념 하나가 생각납니다. Peer learning 피어 러닝. 학생들이 다른 학생과 상호 작용하며 학습 효과를 높이고 배워가는 인지심리학 용어입니다. 어려운 시험을 위해 함께 공부하는 것, 자칫 무한 경쟁자로 상대를 받아들이며 함정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학습 분위기, 교사의 역할에 따라 선의의 경쟁자이자 함께 같은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는 친구로 서로를 독려할 수도 있습니다. 참 이상적으로 들리고. '그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그런 동료가 있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초반, 제법 긴 시간 수업 듣는 것도 익숙지 않을 텐데, 집에 돌아와 마무리해야 하는 숙제 양도 만만치 않아 보였습니다. 학원 생활이 처음이니 서툴 수밖에 없고 과제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처음에는 3~4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래도 본인의 선택이니 꼬박 앉아서 숙제를 하고 학원에 가더군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요령이 생겼는지 숙제 시간도 조금씩 줄어들고, 학원 친구와 사귀었는지 이따금 전화로 숙제를 물어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홈스쿨링을 해서 그런지, 아이 옆에 친구가 보이면 언제나 환영인 엄마입니다.


몇 달 후 아이는 학원 시스템에 적응한 듯 보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 길드를 조직하듯 친구 두 명과 함께 숙제 파트너를 만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매일 밤 이 녀석이 학원 친구들과 숙제를 나눠하는 게 아닌가요? 처음에는 저 녀석이 적응했다고 꼼수를 부리는가 보다 했습니다. 얼핏 그리 보이기도 했지만,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룹 통화나 디스코드를 하며 친구들끼리 숙제 파트를 나눕니다.

너는 기하, 나는 대수, 쟤는 확률 뭐 이런 식으로 요. 그리고는 한 시간 후쯤 다시 온라인상에 헤쳐모입니다. 자기가 푼 것이 있으면 상대에게 알려주고, 상대가 풀어낸 문제들을 다른 아이에게 설명해줍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해야 풀리는 문제들을 1/3로 나눠 그 부분만 숙제를 하고, 나머지 못 푼 문제들은 집단 지성을 활용해 문제를 서로 이야기하며 풀더군요. 어찌 보면 되게 효과적인 듯 보이기도 하고, 나머지 2/3를 고민할 기회가 줄어드니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나 하는 염려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지켜보기로 합니다.


참고로 한옥은 사춘기 자녀의 부모에게만큼은 아주 바람직한 구조입니다. 방과 방이 연결될 뿐 아니라 방문을 닫아도 완전 밀폐가 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아파트에서 아이가 방문 닫고 들어가면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부모님들 염려를 한방에 싹 날릴 수 있는 구조랍니다. 물론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아이 사춘기 이후부터는 밤에는 남편과 제가 사랑방으로 넘어가 취침을 합니다. 잘 때만큼은 사적 공간으로 안채를 다 주고 있어서 크게 불만은 없는 듯요. 그리고 어느새 익숙해져서 친구들과의 전화통화가 (부모에게) 다 들리는데도 그냥 방문을 닫으면 그걸로 더 이상 아이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춘기 전 자녀를 두셨다면 한옥 강추입니다. 물론 사춘기 전, 유아, 아동기 때 더 이상적인 집이랍니다.




숙제 파트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친구 두 명과 숙제 품앗이로 숙제 양도 줄이고, 정답률을 높여 오답노트에 적을 숙제도 줄이며 한동안 그렇게 숙제를 해가더군요. 트레이드가 워낙 확실해 한 명이 하나도 못 풀면 그 친구한테는 자기가 푼걸 그냥 안 줍니다.  하나에 하나씩 문제풀이를 트레이드하는 모습에, 요즘 아이들 정말 얄짤 없구나 또 한 번 느낍니다. 내 아이만 그런 줄 알았더니 친구들도 똑같은 놈들입니다. 무서운 것들. 심지어 여자아이도 한 명 있어서 더 놀랐습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며 숙제 이야기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했습니다.

"숙제를 그렇게 나눠서 하면 뭐가 좋아?"라고요.


아이가 말합니다. "숙제 양과 숙제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좋죠. 그리고 하기 싫은 날도 있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하다 보면 또 자연스럽게 하게 돼요"


기분 나쁘지 않게 조심스레 묻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나머지 2/3 문제를 풀 기회가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건 어때?"

아들이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아 물론 그럴 수도 있는데, 문제가 워낙 어렵고 오래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거든요. 혼자서 3/3을 다하면 조금 풀어보다 잘 안 풀리니까 그냥 넘기고 넘기다 하기 싫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 나눠서 하면 내가 맡은 부분을 하나라도 오랫동안 고민하게 돼서 그건 좋은 것 같아요. 또 서로 알려줘야 하니까 자존심도 있고, 최대한 이 방법 저 방법으로 풀어보게 되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서로 못 푼 거 같이 이야기하면서 푸는 것도 좋고요"


놀. 랐. 다.

그런 장점이 있구나 무릎을 탁 쳤다.


쉬운 문제들이야 혼자 집중해서 풀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어려운 문제일수록 깊이 사고하는 시간을 얼마나 들이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10문제를 다 풀어보는 것도 좋지만 아이 말대로 3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다각도로 풀어보는 경험을 하고 있었구나! 하며 놀랐습니다. 심지어 다음번 숙제를 할 때는 파트를 나눌 때 전에 하지 않았던 파트로 돌아가며 분배를 한다고 합니다. 역시 니들이 나보다 낫구나 싶었습니다.


이후에도 함께 숙제를 하던 세 녀석은 반에서  1등~3등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승급반 심사에서 셋다 상급반에 올라가 숙제 파트너를 한동안 지속하더군요.


레이스를 할 때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참 중요합니다. 이 아이들은 윗반으로 승급이 된 이후에도 결국 반에서 1등에서 3~4등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에게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줍니다. 아마도 퍽 긴 시간이었음에도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의 역할이 컸다는 생각을 합니다. 힘든 직장에서 동료나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듯, 공부라는 과정은 성취감이 그다음을 이끌게도 하지만 노력하는 만큼 성취감을 느낄 수 없을 때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야 성취감을 경험하기 때문에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들은 너무나 지혜롭게 서로가 서로에게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주며 때로는 좌절한 친구를 잡아주기도 하고, 실수한 친구를 독려하기도 하면서 함께 레이스를 즐깁니다. 부모의 격려나 응원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 과정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의 몫은 또 다를 뿐 아니라, 엄청난 힘을 가집니다. 결국 공부라는 것도 그 안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고, 그 안에서 함께하는 동료를 만나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더 잘하고 싶은 솔직한 마음은 숨기지 않되, 스스로 해야 하는 영역과 함께 도와가며 할 수 있는 영역의 경계들을 지혜롭게 넘나들며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 요즘은 숙제 메이트를 하지 않지만, 매일 모자라는 아이들처럼 학원에 챙겨갈것들, 숙제를 체크하며 물어보는 친구들. 원서 낼 때가 다가오는데 성적이 지지부진한 친구가 전화로 고민을 말합니다. 자기는 머리가 나쁜 건지, 노력이 부족한 건지 점수도 잘 안 나오고 한계가 느껴진다고요. 그러자 X축에 천재성, 영재성, Y축에 노력이라고 놓고 반 친구 한 명 한 명마다의 좌표점을 찍으며 서로의 장단점들을 이야기하며 위로를 합니다. 아들은 자기는 (5,5) 지점에 있는 것 같다며 친구에게, 너는 (4,5)쯤 되니까 (4,6)까지 올려볼 여지가 있다며 용기를 줍니다. 귀여운 녀석들. 수려한 언어로, 마음을 따뜻하게 울리는 위로와 격려 대신 자기들끼리의 언어로 서로를 응원합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씩씩하고 즐겁게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모릅니다. 독불장군처럼 나만 홀로 질주하는 삶이 아니라, 힘들 때 함께 게임도 하고, 수다도 떨며 힘든 시간들을 버텨준 친구들이 아들 옆에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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