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시험이라는 것이, 배운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소화해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기는 합니다.
'메타인지'라는 용어가 떠오릅니다. '인지 이상의 것', '인지에 대한 인지'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는 정도'를 말합니다. 시험을 보기 전 자신의 점수를 예상해 적어 보게 하고, 결과를 비교해 봅니다.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도 하고, 예상 밖에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도 합니다. 물론 운이나 실수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과대평가하고 있는 셈이지요. 과대평가하고 있다면 더 이상 학습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할 테고, 과소평가하고 있다면 깊이 있는 학습으로 넘어가거나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무의미한 반복 학습으로 시간 낭비를 할 수도 있겠지요.
결국 시험을 많이 볼 수록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그 예측값과 결괏값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경험치가 많아집니다. 그 기회를 통해 메타인지가 상승하고 이는 효율적인 학습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알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을 테스트를 통해 밖으로 인출하는 과정을 통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스스로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시험이 마치 최종 결과인 듯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무조건 100점을 맞아야 좋다는 일종의 강박까지 있는 것 아닐까요?
배운 것을 100% 이해하고, 100점을 맞으면 30점보다야 기분은 좋겠지요. 그러나 100점이 아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배움의 즐거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100점이 필요한 시기, 바로 그때 100점을 맞아야 좋은 것이지, 늘 100점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초등학생에게 위험한 100점
마라톤에서 본선 결승선을 앞두고, 그때 가장 앞에서 피니쉬 라인을 들어오는 자, 그를 1등, 100점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달리기에 천부적이라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뛰어서 그런 결과는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달리는 게 즐겁다는 경험, 혹은 뛰고 싶다는 욕구,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 1등을 하고 싶다는 동기가 있었을 테지요. 그리고 초반 페이스에 욕심을 내는 바람에 좋지 못한 결괏값을 냈던 실패의 경험, 혼자 달리는 것보다 페이스 메이커가 있어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거머쥐었던 기억, 기초 체력이 있어야 끝까지 달릴 수 있다는 것, 이 일련의 과정들을 무사히 견딘 후, 결승선을 가장 앞서 들어오는 영광을 맞이합니다. 앞서 달리는 뒤통수 꼴을 절대 보지 않겠다며, 매 순간 그들을 제치고 내내 1등으로 달려, 끝까지 1등으로 승리하겠다는 욕심은 결국 선수를 중간에 지쳐 주저앉아버리게 만듭니다. 묵묵히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내면서도 자기만의 페이스를 찾고, 자신에게 적절한 속도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초등학생의 100점과 중학생의 100점, 고등학생의 100점은 분명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초등학생은 정서상, 발달상, 학습에 대한 내적 동기가 약한 시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100점이 좋다니까, 100점 맞았을 때 엄마가 기분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니까, 친구보다 잘한다는 우월감에 잠시간 어깨가 으쓱해지니까, 그런 다양한 이유들로 100점에 욕심을 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은 내적 동기가 외부로부터 오기 때문에 100점이 갖는 의미에 대해 아이가 잘못 이해할 수 있고 자칫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100점 맞으면 기분이야 잠깐 좋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반응에 우쭐해집니다. 하지만 인생 초반, 100점에 목적이 꽂혀버리는 순간, 참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초등학생들은 아직 미성숙한 구석이 많아서 주의집중력도 떨어지고, 부산스럽습니다. 배우는 것의 상위 개념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시험 난이도가 매우 쉽더라도 100점을 맞기란 어려운 나이가 초등학생입니다. 왜냐하면 꼼꼼하지 않고, 실수를 통해 배우는 나이이기 때문에 알고도 틀리고, 맞춤법 때문에도 틀리고, 무슨 생각으로 그 답을 썼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구석들이 있어야 아이다운 것이지 않을까요?
100점을 맞는다는 것은 무한반복의 훈련 속에서 자동반사처럼 답을 쓰거나 문제 푸는 시간을 줄이는 반복학습을 통해서나 가능해집니다. 공부는 엉덩이 힘이라며 무한반복 학습을 시키고, 학원을 보내고, 여러 문제집을 반복해 풀게 하니 잘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 공부에 재능 있구나' 하며 멈출 줄 모르고 시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100점, 그 점수 어디다 쓸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점수를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아이가 어떤 개념들을 배우고 이해할 때 80점 정도를 적정선으로 보는 것이 초등학생에게는 바람직합니다. 80점이 의미하는 바는 아이가 개념을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만 잃어버린 20점은 아이의 주의집중력, 100점에 대한 강박이 없는 상황, 단순하고 사소한 실수, 그 정도를 의미한다고 가볍게 여기면 어떨까요?
다시 말해 초등학생의 건강한 학습 척도가 80점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20점까지 다 채우겠다는 것은 부모님들의 과하고 위험한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80점만큼 안다는 것은 개념을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30점, 60점은 도움이 살짝 필요하다는 의미이겠지요. 그건 초등학생의 학습은 부모가 도와줘도 충분합니다. 100점이 될 때까지가 아니라 80점이 될 때까지만요.
그 20점을 채우려고 학습을 무한반복시키기보다는 땀 흘리며 실컷 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건강한 뇌, 창의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30점도 맞아보고, 60점도 맞아보고, 그 점수의 기분도 느껴보며 더 잘하고 싶은 마음조차 느껴봐야 합니다.
반면
중학생, 고등학생의 100점은 초등학생과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본인의 의지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한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학습 자체가 힘든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해가 느리고 암기가 느린 아이들도 있지요. 이런 아이들에게 100점을 강요한다면 항상 실패한 인생이겠지요. 달리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친구 이야기를 얼마나 잘 들어주는지, 그림 그리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웹툰에 대해 얼마나 꿰고 있는지, 그 아이만의 기준으로 성취감과 자존감을 높여줄 만한 것을 찾아주어야 아이 자신만의 인생을 살 준비를 할 자신감을 출발선으로 삼겠지요.
대부분의 부모가 공부 잘하는 아이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들이 부모가 바라듯 그렇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부모가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이와 갈등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의 능력과 자질, 소질을 인정하고 그 지점에서 다음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이 완벽한 초등학생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학원과 학습에 쏟아붓습니다. 최근 책을 읽다 그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한 교사가 대치동으로 옮기게 되며 100점짜리 완벽한 초등학생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고, 중학생이 되며 그 완벽하고 훌륭했던 학생들의 점수가 처절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너무 놀랬다는 글이었습니다. 아마도 너무 일찍 100점에 현혹되어,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결과이겠지요.
100점이 필요한 순간, 힘을 낼 수 있는 아이
얼마 전 아이가 중3 중간고사를 치르고 본인의 점수에 매우 만족해합니다.
수학 과학이야 늘 깊이 해왔던 공부니까 걱정하지 않았지만 역사 시험을 앞두고 개념 정리를 노트에 한 후 페이지 채로 통암기를 하더니 교과서를 읽어서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문제집을 사달라고 해 문제를 한번 풀어보더군요. 머리가 나쁘지 않으니 가능하다고요?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만... 매일 한두 시간씩 공을 들여 개념 공부를 합니다. 분명히 재미있지도 않을 테고, 시험을 위한 공부가 짜증 날 법도 하지만 너무도 성실하게 과정에 임하는 모습은 왠지 짠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합니다.
중간고사를 보던 날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시험 끝난 기념으로 놀러들 간다는데 총알같이 집에 와, 같이 채점을 해보자고 합니다. 공부한 만큼 실수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하겠지요.
모든 과목 100점을 맞은 아이.
초등학교 때 100점은 필요 없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어디 쓸 것도 아니니까요. 당연히 초등학교 때 받아오는 점수는 80점 언저리면 '수업시간에 집중해 들었구나' 하며 과정에서 칭찬해 줄 것들을 찾아 열심히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렇게 100점에 대해 너그럽게 대해주던 시간 동안, 20점을 채우려 허비하지 않고 아껴뒀던 에너지를 끌어모으고 본인만의 학습동기를 찾아, 100점이 필요한 순간 본인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 결과를 대면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저를 참 뭉클하게 만듭니다.
'엄마는 네가 참 뺀질거리고,
좋아하는 것만 하려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절대 안 하는 아이'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공부해야 하는 한국의 학교가 참 씁쓸하기는 하다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남이 더 높은 도약과 목표를 위함이라는 것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너의 성장한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