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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Apr 11. 2022

마사지 노예의 삶 - 사춘기 특효약

영재고, 영재학교 입시 Story #11


마사지 노예의 시작


아이가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서 베이비 마사지를 간단히 배운 적이 있습니다. 몸이라고 해봤자 내 손보다 조금 큰 아이니 아이 발바닥에 내 엄지손가락을 한번 그으면 발마사지였습니다. 그렇게 팔다리를 만져줄 때마다 세상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미소를 띠는 모습에 반해 나도 모르게 마사지 노예 생활이 시작되었답니다. ㅋㅋㅋ


키우는 내내 아이는 열도 잦고, 찬바람만 휙 불어도 감기에 폐렴까지 가는 일들이 잦았고, 잔병치레도 많이 하는 편이라 한약에, 대체의학까지 찾아다닐 정도였습니다. 병원을 가거나 약을 먹어도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아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미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아이 손가락이라도 마사지해주거나 귀라도 한번 더 만져주든가, 발바닥이라도 주물러 주며 잠시라도 눈을 붙이도록 도와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마사지는 어느새 준규가 사랑해마지 않는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되고 아빠에게 잠자리 독서를 부탁하자 남편은 흔쾌히 응했고, 초등 고학년까지 일주일에 한 번에서 서너 번 정도 다양한 목소리로 연기를 하며 아이 자기 전 잠자리 독서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초등 5~6학년 정도 되자 어느새 아빠가 책을 읽어주고자 아이를 협박?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아이는 더 이상 즐기고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은 일찍 재우고 싶은 날이면 잠자리 독서 대신 잠자리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마사지라 하면 엄청 거창할 것 같지만, 그냥 10분 정도 마사지 샵에서 나올법한 음악을 틀어놓고 불을 끄고 오일을 손에 살짝 바르고 등짝에 원을 그리며 문지른다든가, 종아리를 (얼굴에 로션 바르듯 ) 문지르는 정도의 요식행위? 에 불과했답니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되어서도 일정이 피곤해 보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마사지로 꼬드겨 일찍 재워보려고 종종 딜을 하기도 합니다. “12시에 이불 펴고 누우면 마사지해준다” 뭐 이런 식이죠.


'다 큰 자식을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아이 마사지를 해주고 사랑방에 건너온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준규가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 아빠가 밤마다 마사지를 해주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참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고요. 진짜 진심입니다. 그래서 늦은 밤 아이 마사지를 하고 온 남편에게 이런 아빠가 어디 있냐며 한껏 추켜세워주곤 합니다.




마사지는 사춘기 자녀와 소통의 장


그런데 이 마사지가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에 매우 좋은 방법인 듯싶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난 후 하교 후나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은 늘 피곤합니다. 그러니 집에 와서는 눈을 마주치고 부모와 대화할 시간을 만들기란 참 어렵습니다. 집에 오면 쉬고 싶은 마음에 웹툰이나 영상을 보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 말을 걸어도 단답형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마저도 많이 물어보면 은근 성질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사지를 하면 휴대폰도 할 수 없고, 깜깜한 데서 몸이 이완되니 긴장도도 풀어지고, 기분도 좋아지면서 까칠남 아들은 무장해제되어버리나 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같은 반 친구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학원 친구 이야기,

성적 이야기 등등

온갖 수다를 시작한다

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소에 걱정스러웠던 부분들을 넌지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아이 길이에 도저히 엄두가 안나 마사지를 거의 아빠가 해주었는데 얼마 전 아빠의 코로나 확진으로 제가 여러 차례 마사지 현장에 투입된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마사지 중 만난 준규는 16살 사춘기가 아니라 8살 수다쟁이 꼬마로 돌아가 있어 깜짝 놀랐답니다.


남편의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를 마친 지 한두 주 지나 아들놈까지 코로나 확진, 이어 저까지 확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로 격리 중이던 아들은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고 저는 고열과 근육통으로 이틀째 앓던 중이었습니다. 밥을 먹는데 아들이 제게 묻습니다 “많이 아파요? 어떻게 아픈데요?” 열이 나고, 하체 근육통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더니 다리라도 주물러 드릴까 아들이 묻습니다.


'그래 주면 엄마는 좋지~'라고 하자 밥을 다 먹고 제 다리를 주물러줍니다. 며칠 전 고열에 시달리는 아들 팔다리를 주무를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ㅎㅎㅎ


한참을 그렇게 해주고는 방으로 가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던 아들이 한참 후 부엌에서 서성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방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데 목이 너무 후끈거려 찬 걸 먹고 싶던 참에 잘됐다 싶어서 부탁 하나를 더했습니다. “아들, 엄마 딸기 좀 씻어다 줄 수 있어?”라고요.


흔쾌히 그러 마하 고는 주방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몇 개 드릴까요?”라고요. 소식하는 아들의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서 “그냥 알아서 접시나 컵에 한가득”


잠시 후 밥그릇에 딸기를 가져다주는데 꼭지를 정성스럽게 다 따서 가져다줍니다. 예전에 제 여동생이 준규에게 딸기를 씻어서 주는데 꼭지채로 씻어줬더니 그러더랍니다. “우리 엄마는 꼭지 다 떼고 씻어주시는데”라고요. 딸기꼭지뿐만 아니라 너무 열심히 해먹이고, 챙긴다고 종종 친정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준규 부인은 힘들겠다, 너무 잘 챙기지 말아라”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꼭지를 하나하나 다 따서 씻어다 준 딸기를 보면서 아들바보 엄마는 생각합니다.


아~

내가 준 사랑의 방식대로

너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으로 크고 있겠구나



어쩌면 너에게 딸기는 당연히 꼭지를 떼서 씻어주는 거라고 생각하듯 그렇게 하루하루 스미듯 엄마 아빠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언젠가 타인에게 아낌없이 쏟을 수 있겠지 생각해봅니다.


얼마 전 친구와 커피 한잔을 하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이들과 남편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속이 상해서 방에 들어가 앉았는데, 초등 6학년인 큰딸이 옆에 와서 등에 손을 얹고 엄마와 눈을 맞추며 그러더랍니다.


"엄마가 많이 속상하고 힘들었구나"라고요.


그리고 그 말에 속상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다 풀리더랍니다. 나중에 딸에게 어떻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해줄 생각을 했냐고 묻자, 엄마가 자기한테 늘 그렇게 하지 않았냐 하더랍니다.


그렇게 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잘 전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며 자찬하고 등에 손을 얹고 엄마와 눈을 맞출 줄 아는 딸에, 딸기 꼭지를 정성스레 따서 가져다주는 아들 이야기에 서로 눈물이 글썽해지는 자식바보 엄마랍니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학교에 가는 것도 중요하고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들 말하겠지만, 가장 기본은 아이와 잘 소통하는 것이겠지요.


사춘기를 겪으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아이들, 거기에 공부까지 하느라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에 제목은 우스개로 마사지 노예라 말했지만


사랑을 듬뿍 담아

자식 한번 더 쓰다듬어 준다면

아이들도 조금은 힘이 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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