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공연 전, 안내원이 재즈가 처음인 분들을 위해, 간략히 재즈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어요. "오늘 보는 이 공연은 어디에 가시든 다신 볼 수 없을 겁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재즈는 즉흥으로 연주되거든요. 공연을 볼 때도 정해진 건 없어요.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지르고, 박수를 치고 싶으면 치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즐겨주세요"
그 말을 들어서 그럴까요. 온전히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운 좋게 맨 앞에 앉아 공연하는 분들의 손짓, 표정들을 하나씩 다 살펴보았습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시작되면서 드럼으로 리듬감을 살려주고, 베이스로 균형을 맞춰주다 색소폰이 임팩트를 더 해주는, 그 모든 순간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 타임과 '서브' 타임이었습니다. 재즈에선 '주인공' 타임이 있더군요. 돌아가면서 각자가 가진 재능을 뽐내는 시간이었어요. 주인공이 된 연주자는 음악과 물아일체가 되어, 마치 다른 세상에 접속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의 표정은 저렇구나' 무아지경인 상태를 실제로 보니 어찌나 감격스럽던지요.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수년간의 수행과 경험이 합쳐져 모든 행위가 기술을 뛰어넘고 노력을 뛰어넘고 생각을 뛰어넘어 행해지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행위는 예술과 존재의 발현이 되며, 모든 걸 손에서 놓는 경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경지의 발현이 된다. - 존 카밧진, <왜 마음챙김 명상인가>
왜 피아노 공연을 보면 전율을 느낄까, 김연아 선수의 공연을 보면 짜릿해질까, 무슨 노래에도 즉흥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댄서를 보면 감탄하게 될까, 궁금했는데 바로 그 순간이 예술과 존재가 하나가 된 순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경이로울 수밖에요.
'움직이는 경지'를 보여주는 주인공 타임이 끝나면, 연주자들은 새로운 주인공을 위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곤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지금'만 할 수 있는 공연에 집중하며 즐깁니다. 이 공연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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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삶도 하나의 재즈 공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서 지금 내가 하는 공연은 또 하고 싶어도 다신 할 수 없는 공연일 겁니다. 내가 어떤 악기를 연주하게 될지도 모르죠. 감미로운 피아노를 칠 수도 있고, 강렬한 드럼을 칠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피아노를 치는 사람과 함께 연주하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과 합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내 삶에서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아도 언젠가 나에게도 '주인공 타임'이 올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인공 타임'이 오든 그렇지 않든,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 누구와 함께하든, '지금, 이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즐기는 겁니다. 지금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