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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Oct 17. 2022

부침개 좀 부치는 여자

10월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적당한 햇살과 상쾌한 바람이 어느 곳을 걸어 다녀도 덥지도 춥지도 않기 때문이리라. 또한 가을이 주는 아름다움은 어느 곳에 눈을 돌려도 떠나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부터 억새에 이르기까지. 꽃이 피었던 자리에는 짙은 갈색과 붉은 단풍으로 온 산하를 물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맘때쯤이면 아이들의 소풍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다. 유치원생들은 고구마 캐기, 무 뽑기, 밤 줍기 등 체험활동을 하며 추억을 만들고, 중간고사가 끝난 중고등학생들은 놀이동산이며 수학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크고 작은 회사의 단체들도 가을엔 행사가 많다. 나 또한 조직생활을 할 때는 봄가을이면 단합대회라는 명목으로 1박 2일 동안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고 보면 그때 다닌 여행이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좋든 싫든 회사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서 개인 적으로라면 가기 어려운 곳이었을 지방의 곳곳을 내 돈 안 들이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구경시켜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이러한 행사들도 무서운 바이러스 때문에 2년간 중단되었다. 



이제 다시 코로나도 잠잠해지고 일상을 회복하는 단계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보니 예전처럼 가을 나들이 행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부침개와 새우튀김을 하루 12시간 꼬박 앉아서 부쳐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명절보다 더 힘든 전 부치기는 봄가을이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남편은 봄과 가을이면 회사에 소속된 설계사들과 함께 1박 2일 단합대회 행사를 한다. 100여 명 정도의 인원이 참석하다 보니 신경 써야 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부분 여성들로 구성되다 보니 숙박시설도 무시할 수 없고 좋은 구경거리 또한 사전답사를 통해 치밀하게 계획해야 했다. 무엇보다 먹을거리는 최고의 음식보다는 정성을 다해 대접하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한다. 돈으로 살 수 있지만(사실 두세배 돈이 더 들어간다) 직접 요리를 하는 것과는 차이가 꽤나 크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침개와 새우튀김을 준비했다. 

고추를 다져서 갖가지 채소와 새우살을 넣은 고추전. 오징어를 다져 김장김치를 쫑쫑 썰어서 만든 김치전. 손가락만 한 새우를 튀김가루와 빵가루에 묻혀서 바삭하게 튀겨낸 새우튀김 800개까지.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 10시가 되어 끝이 나는 작업이었다. 어깨가 빠지고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이 음식을 먹고 즐거워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맛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행사에 보내고 남은 부침개를 지인들에게 맛보라고 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너무 착해서 남편이 시키는 대로 다 해준다고. 어떤 이는 내가 가스 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면서 안타까워하곤 한다. 매번 시댁이나 남편의 크고 작은 일에 휘청거리며 도와주거나 힘에 부치는 일을 겪고 나면 여동생은 말한다. 

"언니 혹시 형부한테 무슨 책 잡힐 짓 했어?" 남편에게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해 달라는 대로 해주고 힘들어하는 언니를 보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일 것이다.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내게 너무 고생했고 사람들이 다들 잘 먹고 좋아했다며 고맙다고 했다. 

나 또한 힘든 건 다 잊고 맛있게 먹어줬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힘들게 고생한 아내를 위해 마음을 다해 토닥거려주고 그 일이 빛을 낼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아내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고생을 시키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남편이 처한 상황에서 아내로서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해내는 것 또한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벌써부터 내년 봄에 부칠 부침개 종류 레시피를 만드는 나란 여자. 

부침개 잘 부친다고 명함 좀 내밀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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