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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Oct 27. 2022

당신 덕분에 조회수 6만 찍었어

토요일.

지인의 캠핑장에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붉게 물든 낙엽길을 걸으며 알싸한 아침 공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소리에 감성 충만해지는 순간, 휴대폰 알람이 드르륵드르륵 거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웬 알람이 이렇게 울릴까 싶었지만 낙엽길을 걸으며 상쾌한 공기를 쐬는 것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강가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직접 내린 드립 커피까지 여유롭게 마시고 있을 때조차 쉴 새 없이 휴대폰이 드르륵거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알람이 울리는 걸까 싶어 휴대폰을 열어보니 브런치에 올린 글이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평소에 내 글은 라이킷 수도 15~20개 정도이고 조회수도 비슷한 편이라 어리둥절했다.


1만이 넘고 2만 3만이 넘어가는 심상치 않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조회수에 비해 라이킷 수는 많지 않았지만 분명 어딘가에 내 글이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홈페이지를 보니 역시나 "홈 쿠킹" 페이지에 떠 억 하니 올라와 있었다. 이번에 쓴 글은 음식에 대한 레시피도 없다. 내조의 여왕이라는 자랑질도 아니다. 아무런 반항 없이 남편이 부탁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묵묵히 도와준다는 글이었다.


 https://brunch.co.kr/@morangji/55




살다 보니, 아니 쓰다 보니 이런 행운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마냥 신기해했다. 가족들이 있는 단체 톡방에 사진과 함께 올렸더니 두 딸은 엄청 놀랐다. 웹 사이트에 올라온 엄마의 글이 신기하다며 자랑스러운 엄마를 위해 저녁 시간 와인 축하파티를 하자며 내 기분을 추겨 세워줬다.




남편은 역시나 브런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어머니와 읍내를 다니면서 먹고, 여행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톡방에 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는 어머니는 평소보다 환해진 얼굴 이셨다. 내심 안심이 됐다. 함께 내려오지 않은 며느리를 탓하시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한 편씩 올릴 때마다 맞춤법 기계를 수없이 돌리고 돌려도 내가 쓴 글을 업로드한 후 다시 보면 틀린 곳이 간혹 있다.

브런치에 글은 왜 올릴까.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고 공감해주지도 않는데 말이다. 문우들과 글 동지 맺은 몇 명만이 '좋아요'를 누르고 간혹 스쳐가는 문우들이 읽어 줄 뿐인데 나는 왜 쓸까.


사람에게 상처받고  위안받을 곳도, 위안을 받을 사람도 없었던 나는 글쓰기와 책 읽기에 몰두했고 묵묵히 쓰다 보니 내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지고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져 갔다.

치유되는 곳

그런 곳이었기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쓰기가 아니라 쓰면서 내적 치유가 되는 나만의 글쓰기였다. 글쓰기가 좋아서 그저 묵묵히 썼다. 글을 한편씩 올릴 때마다 이전 글보다 더 정성을 듬뿍 담았다. 사실은 더 고민되고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밀려왔다. 나도 뭔가를 이루고 해냈다는 성취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날고 긴다는 작가들 틈에서 나도 해내고 있다는 자긍심 같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계획적이고 치밀한 구성을 만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전 글을 쓸 때보다 좀 더 성장한 나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느리지만 끊임없이, 멋지지 않지만 진솔하게 내 얘기를 써 가는 중이다.


남편은 며칠이 지난 후 내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온 것을 알고 각종 단체방에 내 글을 뿌려댔다.(부끄러움은 내 몫) 자칫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모습으로 비칠까 봐 꺼려했던 나와는 달리 걱정 말라며 조회수와 구독자를 외조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아무래도 내년에 부침개 예약을 위한 선빵인 것 같다.


"당신 쓴 글 쭈욱 읽어보니까 몇 군데 오타가 있더라고, 그 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역시 대한민국 남편답게 지적질 시전을 한다. 조용히 차단을 눌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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