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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Nov 05. 2022

복잡하지만 구경하러 갑니다.

빈속으로 외출하는 걸 꺼려하는 남편은, 시어머니께서 주신 청란으로 계란 프라이를 해냈다. 새벽부터 먼길을 떠나야 하는 우리 부부는 시래기 된장국과 계란 프라이까지 든든히 먹고 출발했다. 난생처음 가보는 지역 때문인지 설레기도 했고, 모처럼 단풍 여행이라는 이유로 조금 들떠 있었다. 6시 출발을 목표로 커피도 내리고 단감도 몇 개 깎아서는 차에 올랐는데 톨게이트는 벌써 빨간불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역시나 부지런하다. 깊어가는 가을을 그냥 보내기 아쉬운 마음인가 싶은 게 이 가을이 주는 시간이 더욱 감사하고 의미 있는 날로 다가왔다. 


4시간 가까이 운전을 한 후 도착한 청송은 공기가 달랐다. 그래서인지 청송은 산소 카페가 유명했다. 대부분 지역마다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드는 추세인데, 공기의 주 원자인 산소처럼 깨끗하고 맑은 곳이라는 것을 홍보하는 것쯤으로 이해됐다. 청송 톨게이트를 막 빠져나올 때부터 시작된 사과나무 밭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연약한 가지 끝에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린 사과를 보니 입안에 침이 스르르 고였다. 나는 그때부터 창문을 내리고 상쾌한 산소를 마셨다. 


모임의 집결지는 주왕산 주차장이었는데 들어가기 2킬로미터 전부터 도로 위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붐볐고 활기가 넘쳤다. 


"빨리 온나" 

"옴마야 사람 억수로 많데이" 라는 정겨운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참말로 많네예" 


청송의 유명한 관광지는 주왕산과 주산지라는 저수지가 있었다. 주왕산은 거대한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단풍으로 눈을 돌리는 곳마다 울긋불긋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었다. 사람 형상을 한 기암절벽도 있었고,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우뚝 서 있는 큰 바위 밑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부분 산들은 산 입구부터 시작된 등산코스로 이어져 헉헉대며 오르는데 주왕산은 달랐다. 긴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고 어린아이들이나 나이 드신 어른들, 그리고 휠체어를 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면서 산속의 시원함을 더했다.


몇 백 년 전 조선 숙종 때 만들어진 저수지에는 왕버들 나무가 물속에서 자생하는 신기한 광경도 볼거리 었다. 조선의 임금이 가뭄으로 고통받을 백성들을 위해 만든 저수지라는데 지금까지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유지해왔다고 전해진다. 아침 일찍 오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안 맞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사과의 고장답게 어디서나 사과 판매를 하는 곳을 볼 수 있었다. 밭 가운데서 막 수확한 사과를 판매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평소 사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는 적당한 산행에 목이 말라 시식용 사과를 몇 번 집어먹어봤다. 가히 그 맛은 일품이었다. 첫맛은 새콤하고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아삭함은 온몸에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새콤한 맛에 눈을 뜨게 하고 달콤함으로 온몸을 휘감았다. 사과가 이렇게 맛있다니. 

관광지에서는 거의 물건을 사는 법이 없는 우리 부부는 사과를 사고야 말았다. 그것도 20kg.


주왕산을 함께 갔던 남편 고향 친구들은 우리 부부가 사과를 구매하는 모습을 보더니 관심 갖기 시작했다. 도로가에 좌판을 펴놓았던 사과주인은 몰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표정이 환해졌다. 한꺼번에 네 박스를 팔게 된 과수원 주인분은 기분이 좋은지 덤까지 넉넉하게 챙겨주셨다.  


이 가을,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넘쳐난다. 단풍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계절이다.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고, 또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시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움직이고, 세상을 구경하고 자연이 주는 힐링에 감탄하면서 순간순간을 즐긴다. 계절이 돌고 돌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만남을 통해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봄에는 꽃구경, 여름은 시원한 바다 구경, 가을은 아름다운 단풍구경을 하면서 말이다. 이제 또 흰 눈을 기대하며 겨울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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